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솔이는 그림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나와 아내에게 틈만 나면 책을 읽어달라고 들이밀고,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책에서 본 주인공들을 예쁘게 그리며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해솔이의 모습은 늘 예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늘 같은 책만 읽으려고 한다는 점.
읽고 싶은 책만 반복해서 읽는 해솔이가 좀 더 다양한 책들과 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었다. 그러다 지난 1월 20일 해솔이와 함께 독서 스티커 판 '책 고픈 티라노'를 만들었다.
'책 고픈 티라노'는 구상부터 제작까지 나와 해솔이가 함께 했다. 먼저 해솔이가 종이에 그렸던 공룡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해솔이의 선택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티라노사우루스. 나는 해솔이가 고른 그림을 큰 도화지에 베껴 그렸고, 해솔이와 함께 예쁘게 색칠을 했다. 그리고 예쁘게 오린 '책 고픈 티라노'는 우리 집 거실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잘 들어오는 식탁 옆 아트월에 자리 잡았다. '배불뚝이 티라노' 만들기 미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약 한 달 안 되는 시간 동안 '배불뚝이 티라노'를 만들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매달렸다. 그림책을 함께 읽고 읽은 책 표지 스티커를 텅텅 비어있는 티라노사우루스 뱃속에 붙이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표지만 보고 내용이 무서울 것 같다며 읽기 싫어했던 책. 용기를 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슬픈 내용이 나와 중간에 책장을 덮었던 책. 그리고 자꾸만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새로운 책들이 끼어드는 바람에 자꾸만 우선순위가 밀렸던 새로운 책들. 여러 변수들이 생기면서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텅텅 비어있던 티라노사우루스의 뱃속은 조금씩 채워졌고, 오늘에서야 배가 책들로 꽉 들어찬 '배불뚝이 티라노'를 완성했다.
자기 손으로 하나 하나 붙인 스티커로 티라노 뱃속을 꽉 채운 해솔이가 물론 가장 기뻤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다양한 책들을 읽어본 해솔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빠로서 참 뿌듯했다. 이거 읽어라, 저거 읽어라 하지 않고 좋아하는 공룡 그림을 붙여주고, 스스로 읽어볼 때까지 기다려줬을 뿐인데. 아이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아빠, 다음에는 브라키오사우루스 만들어서 붙여 보는 거 어때?"
해솔이가 새로운 도전을 제안했다. 한동안 나의 북스타그램 피드 배경으로 쓰던 벽을 차지했던 '책 고픈 티라노'를 대체할 새로운 녀석을 구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깨끗한 벽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내일부터 해솔이와 함께 지금껏 그려왔던 공룡 그림을 함께 살펴보며 후속작으로 쓸 '브라키오사우루스'를 골라야 할 것 같다. 다음 작품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나와 해솔이의 합작품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만, 다음에 벽에 붙을 '브라키오사우루스'는 나와 해솔이가 함께 채워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늘 읽고 싶은 분야의 책만 골라 읽는 것은 나의 습관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