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 소개를 먼저해볼게요!
안녕하세요. 영문과훈녀 이소연입니다. 현재 저는 AMIE : Ask me in English (물어봐영어) , MSG : My Seoul guide (마이서울가이드)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물어봐영어에서는 10기가 넘는 영어스터디를 진행하고, 대학 및 고등학교 정규 강의와 기업 및 개인 맞춤 강의로 영어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어 한 마디도 못했던 왕초보였던 제가, 작은 도전들과 노력들, 그리고 직접 경험하며 느꼈던 꼼수들?을 알려드리면서 항상 재미있게 수업하고 있습니다. 마이서울가이드에서는 서울로컬로서 직접 알려주는 투어 및 정보들을 영어로 외국인들에게 전달하고, 매달 외국인교류모임을 통해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모두 재미있게 모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티칭경력은 어느덧 5년이 다 되어가고 있네요. 영문과를 졸업해서 자칭 '영문과훈녀'로 쓰던 닉네임을 아직까지 쓰고 있고, '라이프영어컨설턴트'라는 이름으로 멘토님께서 지어주셔서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짜 소개를 하려면, 제가 좋아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것들을 이야기해야할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티칭'입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경청해주는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내가 가르친 걸 이해하고선 적용시켜서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엄청난 희열을 느낍니다. 어렸을적부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선생님놀이'였고, 항상 동생들 앞에서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책을 좋아했던지라 국어교육과에 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지만, 높은 사범대의 턱을 넘을 수는 없었고, 결국 그냥 만만해 보이는 영문과를 선택했던 게 제 인생의 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영어를 정말 하나도 말할 줄 모르는 왕왕왕초보였거든요. 그냥 남들과 똑같이 내신과 입시를 위한 영어학원에 다니고, 공부에 대한 뜻이 별로 없었던 그런 소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여학생일 뿐이었는데... 그러다 들어온 영문과에서 어쩔 수 없이 영어를 해야하니까, 영어를 써야 하는 환경에 저를 던져 놓는 도전을 하게 되었고 (나중에 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그래서 지금은 '영어'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네이티브처럼 되기 위해 아직도 부단히 노력중이지만요.
1) 스무살, 첫 필리핀 여행
스무살, 영문과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영어권 나라에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만만했던? 필리핀에 가기로 결정하고선,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국제워크캠프'를 통해서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걸로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치만 남들과 똑같이 입시영어만 공부했던 제가 영어를 잘 말할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극소심의 성격이 심했던 그 때는 한국말도 잘 못하던 때였는데, 영어는 더 못했겠지요. 그렇게 처음 나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에 두렵지만 설레 하면서, 승무원에게 오렌지쥬스 한잔 제대로 말해보지도 못하고 물만 마셔야 했던, 봉사활동은 제대로 못하고 말 못하는 걸 아프다는 핑계로 넘겨야 했던 제 자신에 너무 마음아파하며 최대의 굴욕적인 사건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저는 '영어'에 대해서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 스물 두 살, 휴학 후 떠난 샌디에고 어학연수
영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나서, 저에게 꽤 좋은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바로 아빠가 국가에서 공기업에 지원해주는 대학원수업 과정이수를 하게 되어, 미국 샌디에고에 가족 다같이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미국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인데,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진행이 되었고, 부모님의 품 속에서 미국에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치만 역시 미국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아시안이 많이있는 샌디에고 지역이라고 한들, 그들은 모든 인종들이 다 있는 나라니까, 다들 영어를 잘 할 거라고 예상을 하고, 나의 저질영어를 들어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2주동안, 매일 방에 누워 잠만 자면서, 나는 아직 시차적응중이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로 슬픈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런 저에게 훈훈한 대만친구가 같이 파티에 가지 않겠냐며, 저는 한 번도 만나보지도 못한, 그 대만친구의 친구의 여자친구 파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보는 파티에 정시에 맞춰서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을 때! 그리고 엄청 늦게 나타나서, 다들 진짜 미친듯이 놀아서 경찰까지 오는 그런 파티를 직접 겪으면서! 그 때부터 처음 외국인들이랑 어떻게든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부터 조금씩 알게 된 친구들과 매일 파티를 하고 놀다보니, 어학연수를 마치는 5개월이 지나서는 이젠 Intermediate 수준의 영어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엄마는 운전을 못하던 저를 매일 아침 대학교에, 오후에는 튜터수업에, 저녁에는 지역민을 위한 무료수업에, 그리고 마지막 파티들까지 항상 잘 데려다 줬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저는 그 때 한국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하던 미국인 백인, 흑인 친구들과 그리고 다른 아시안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시도했던 영어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3) 스물 세 살, 라이프가드로서의 업무
미국에 또 가고 싶었던 저는, 미국에 갈 방법을 찾아보다가 인턴십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연결해주는 한국의 한 회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 인터뷰만 잘 치르면 되는 거였고, 저는 다시 California 에 가고 싶었기에, 자연을 사랑하고, 수영을 좋아하고 하는 부분을 어필했고 인터뷰에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나열해주셨는데, 호텔리어나 라이프가드로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저는 지루해보이는 호텔리어보다 라이프가드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Allentown이라는 펜실베니아 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지만, 워터파크는 동북부에서 가장 크기가 큰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200명이 넘었지만, 그 중에서 한국인이라곤 저 혼자밖에 없었고, 특히나 아시아계 라이프가드는 저밖에 없어서 진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았던 제가, 이젠 직접 일을 해야하니까 더 큰 어려움에 부딪힐 때가 많았는데.... 특히나 상사라고 있는 저보다 몇 살이나 어린 미국인 친구들이, 제가 잘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내고 무시하고 할 때마다 열이 받는 겁니다. (나중에 미국인 친구한테 물어보니, Allentown은 진짜 인종차별이 심하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해요) 그렇게 직접 부딪히면서, 그리고 무시받으면서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생존 영어를 하다보니 진짜 엄청나게 영어가 늘게 되었습니다. 동부라서 한여름에는 45도 가까이 되는 날들이 많았고, 라이프가드로 12시간씩 일해야 하고, 정말 물에 빠져 허우적 대는 사람들도 구해주는 제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 곳에서 만난 수많은 나라의 친구들과 일을 가지 않을 때는 함께 놀러갔던 동료들, 허리케인이 오는 날 다 같이 숙소에서 놀았던 일 등등 정말 제 인생에 잊지 못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항상 외국에서 진짜 '일'을 해보기를 추천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가족들이 '몽상가'라고 할 정도로 꿈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수 많은 계획들 중에서, 몇 가지를 가지고 집중해서 하는 편인데, 지금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바로 'MSG : My Seoul Guide' 를 잘 차려놓는 것입니다. 외국인에게 진짜 서울을 알려주는 플랫폼 컨셉으로 아직은 시작단계에 있지만,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 두 명의 외국인 친구와, 1인 영상을 도와주시기로 한 S 엔터테이먼트 팀과, 매일 진행되고 있는 교류모임이 더 커질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특히나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분야의 일이라,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은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바로 '티칭' ! 가르치는 사람으로 쭉 있고 싶습니다. 앞으로 브런치에서 글로 소통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또 하나의 목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