줄을 서지 않는 사람들
중국에서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 나는 작은 전쟁을 보았다.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고 한꺼번에 문으로 몰려들었다.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이 뒤섞였고, 누군가는 팔꿈치로 밀며 빈자리를 향해 몸을 던졌다.
자리를 꿰차듯 뛰어 들어가 앉는 사람들.
지하철 문이 열리는 단 몇 초 사이, 그곳은 마치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 같았다. 총성을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빈자리를 향해 동시에 튀어나갔다.
그 짧은 순간에 작은 전쟁이 벌어졌다.
플랫폼에 서 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한국에서 자라며 당연하게 여겼던 ‘질서’라는 것이 한순간에 낯설게 느껴졌다.
한편, 거리에서는 어린아이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소변을 보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걸음을 옮겼다.
나는 중국인들에 대해 자주 그런 뉴스들을 보곤 했다.
중국 관광객이 문화유산에 낙서를 했다는 보도,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워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 제주도 거리에서 배변을 했다는 이야기들.
그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중국사람들은 미개인이다. 왜 저렇게 몰상식할까.”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모양을 바꾸기 시작했다.
왜 어떤 사회에서는 공공질서가 더디게 자리 잡는 걸까.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도시화를 경험했다.
수억 명의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했다. 산속 작은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거대한 도시의 지하철과 쇼핑몰, 관광지 속으로 들어왔다.
빌딩은 하루가 다르게 솟아올랐지만, 도시의 규칙과 사람들의 산속 생활습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농촌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알았다. 그곳에서의 규칙은 ‘공공질서’라기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거대한 도시는 다르다.
수백만 명의 낯선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사용해야 한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이 바로 공공질서다.
이름 모를 이를 믿고 규칙을 따르는 것.
눈이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과의 약속.
문제는 이 질서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에도 한때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어른들에게서 들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줄을 서지 않던 시절,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던 시절, 길거리의 질서가 지금보다 훨씬 거칠었던 시절.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학교 교육이, 미디어가, 법 집행이 하나둘 규범을 만들어갔다.
몇십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줄을 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의 거리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줄을 서고, 공공장소에서 목소리를 낮춘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움’은 사실 오랜 시간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은 아직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십 년 넘게 중국에서 살면서 나는 그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예전에는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던 공항 밖이 이제는 지정된 흡연 구역으로 정리되었다. 지하철에서는 먼저 내린 사람이 타는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공원에서 아이와 함께 있던 엄마가 아이에게 말하는 장면도 보았다.
“쓰레기는 저기에 버려야 해.”
그 말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어쩌면 한 사회가 새로운 규칙을 배우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만약 내가 갑자기 전혀 다른 규칙을 가진 낯선 공간에 던져진다면, 나는 그곳의 질서를 얼마나 빠르게 이해하고 따를 수 있을까.
어쩌면 나 역시 당황하고, 실수하고, 누군가에게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질서는 경험의 산물이다.
오래 경험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처음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낯설다.
중국에서 오래 살며 내가 배운 것은 이것이다.
사회의 모습은 단지 그 사회 사람들의 성격이나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가 걸어온 시간의 길이와 속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한국은 빠르게 산업화를 겪으며 공공질서를 배웠다.
중국은 지금 그 빠른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질서가 만들어지고, 깨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그들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중국에서 보는 풍경은,
먼 타인의 낯선 모습이 아니라,
수십 년 전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모든 사회는 저마다의 속도로 자란다.
빠르게 자란 곳은 그 속도에 맞지 않는 규칙에 당황하기도 하고, 느리게 자란 곳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낯선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낯설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느리다고 해서 뒤처진 것은 아니다.
각 사회는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조금씩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어 간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풍경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낯선 타인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낯섦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두 사회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질서는 언제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느 시간 위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