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연천은 젊은 사람들은 별로 찾아볼 수 없는 지역이다. 마을의 청년 회장은 주로 60대가 맡고 있고, 동네에서 70대 정도는 막내도 가능한 동네다.
2017년 9월, 나는 연천으로 본격적으로 이사를 왔다. 어려서부터 서울에서 살던 나는 이런 시골 살이가 참으로 힘들었다. 내가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노인을 대하는 일이다.
" 빨갱이 놈의 새끼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어... 쯧쯧쯧..."
이 '빨갱이'라는 단어는 인터넷 속에서만 존재하는 단어, 그리고 1988년대쯤이나 하던 말 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여기 이 동네에 와서 사람의 입에서 하는 모습을 처음 봤던 것이다. 난 그 소리가 얼마나 싫었는지 그 사람이 가자마자 사극 드라마에서 선비들이 하는 것처럼 내 귀를 씻었다.
21세기에 아직도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인터넷에서는 이해가 간다. 익명성, 그리고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그냥 아무 말이나 싸질러 대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그것도 21세기에 아직도 저런 말로 사람들을 갈라 치기를 하는지.
또 한 번은 내가 얼마 전 출근을 하던 때였다. 사무실에서 주차를 하니까 내 사무실 앞에 어떤 여자 노인이 앉아 계셨는데 내가 주차를 하자 내쪽으로 다가와 내 얼굴을 보고는
" 아... 아니구나. 차가 비슷해서. "
라면서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는 것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 아... 사람을 잘못 보셨구나. ' 하면서 별수롭지 않게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그 여자 노인이 날 보더니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 차에 앉아 있을 적에는 그렇게 안 봤는데 뚱뚱하네. "
" 예??? "
난 너무나 황당했다. 그 노인이 언제 날 봤다고 뚱뚱하니 뭐니 하다니. 이럴 때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 노인이 그런 것이니 네가 이해해라. '
난 그 말을 더욱더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노인이면 다 그렇게 돼먹지 못할까? 그렇다면 '젊어서 바쁘게만 사느라 못 배워서 ' 그렇다?? 이것 또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 현재의 노인들이 젊어서 그저 먹고 사느라 바빠서, 하루가 똑같이 힘들게 힘들게 살아오셨다는 것은 인정은 한다. 그런데 내가 겪은 이런 문제는 배움의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과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게 거침없이 뚱뚱하다고 욕하던 그 노인은 본성이 못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빨갱이'를 거침없이 운운하던 그 사람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최고 전성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고 했다. 그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덕분에 자기가 부동산으로 돈을 상당히 많이 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의 재산을 늘려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욕을 한다.
도대체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것 또한 배움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다. 21세기에 '빨갱이'라는 단어를 운운하거나 처음 보는 내게 거침없는 말을 내뱉는 그 노인들은 본성이 나빠서 그런 것이다. 모든 노인이 그렇지 않다. 모든 50-60년대생 아저씨들이 '빨갱이'를 운운하지는 않는다.
내가 물어보면 "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해? "라고 본인들도 놀라니까 말이다.
나는 내가 서서히 무서워지고 있다. 연천에서 그런 사람들을 대하며 살수록 사람들이 싫어진다. 노인들이 싫어진다. 그런 몇몇의 노인들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처럼 느껴진다.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점점 그렇게 변해가는 내가 싫어진다. 무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