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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7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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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May 24. 2023

실장님이랑 같이 출장 가기 싫은데요.

저도 회사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박모씨, 내일 여수에 좀 가지 않을래요?"


"예?!!!"


어느 목요일에 실장님이 갑자기 본인과 함께 당장 다음날 여수 출장을 갈 것을 명했다. 여수에서 하는 어느 연수교육을 우리 회사에서 함께 공동주최 하기 때문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공동주최 하는 김에 실무를 하고 있는 젊고 어느 정도 네임벨류가 있는 직원을 데리고 가고 싶어 하신 것 같았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버버버 거리던 찰나, 실장님 본인은 당장 오늘 여수로 간다며 가버리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당장 다음날 휴가를 낼 계획이었다. 아침에 미용실을 갔다가 운동도 하고, 데이트도 할 계획이 있었는데, 여수 출장이라니요! 차비만 10만 원이 넘게 나올 텐데! 왔다 갔다만 6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그렇지만 부서에서 최고 높은 사람 중 한 분이신 실장님께서 명하신 거라 가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팀장님께 알리고 어떻게 해야 될지 여쭤보려고 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갑자기 여수에 어떻게 가냐. 못 간다고 해라'라고만 말씀하셨다. 이럴 수가, 팀장님께서 실장님께 말하시기도 불편한 눈치였다.


이미 실장님은 길을 떠난 상황에 어떻게 할까 가슴을 졸이던 찰나,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연수교육을 공동주최 한다고? 그렇다면 옛날 옛적부터 알고 있으셨을 텐데 이걸 바로 전날 같이 가자고 하셨잖아? 그것도 머나먼 여수까지 가는 걸!' 나이가 지긋하게 많은 실장님이 조금은 괘씸해졌다.

아무리 최고 결정자 중에 한 분이신 실장님의 요청이지만, 업무 프로세스에 부적합한 요청이었다. 나를 진정 데리고 가고 싶으셨다면 그전부터 말씀해 주실 수 있는 사항이었다. 가시던 길에 '앗 저 친구도 데리고 갈까? 나쁠 건 없을 거 같다.' 하셔서 물어보신 게 아닐까 싶었다. 나를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으실 수도 있고, 감사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거절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전화번호부에 저장도 안 해둔 실장님의 개인 휴대폰 번호를 응급상황 전화번호부에서 겨우겨우 찾아 전화를 드렸다.


"여보세요, 실장님 저 박모씨인데요. 당장 출장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다음 연수교육 때는 참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어쩔 수 없지."


마음 졸였던 것에 비해서 통화는 짧고 간결하게 끝났다.


회사 생활을 계속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면 마음이 메말라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감정을 조금 멀리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해서 이 사람이 기분 나빠하면 어떻게 하지.'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조금 줄어들었다.


미움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말이 내 업무 밖의 일을 인정받기 위해 무한정하라는 말은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거절하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적합한 사람을 찾아 나서게 해줘야 한다. 누가 권력자고 누구의 말이 옳은가로 움직이는 조직보단 하나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움직이는 조직이 더 건강하지 않을까? 나는 연수교육에 참가한 다른 참가자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드리고 조언을 해드리기 위해서 다음 연수교육에 참가하여 연자 발표를 하기로 말씀드렸다.


그리고 뭐 실장님이 나를 미워하고 마음에 안 들어하시면 어쩌겠는가. 이미 이런 나를 고용한 건 그쪽인데! 마음에 안 드신다고 나를 회사에서 내쫓으셔도 나는 충분히 능력 있고 대단한 사람이니까 어디서든 잘 지낼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


나의 용기 덕분에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봄꽃을 보면서 길어진 해를 만끽하는 데이트를 하는 연가를 보냈다. 다른 사람의 요청을, 특히나 상사의 요청을 거절한 일이 처음이라 그런가, 마음이 아주 편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나는 나를 잘 보호해줘야지, 하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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