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고민이 많았다. 동생들은 잘 뛰어노는 것 같은데, 나는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곤 했다. 생각만 해도 시간이 잘 갔고, 때로는 이런 생각들이 나를 머리가 아프게도, 배가 아프게도, 외롭게도 했다.
어딜 가도 나는 이방인 같았다. 살고 있는 지역의 사투리를 잘 모르는 나는 친구들이 말하는 단어의 뜻이 뭔지 몰라 되묻기도 했다. 교습 학원 선생님께도 질문을 드리곤 했다. 친구들이 되레 나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럼 나는 "사전에 나오는 단어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표준어도 아니잖아."라고 이야기를 했다. 특히 구어의 변형이 너무나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러던 나는 한편으로 서울말을 쓰는 듯한 같은 반 친구가 미웠던 시절도 있었다.
문득 대학교에 진학해 교양수업을 듣고 있었는데(진학 과정에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줄이기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교수님 강의 내용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유목민을 Nomad라고 하며 그 특성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목민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Zion에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늘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그로부터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민족이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었다. 이상하게 기억이 오래가고 마음에 남는 말씀이었다.
좀 더 크고 나서 이성 친구가 생겼는데, 그 친구는 내가 자라온 지역과 주변을 잘 알고 있었다. 가면 부모님과의 추억도 이야기해 주곤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학교에서의 추억이 아니면 초등학생 이후로는 그런 기억이 잘 없었다. 그 친구도 어릴 때의 기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는 풍부하고 다양해 보였다. 그런 친구가 믿음이 갔다.
그러나 그 친구와의 관계가 실패한 이후, 나는 미뤄뒀던 나와 우리 가족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머무르는 것이 관습의 힘을 더해주고, 그런 것이 배타적인 성향을 강화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personality와 character를 가지고 있는데도 유지가 되고 이어올 수 있었을까? 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