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미세먼지가 걷힌 파란 하늘이 아름다웠던 화창한 봄날, 우리 셋의 일상도 오늘 날씨와 꼭 닮은 행복과 아름다움을 가득 머금은 채 마무리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내는 평화로워야 할 소중한 육아 퇴근 후 시간을 편두통과 체기로 힘들어하고 있고, 나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오늘 하루를 나 때문에 망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무겁다.
저녁 식사를 위해 오랜만에 찾은 한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 화근이었다. 같은 시기에 학교에 다녔다는 것 이외에 공통분모는 거의 없다만, 아내와 나의 대학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캠퍼스의 조각 공원에서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오늘을 더욱 빛나게 해 줄 맛있는 저녁 식사를 기대하며 한 식당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친절함과 따뜻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출입 명부 작성하세요.”라는 종업원의 목소리에 한껏 들떠있던 기분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자리를 잡고 해솔이를 아기 의자에 앉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문했던 저녁 메뉴가 나왔는데, 다짜고짜 “마스크 치우세요.”라는 아까의 그 쌀쌀맞은 목소리가 들렸다. 상 위에 차려질 음식이 많아서였는지, 아니면 마스크를 테이블에 올려둔 것이 위생상 좋지 않아서였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기분이 몹시 언짢은 말투였다. 뒤이어 종업원이 메인 메뉴인 보리밥에 넣을 갖가지 나물들이 담겨 있던 큰 바구니를 내려놓으면서 놓여 있던 접시를 건드리는 바람에 국물이 쏟아졌는데 그 뒤에 종업원은 나의 상식 밖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과 한 마디도 없이 무심하게 몸을 휙 돌려 카운터를 향해 가는, 그리고 화장실로 휙 들어가 버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식당 입구를 들어오면서부터 쌓여 있던 불쾌한 감정이 폭발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종업원이 보여준 쌀쌀맞은 모습, 은근 저녁으로 다른 메뉴를 먹고 싶어 하는 아내를 설득하여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찾은 곳에서 느낀 모욕감에 기분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나는 애꿎은 사장님을 불러 언성을 높여 항의했다.
사장님의 사과는 받았으나, 식사하는 내내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무엇보다 속상했던 것은 며칠 전 아이 앞에서 아내와 언성을 높여 언쟁을 벌일 때 몰라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이 앞에서는 평온한 감정을 유지하며 차분하게 행동해야겠는 다짐을 한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 또 흥분한 아빠, 남편의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었다. 테이블 위에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만큼이나 가득 퍼진 불편 바이러스로 나와 아내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평소 먹성은 온데간데없었고, 아이도 밥을 먹는 내내 투정을 부리며 불편해했다. 오붓하게 가족이 함께 하는 모처럼의 외식 시간이 침묵과 긴장 속에서 더디게 흘러갔다.
먹구름이 잔뜩 낀 무거운 분위기에서의 저녁 식사가 몸에도 마음에도 좋을 리가 없었다. 아내는 늦은 밤까지 편두통과 체기로 몸살을 앓았고, 아이는 이앓이를 하는지, 아니면 불편했던 저녁 식사 때문에 속이 좋지 않았는지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연신 울음을 터뜨렸다. 이 모든 불편함의 빌미를 내가 만든 것 같아 나의 마음도 천근만근이었다. 화를 조금만 억눌렀더라면, 나의 간정보다는 우리 가족의 오붓한 시간을 좀 더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또 한 번의 실수를 통해 삶의 교훈을 하나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평소에도 물론이지만 특히 육아를 하면서 감정 관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나의 감정 상태에 따라 그날 하루의 육아의 질이 좌우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의 감정으로 인해 아이의 기분도 덩달아 하늘과 땅을 왔다 갔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 스스로의 마음이 불편한 날이면 아이에게 온전히 정신을 쏟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아이에게 다정한 미소를 짓고, 따뜻한 말을 건네려고 노력해 보지만 결국 다정한 척, 따뜻한 척일 뿐 아이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아빠의 모습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아빠를 대한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나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아빠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무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안 그래도 처음 경험하는, 신기한 만큼이나 불편하고 두려운 것들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주 양육자로서 든든한 아빠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시기에 믿고 의지해야 할 아빠가 본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오락가락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습을 아이가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크나큰 욕심이 아닐 수 없다.
결혼을 하고 난 후, 그리고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난 후 나의 감정은 어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나의 감정은 나 스스로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에게 때로는 따스한 햇살, 때로는 매서운 진눈깨비가 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몸소 가르쳐 주는 생생한 역할 모델이 된다는 점에서 늘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 이를 건강한 방향으로 슬기롭게 해소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함을 새삼 느낀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어느 하나 정말 쉬운 일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