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것을 기획하기까지의 이야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보다..!"하고 이 글을 열었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브루노 페르난데스의 활약이 어쩌고, 가르나초의 이적이 어쩌고 하는 내용은 없다. 시의성에 기반한 소식들은 이 글이 아니라 네이버 스포츠 뉴스가 더 정확하고 빠르다.
나는 이번 맨유와 관련된 행사를 함께 만들고 기획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써내려 가보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기획이 되었으며, 겉으로는 굉장히 단순해 보이는 이 행사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엔 이 행사를 꼭 와주시면 좋겠다는 간곡한(?) 호소 한 스푼도 들어갈 예정이다. 미리 밑밥을 깔고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어쩌면 내가 받을 금액이나, 내가 줄 수 있는 능력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이 두 단어다. 말 그대로 재밌을 것 같으면, 일단 마음이 간다. 그런데 의미까지 있으면 안 할 이유가 없다. 아니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해보고 싶다. 시키는 일을 해야만 하는 직장인이 아닌, 유일한 장점이랄까. 모든 일을 선택해서 해야 하는 나의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일도 우선순위가 높다. 하지만 재미와 의미를 지닌 프로젝트는 내 시간을 쪼개서라도 같이 해보고 싶다. (아직도 철이 안 들었나 보다.)
근데 이 안에 한 가지의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멋에 대한 동의'이다.
굉장히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맞다. 아직까지 나도 그게 정확히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이것은 단순히 비주얼적인 것을 의미하진 않고, 그 안에 숨겨진 에센스에 대한 관점이다. 조금 쉽게 풀면 철학과 관점이라고 해야 할까. 왜 이 일을 하는지, 앞으로 어떤 미래를 그리는지. 그것을 다루기 위해선 충분한 관계와 대화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지고, 추구하는 멋과 철학이 모두 다르다. 누군가에겐 대중적인 팝스타가 멋의 대표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대중가요는 멋을 포기한 행위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행사의 주최자인 433 seoul 대표님과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했다.
유니폼은 단순히 의류이자 굿즈를 넘어, 기억을 소장하는 매개체라는 것에 대한 동의도. 축구를 일희일비하며 즐기는 것도 좋지만, 축구가 가진 멋진 문화등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도 교집합이 있었다. 남이 뭐라 하든 뭔가를 포기할 수 없는 고집스러움도 살짝 닮아있었고. 그래서일까 종종 커피를 마셨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오고 가는 커피잔 속에서 멋에 대한 동의가 비슷하다는 확신을 느꼈다. 결국 함께 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인사가 만사다. 뭘 하든 서로가 가진 능력을 공유하고 합칠 수 있다면 윈윈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게 사소한 대화가 이 행사에 숟가락을 얹고 싶게 만들었다.
맨유라는 컨셉, 오프라인 행사, 참여하시는 아티스트 분들은 얼추 정해졌다. 이 상황에서 기획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왜"였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 내 습관이다. 나만의 기획 철학이랄까. 가장 중요한 건 여기에 참여하는 모든 파티원들이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같은 생각은 결국 "왜"에서 나온다. 우리가 지금 이걸 왜 하는지, 우리는 왜 맨유라는 컨셉을 선택했는지 등등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순간, 잉? 싶어지는 순간들이 온다.
그렇게 집요하게 대표님과 "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건 문서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모두 존재했다. 이런 행사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축구'가 가진 멋을 우리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표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축구가 가진 '멋'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선 역사와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100년은 족히 넘어가는 축구 클럽의 역사는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내포한다. 선수들의 투쟁심과 열정, 이를 무한한 사랑으로 응원하는 서포터즈들.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 역사에 수많은 순간들은 그 자체로 축구에 열광하게 만든다. 단순히 유니폼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그런 멋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었다.
조금 더 나아가 왜 하필 맨유일까.
이 또한 대표님의 대답에, 또 나의 경험 속에 고스란히 존재했다. 소위 '해버지'라고 불린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 입단한 것은 지금의 축구판을 있게 만든 원동력이다. 큰 관심이 없던 해외축구를 전국민적 사랑을 받게 한 계기가 되었고, 특히 박지성 선수와 함께 뛰고 있는 맨유 선수들에게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렇듯 조금이나마 축구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선수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누구나 마음 안에 맨유를 품고 있다. 박지성 선수가 활약한 다음 날이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랬던 추억이 지금까지도 축구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맨유는 단순한 축구팀이 아니다. 그 안에 추억이 담겨있고, 함께 울고 웃던 기억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맨유를 테마로 하자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 있었다.
왜 우리가 이것을 하고 싶은지가 결정되면, 그다음은 if이다. 즉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기획해서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이걸 보고 듣고 경험했을 때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가져가게 만들 것이냐. 이게 "왜"다음으로 중요한 내 나름의 기획 철학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처음과 끝이 가장 중요하다.
"기억과 추억을 선물하는 공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다양한 유니폼을 팔고, 이와 관련된 굿즈를 팔고, 전시하고 이벤트를 하는 것들은 모두 How의 영역이다. 즉,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킬지가 정해지면 이를 위해 뭐든 하면 된다.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도 짧았다. 그렇다. 모든 실마리는 결국 우리가 이 행사를 왜 하는지에 있다. 이것이 명확하면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이것으로 끝나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맨유의 팬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프레임보단, 우리가 즐겼던 그 옛날의 맨유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곳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아트워크들도 맨유가 누렸던 영광의 순간을 재현했고, 박지성 선수의 활약 전후의 순간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작품에 캡션을 달기도 하고, 당신에게 맨유란?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또 특정 유니폼들 중에서도 옛날 맨유 유니폼을 많이 준비해 두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상상하며 VMD 배치를 했고, 즐겁지만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제 우리 손을 떠났다. 모든 기획은 완료되었고, 사람들이 이곳을 어떻게 접하고 느끼는지는 강요할 수 없다. 마케팅적으로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알리고 또 콘텐츠로 소개했다. 그렇게 행사는 시작됐고, 이제 딱 3일이 지났다.
이번 행사는 내게도 좋은 기회였다.
기획적으로 어떤 것들을 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획에 정답은 없다. 오직 우리가 상상하고 생각한 걸 어떻게 현실로 구현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상상한 그림이 얼추 완성은 됐다. 하지만 욕심이 난다. 다음에는 더 크게, 더 멋있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쌓다 보면 언젠간 또 이런 재밌는 일을 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번 기획에 참여한 것은 개인적인 니즈도 있었지만, 결국엔 재미와 의미 때문이었다. 작디작은 축구라는 시장 안에서 재밌는 무언가를 해나간 경험이 내게도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이 글을 다 읽은 분들을 위해 홍보를 하겠다. 결국 여태 이야기했던 모든 내용은 이 행사를 위해 존재했다. 그렇기에 만약 맨유를 좋아한다면, 맨유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면 한번 들려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제발!)
� ROAD TO GLORY❤️� @433seoul
ㅣ2025.06.06 (금) – 06.29 (일)
ㅣ마포구 동교로 17길 67 B1
ㅣ13:00-19:00
ㅣ월·화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