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직장생활
최근에 인터넷에서 글을 봤다. 타투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가정환경이 안 좋은 사람은 거르겠다는 이야기였다. 평균적으로 본인은 이런 사람을 거른다고 했고, 많은 사람들의 동의가 표해진 글이었다.
회사의 유일무이한 미혼의 젊은 여성인 나는,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다. 요즘은 내가 과연 '누구와 결혼할지, '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하다.
다들 감사하게도 나를 좋게 평가해주셔서, 누구를 가져다 놔도 아깝지 않다고,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며 돈도 잘 벌고, 직장도 안정적이고, 네임밸류가 있어야 하며, 부모님도 노후준비가 되어 있으며,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데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얘기하신다. 그리고 적극적인 예시를 들기 위해 반대 예시도 들어주신다.
누구 봐라, 돈 없는 집에 장가갔더니 나이 마흔 넘어도 아직 본인 집 한 채가 없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누구 봐라, 얼굴 예쁜 여자만 찾아서 장가갔는데 알고 보니 처가댁이 가난해서 금방 이혼했다.
더해서 돈과 명예, 화려한 삶을 좇지 않는 나는 실속이 없는 사람이라 결혼 생활도 손해를 볼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는데 이 회사에 다니는 내가 한심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보통 어떤 이야기를 하셔도 '예 그렇습니까' 하고 지나가는 편이지만, 최근에는 많이 힘들었다. 이 사람들이 '너는 행복한 가정을 절대 이룰 수 없다.' 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세울게 변변찮은 직업밖에 없는 나는, 가정교육은 커녕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왔고, 어른이 되어 밥그릇 챙길 나이가 되니 가족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임대아파트 분양권 사는데 돈을 보태라, 본인들 집을 한채 사주고 오를 때까지 기다려라, 자동차를 달라, 임플란트를 하기 위해서 돈을 보태라, 효도가 별거 있느냐 했다. 거기에다 지금은 나를 제외한 세 식구는 수입이 없는 상황이다.
내가 멀쩡한 부모라면, 이런 집에서 자란 사람과는 절대 결혼시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내심 있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하고 멋진 사람 인가 와는 상관없이, 어렸을 때부터 의식주에 부족함이 있었고 사랑에도 부족함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분명 마음속에 큰 결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며느리가 아무리 멀쩡해도, 사돈들이 그 모양이라면 분명 크게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평균적으로' 모난 사람인 나는, 결혼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들려오는 '이런 사람이랑 결혼해야 해' '이런 사람과는 결혼하면 안 돼'라는 이야기들은 내 마음을 어지럽히기만 했다. 싫다기 보단, 많이 슬펐다.
현대 사회에서 약점들이 도태되지 않도록 사회적인 장치로 어느 정도 보호해주고 있는 이상, 따돌림과 괴롭힘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설정해놓은 적자생존을 하려는 일종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상적인 평균을 설정해놓고, 편견을 토대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다. 나도 물론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주어진 환경은 당연하게 한 사람에게 온 것이 아니다. 유복하고 화목한 환경이든, 불우한 환경이든, 모든 것은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보다 못한 사람과 나보다 잘난 사람을 두고 이리저리 평가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를 인간대 인간으로 대할 때 가장 필요한 건 모든 걸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나서도, 과연 내가 남자 친구 집에서 환영받는 사람일까? 를 생각해보면 슬퍼진다. 편견이 아니라 평균적으로 나는 자격 미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없다. 묵묵하게 평균과 편견 사이에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