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주(酒)저리 주(酒)저리-160
몇 년까지만 해도 소주는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로 나누어서 국세청에서 관리를 해왔다. 희석식 소주는 주정이라 불리는 85% 알코올에 물과 감미료를 섞어서 만드는 술이다. 고도주인 주정에 물을 넣어서 도수를 낮추는 희석과정이 있기에 희석식 소주라 부른다. 우리가 잘 아는 참이슬, 처음처럼과 같은 대중적인 소주라 할 수 있다. 반면, 증류식 소주는 발효가 된 술을 증류해서 만드는 술로 제조방법에 따라 다양한 도수나 맛이 만들어질 수 있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증류 술이다.
처음에는 두 가지 술이 다른 제조방법과 형태이기에 나누어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2013년 희석식 소주를 규정하던 조문이 주세법에서 사라지고 세율이 같다는 이유로 '소주'로 통합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세율이 같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일설에 의하면 희석식 소주를 만드는 회사들이 희석식 소주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소주라는 이름으로 통일하기를 원했다는 이야기가 야사처럼 언급되고 있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가 아닌 증류식 소주이다. 희석식 소주는 향이나 맛으로 먹는 술이 아니다. 술을 즐긴다는 표현보다는 털어 넣는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술에 대한 평가가 낮다. 반대로 증류식 소주는 발효를 하고 숙성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생성되는 다양한 향과 증류에서 생성된 맛이 있다. 개성 있고 다양한 맛을 즐기는 젊은 세대의 소비와 맞는 부분이 있어 소비가 증가되고 있는 것이다.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는 또 다른 차이가 하나 있다. 같은 소주라는 이름이지만 한자로 쓰는 단어가 다르다. 2003년 이전에는 소주 제품에 한문으로 희석식 소주(稀釋式 燒酎), 증류식 소주(蒸溜式 燒酒)라 적었다. 분명 알코올로 만들어지고 불리는 한글 이름은 같은데 두 가지의 술은 왜 다른 한자 단어 燒酎, 燒酒를 사용하는 것일까? 한자의 뜻을 풀이하기 위해서는 옥편이라는 한자 사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옥편에서 소주의 燒(불사를 소)자는 술을 만들 때 끓이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다음으로 술이라는 뜻을 가진 酒(술 주)자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한자이다. 탁주(濁酒), 약주(藥酒), 청주(淸酒) 등 술을 이야기할 때는 이 한자를 사용한다. 반면, 酎(전국술 주)자는 옥편에서 세 번 빚은 술 또는 물을 타지 않은 진한 술로 풀이하고 있다. 아마도 酎자는 일반적인 제조법보다는 조금 더 원주에 가깝거나 원료를 많이 넣어서 만든 술들에 붙이는 한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酎자는 우리가 마시는 희석식 소주에 사용되었을까? 희석식 소주의 원료가 되는 주정은 다양한 녹말 원료를 발효 후 다단식 증류기를 이용해서 알코올 도수를 높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향과 맛은 사라지고 알코올을 순수하게 모은 형태이다. 희석식 소주는 한 번만 증류하는 게 아니라 여러 번의 연속식 증류를 통해 만들어 지기에 세 번 빚었다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증류식 소주는 한번 또는 두 번 정도의 증류를 해서 만드는 게 보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소주를 燒酎라고 썼을까?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는 소주(燒酒)라는 단어가 176번 나온다. 소주(燒酎)는 한 번도 나오지를 않으며 승정원일기에서도 燒酒는 111건, 燒酎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 燒酎는 언제 등장을 하는 것일까? 1909년 처음 주세법이 만들어질 때도 주류의 분류에서 증류주 중 소주는 燒酒를 사용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1916년 주세령이 발표될 때는 증류주로 소주(燒酎)가 등장한다. 신문 기사로는 대한매일신보의 1910년 6월 14일 자에 燒酎禁止稟請(소주금지품청, 소주금지를 청하다)라는 기사에 처음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연속식 증류기로 내린 소주를 ‘신식 소주’라고 불렀다. 이소주의 일본어 한자가 바로 燒酎였다. 연속 증류한 식신 소주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처럼 燒酎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1910년에는 우리에게 주정은 아마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품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1919년 6월 평양에 한반도 최초의 희석식 소주공장인 조선소주가 세워졌고, 동년 10월 인천에 남한 지역 최초의 희석식 소주공장인 조일양조장이 세워졌다.
일본식 주정으로 만든 값싼 소주가 보급되면서, 값싸고 알코올 도수가 일정한 신식 소주의 인기는 재래식 소주를 누르고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결국, 일본식 주정 소주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조선 시대에 사용했던 소주(燒酒)라는 개념은 희미해지고, 일본식 단어인 소주(燒酎)가 주인 행세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한자를 배우고 있지 않는 지금 세대에게 소주(燒酎)와 소주(燒酒)의 차이는 별로 큰 차이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어가 가진 힘이라는 것은 가끔은 우리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지배할 때도 있다. 최근 증류식 소주가 젊은 층에게 다가가고 있고 소비도 증가되고 있다. 이러한 소주는 희석식 소주(燒酎)가 아닌 증류식 소주(燒酒)라는 분명한 차이를 느끼고 알아야 할 것이다. 두 술은 증류를 한다는 방식은 같지만 맛과 향을 즐기는 방식에서는 분명히 다른 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