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통주 이야기 옮겨오기-88
갑작스러운 더위다. 올 여름은 시작도 빠르고 기온도 높을 거라 예상을 하고 있다. 전통주에게 여름은 반갑지 않은 계절이다. 더워질수록 청량감 있는 맥주를 많이 찾기 때문이다. 또한, 발효주가 많은 전통주는 여름 유통 과정에서 변질되기가 쉽다.
물론 현대에 있어서는 냉장 시설의 발달로 술이 쉬어서 버려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과거 냉장 시설이 없던 여름에 바로 만든 술을 제외하고 보관을 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름에 마시는 술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과하주(過夏酒)가 그것이다. 지날 과(過), 여름 하(夏), 술 주(酒). 이름 그대로 온도와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 술이 상하는 것을 극복하는 데 목적을 두고 만든 술이다. 과하주는 탁주와 청주의 발효 중간에 도수가 높은 증류식 소주를 넣어 저장성을 높였다.
과하주는 탁주나 청주보다 도수가 높고, 달다. 단맛은 탁주나 청주의 발효 과정 중에 독한 소주로 인해 미생물들의 활동이 중단되면서 술 속 당 성분이 소비되지 않고 남아서다. 결과적으로 술의 단맛은 유지되고 술맛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과하주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첫 기록이 1670년 <음식디미방>이라는 문헌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 실제 술을 빚는 것은 그 이전부터 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물론 과하주라는 술이 소주를 넣어서 만들어지는 술이기에 소주가 만들어진 이후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소주 제조법이 우리나라에 퍼지기 전에 이미 만들어진 다른 술들을 빚고 있던 술에 부어서 알코올을 높이고 보존기간을 연장한 제조법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증류주가 발달하면서 발효주 첨가 제조법에 소주를 넣는 방법이 추가 되었고, 그에 따라 과거에는 없던 형태의 술인 과하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술 제조법의 보면 세상에 비슷한 제조법을 가진 술이 존재하는 데는 우연보단 필연이 작동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제조법으로 만든 술이 외국에도 있다. 포르투갈의 포트(Port), 마데이라(Madeira) 와인과 스페인의 셰리(Sherry), 프랑스의 뱅 두 나투렐(Vin Doux Naturel), 이탈리아의 마르살라(Marsala)가 같은 술이다.
모두 과실주를 증류해 만든 브랜디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첨가시켜 달콤한 맛을 내는 주정강화 와인들이다. 와인에 증류주를 추가해 저장성을 높인 것이다. 포트 와인도 과하주와 마찬가지로 저장성이 높다. 유럽은 16세기 이후 대항해시대를 통해 발효주(와인)를 변패시키지 않고 먼 곳까지 옮겨야 하는 필요성이 커졌다.
특히, 17세기 영국과 프랑스가 주축이 되어 벌린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으로 영국의 와인 수입상들이 프랑스 대신 포르투갈에서 와인을 수입하게 되었다. 이때 수송거리가 길어지면서 와인이 상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와인에 증류주를 넣은 것이 포트 와인의 시작이다.
이러한 문헌상의 기록이나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과하주가 외국의 포트 와인 제조법보다 100년 정도 앞선 제조법이라 이야기 할 수 있을 듯하다. 조상들은 증류주 제조법을 외국으로부터 받았지만 그 제조법을 우리 제조법과 결합시켜 새로운 술을 외국보다 빠르게 발전시킨 셈이다.
과하주는 개화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셨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유명한 술을 언급하면서 전국적 유명한 술로 감홍로, 이강고, 죽력고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특정 시기(봄, 여름)에 마시기 좋은 술로는 경성 과하주(여름)와 금천 두견주(봄)를 꼽았다.
일제강점기 우리 술을 조사한 '조선주조사'를 살펴보아도 개화기 때 많이 만들어지고 소비된 술로 조선탁주, 조선약주 외에도 과하주, 감홍로 등을 소개하고 있다. 과하주를 조선 고급 음료로 소개를 하는 것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마셨고 대중화되어 있었던 술로 보인다.
구매력이 상승하면서 외국의 다양하고 좋은 술들이 수입이 되고 있다. 과거에 견줘 전통주의 맛과 품질이 좋아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외국 술의 가치는 높게 평가하면서도 전통주는 낮게 본다.
과하주가 포트 와인이나 셰리와인과 견주어서 결코 맛이 떨어지지 않는 데도 사람들은 과하주를 알지 못한다. 조상들이 많이 마셨던 좋은 술들이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새롭게 생산되고 있다. 이제 맥주나 와인, 위스키의 관심처럼 핫 하게 떠오르는 전통주에 관심을 가져도 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 동시 송고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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