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30년, 중국이 멈추지 않는 구조를 보다
중국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벌써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부동산 위기, 지방정부 부채, 청년 실업 문제까지.
뉴스 헤드라인만 따라가면 중국은 곧 멈출 것처럼 보인다. 위기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막상 중국 도시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지하철 노선은 계속 뻗어나가고, 도시 외곽에는 새로운 산업단지가 만들어진다. 전기차 공장은 더 커지고 있고, 기술 기업들은 연구개발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공사장 크레인은 하늘을 가득 메우고, 밤이 되면 연구단지의 불빛이 도시의 새로운 야경이 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회를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걸까.
상하이에서 거의 30년을 살면서 나는 그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불 켜진 사무실들을 바라보고, 주말에도 멈추지 않는 공사 현장을 지나치며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멈추지 않는 걸까.
그리고 어느 순간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중국을 움직이는 건 낙관적인 기대감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내장된 구조라는 것이다.
멈추기 어려운 경쟁 구조
중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경쟁의 밀도다.
이 경쟁은 개인 사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진다. 마치 보이지 않는 달리기 시합이 항상 진행 중인 것 같다.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려 한다. 기업을 더 많이 끌어오기 위해, 산업 단지를 더 크게 만들기 위해, 경제 성장 수치를 더 높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한 도시가 새로운 길을 열면 다른 도시들도 곧 따라 움직인다.
한 지역에 인공지능 산업단지가 만들어지면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산업이 퍼져나가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전기차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래 산업으로만 이야기되던 전기차가 지금은 중국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다. 어느 도시를 가도 전기차 관련 기업을 볼 수 있고, 주차장에서는 전기차가 절반을 차지하는 모습도 흔하다.
이런 확산 속도는 기업 경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지방정부와 기업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달리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BYD가 있다.
방향이 정해지면 모두가 달린다
중국 정책을 보면 때때로 극단적인 변화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어떤 산업은 갑자기 강한 규제를 받고 또 다른 산업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마치 바람의 방향이 하룻밤 사이에 바뀐 것처럼 시장 흐름이 변하기도 한다.
몇 년 전 플랫폼 기업 규제가 시작되었을 때가 그랬다. 거대했던 기업들이 흔들렸고 많은 사람들이 변화 방향을 읽지 못해 당황했다. 그 과정에서 Alibaba Group 같은 기업도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영역에서는 완전히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 분야는 오히려 더 빠르게 성장했다. 기술 기업들은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며 새로운 길을 열어갔다. 대표적인 기술 기업으로는 Huawei가 있다.
겉에서 보면 중국 정책은 모순적으로 보인다. 규제와 지원이 동시에 존재하고 위기와 기회가 뒤섞여 있다.
하지만 내부 구조를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방향이 정해지면 속도가 붙고 중앙정부가 산업 방향을 제시하면 지방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움직인다. 그때 만들어지는 추진력은 매우 강력하다.
강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흐름을 거스르기 어려운 것처럼
한번 형성된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위기가 오면 멈추기보다 방향을 바꾼다
경기가 나빠지면 속도를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종종 다른 일이 벌어진다. 위기가 오면 오히려 새로운 성장 분야를 더 적극적으로 찾는다.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중국은 제조업, 전기차, 첨단기술 산업에 더 많은 힘을 쏟았다. 이것은 단순한 정책 조정이라기보다 시스템 차원의 반응에 가깝다. 지방정부는 성장을 멈추기 어렵고 기업 역시 새로운 기회를 계속 찾는다.
멈추는 법을 배우지 않은 사회는 위기가 와도 멈추기보다 방향을 바꾸며 앞으로 나아간다. 중국이 위기 속에서도 완전히 멈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한국 사회는 비교적 안정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제도도 잘 정비되어 있고 행정도 예측 가능한 편이다. 절차와 원칙이 있으며 사회적 합의를 중시한다. 이 안정성은 분명 큰 장점이다.
하지만 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다른 질문도 필요하다.
새로운 산업에 얼마나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을까.
실패를 감수하면서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만들어져 있을까.
위기가 왔을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까.
멈출 것인가, 아니면 방향을 바꿀 것인가.
중국의 방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너무 빠른 속도는 때로는 오히려 큰 부작용을 낳는다.
지친 사람들, 뒤처진 사람들, 따라오지 못한 사람들.
속도의 이면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사회다.
중국을 이해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
많은 사람들이 중국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말한다.
너무 크고, 너무 빠르고, 너무 시끄럽고,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래 관찰하면 의외로 단순한 원리가 보인다.
중국을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이념이나 특별한 국민성이 아니다.
지방정부 간 경쟁, 정책 방향의 집중, 기업의 빠른 확장
이 세 가지가 서로 맞물리며 중국 특유의 속도를 만든다. 마치 세 개의 톱니바퀴가 동시에 돌아가듯 사회가 움직인다. 그래서 중국은 위기 속에서도 쉽게 멈추지 못하고 그럴 수도 없다. 방향은 바뀔 수 있지만 움직임 자체는 유지된다.
상하이에서 30년 가까이 중국을 지켜보며 내가 얻은 가장 단순한 결론은 이것이다.
중국은 ‘속도가 빠른 나라’라기보다 멈추기 어려운 구조를 가진 사회다.
그리고 이 질문은 결국 우리에게도 돌아온다.
앞으로 한국 사회는 어떤 속도를 선택할까.
우리는 멈출 것인가, 아니면 방향을 바꿀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