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직장 일기
우습게도 우울증 환자인 내가 회사에서 자주 듣는 소리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신기한 일이 여럿 생긴다. 그중 하나는 분명히 돌돌 잘 말려있던 실타래에 실이 엉키는 것이다. 분명히 잘 말려 있었는데, 분명히 내가 잘 말아뒀는데도 불구하고 실은 엉킨다. 그나마 다루기가 수월한 실이면 꼼꼼하게 살피고 풀어내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한 실이면 어김없이 잘라내고 새로 매듭을 짓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잘 뭉쳐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엉켜있으며, 잘 풀지 못할 것 같다면 차라리 잘라내 버리는 것이 깔끔하다.
직장인들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맺어지는 공간은 아무래도 회사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엉킨 실타래처럼 엉킨 부분을 잘라내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더해서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내 하루 중에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가장 길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첫 직장에서 인간관계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고객들에게 받는 스트레스에 직장 내 동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매일마다 울면서 잠들고 울면서 일어났다. 하루는 내가 직장 동료의 생일 케이크를 사러 간 일이 있었다. 사실 나는 누구도 축하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나보고 케이크를 사 오라고 시켰다. 더운 여름날이었고, 나는 이것이 저들이 행하는 따돌림의 일종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울했다.
케이크를 사러 가서, 포크가 몇 개 필요한지 점원이 물어봤다. 직장에 같이 먹을 사람이 일곱 명이라 일곱 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니 그만큼은 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순간 화가 너무 나서
요즘은 케이크를 손으로 먹는 게 유행인가 보네요?
라고 한껏 비아냥 거렸다. 점원이 죄송하다면서 포크를 일곱 개 챙겨주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게 무더운 날 내 쉬는 시간에 다른 사람의 생일 케이크를 사 오라며 내보낸 그들과 다른 게 없어 보였다. 나는 그 날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다.
나는 그 이후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애초에 풀어나갈 실타래가 없게끔 행동했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했고, 내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뭔가 기분 나쁘다는 표시를 내면 곧장 사과했다. 누가 무엇을 해도 '그렇겠거니' 행동했다. 사람들에게 벽을 치고 생활했다. 이 벽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아주기도 했지만,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웃는 모습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밝은 내 모습에 빗대어 '회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이런 나의 방어막은 나를 상처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나를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나랑 같이 지내본 사람들은 알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개인적인 틈을 주지 않는지 말이다. 나는 항상 외롭다. 웃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면은 뻥 비어있다. 겉은 멀쩡해 보이는 실타래이지만, 사실 속은 비어있는 것이다. 나의 인간관계로는 아무런 뜨개질도 할 수 없다.
최근 입원 권유를 받으면서 병가를 사용할지 말지 고민했다. 병가를 사용하게 되면 인트라넷에 병가 사유가 뜨게 되는데, 세상 사람들이 내 아픈 곳을 다 알게 되어버리는 것이 무서워 입원 치료를 받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일만큼 쌓아둔 관계의 벽을 내손으로 허물수 없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오늘도 우울한 나는 행복한 가면을 쓰고 출근길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