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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Jan 07. 2021

더 이상 신입이 아닌 우울증 환자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직장생활 08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났다. 만 일 년이 되는 날 회사에 한라봉이랑 과자를 돌렸다. 입사 일주년 기념 막내가 쏜다! 를 계획했다고도 이야기했다. 다들 벌써 일 년이 되었냐고, 시간이 참 빠르다고 해주셨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쩌다 이곳에 입사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다 시험을 봤고, 어쩌다 면접을 봤다. 그리고 합격을 했다. 11월에 신입자 교육이 있었는데, 멘티로 참가한 임원급 박사님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느냐.'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다 보니 합격해서 어쩌다 보니 일을 하고 있는데 만족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내가 입사 후에 들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 자리에는 원래 내정된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다섯 명이서 면접을 봤었는데, 한 명은 내정자, 두 명은 경력직에 석사, 다른 한 명도 석사였다고 한다. 나 혼자서 학사에 경력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뽑힌 것이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원래 남자를 뽑고 싶어 하셨다고 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자리에 들어와서 아쉬운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일을 잘하라고 압박을 주는 것 같았다. 지금은 내가 그만큼 대단하니까 일을 잘해볼 있겠지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입사를 하고,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이제 일도 어느 정도 손에 익었고,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일할 시간이 모자라 지기까지 한다. 일을 잘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익숙해지긴 했다.


아직도 출근은 하기 싫다. 밤에 잠들기가 싫다. 아침이 오고 새로운 날이 밝아서 또 새로운 날을 살아가야 한다는 게 무섭다. 나에겐 삶이 아직 버겁다. 내가 왜 이 삶을 견뎌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돈을 벌고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이유도 모르겠고, 내가 아직 더 살아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다 겪은 거 같고, 뭔가 더 해보고 싶지도, 겪어보고 싶지도 않다. 나는 아무래도 오래 살지는 못 할 거 같다.

그래도 막상 일을 하러 가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잘 해내고 있다.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 어제도 연차를 내고 병원에 다녀왔다. 자살 충동이 계속 들어서였다. 역시나 자세한 상담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약을 처방받아 왔다.


이제 일한 지 일 년이다. 이제 사회 초년생, 신입사원 딱지를 떼어냈다. 어떻게 일을 잘 버텨냈다. 이것 만으로도 굉장히 대단한 일이라는 걸 안다. 지금 일에 만족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전에 아마 나는 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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