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주(酒)저리 주(酒)저리-237
매년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방문객은 증가 추세에 있다. 작년의 경우 약 1,894만 명이 한국을 방문해서 24년 대비 8% 증가했으며 올해는 2,000만 명 관광객 시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한국관광테이터랩). K-팝, K-드라마, K-푸드가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동안, 외국인들이 한국을 처음 마주하는 공간은 여전히 공항과 항공기다. 우리나라 방문객의 87%가 공항을 이용하고 있다. 그만큼 공항과 국적기는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 ‘국가 브랜드의 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작년 청주국제공항 면세점에 충북 전통주 10종이 입점했다는 소식은 반가운 변화다. 특정 지역 전통주가 공항 면세점에 입점한 사례는 상징성이 크다. 이는 공항이 단순한 출국 공간이 아니라, 지역 문화와 상품을 세계에 소개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인천국제공항은 이미 세계적인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 매장이 입점해 있고, 한국 전통문화 체험 공간도 운영된다. 공항 면세점은 이제 ‘세금이 면제된 쇼핑 장소’가 아니라 국가 이미지를 구성하는 전략적 공간이다. 세계 주요 공항들이 자국 대표 술을 전면에 배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전통주는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면세점 매대의 중심에는 위스키와 와인이 자리하고, 전통주는 제한된 수량과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다행인 것은 최근 공항 면세점에서의 전통주는 과거에 비해 종류도 다양해졌고, 매대도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공항 면세점에서의 전통주 판매를 통해 우리 전통주를 알릴 기회가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외국인들에게 전통주는 낯설기에 전통주를 소개할 수 있는 한국 전통주 홍보 공간이 공항에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더 아쉬운 지점은 공항이 아니라 기내다. 우리나라 대표 국적기의 기내 서비스를 떠올려보자. 장거리 노선에서는 와인, 위스키, 샴페인 등 다양한 주류가 제공된다. 기내 면세 카탈로그에는 수십 종의 외국산 주류가 실려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을 대표하는 술’은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 일부 노선에서 제한적으로 막걸리가 제공된 적은 있지만, 상시적이고 체계적인 전통주 서비스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기내 면세 주류 구성을 살펴보면 와인과 위스키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사케와 고량주도 일정 부분 포함되어 있지만 전통주는 찾을 수가 없다.
최근 국적기 면세품 리스트를 보았을 때 와인 및 위스키가 약 70종, 고량주가 7개, 맥주 2개, 증류식 소주 2개, 사케 8개 정도였다. 여기에 국내 증류식 소주가 판매되고 있지만 법적인 기준으로 전통주에 속하는 증류식 소주가 아닌 일반 주류의 증류식 소주였다. 결국 법적 범주에 속하는 전통주인 증류식 소주나 약주, 막걸리는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상품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브랜드 전략의 공백이다.
기내는 매우 밀도 높은 문화 경험 공간이다. 승객은 평균 수 시간 이상 머물며 항공사의 서비스를 체험한다. 기내식, 음료, 승무원의 응대 방식은 곧 국가 이미지로 연결된다. 일본 항공사에서 사케를 제공하고, 프랑스 항공사에서 보르도 와인을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국의 술은 자국 문화를 설명하는 가장 직관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기내에서 전통주를 적극적으로 제공하지 않는가? 품질 안정성, 병 파손 위험, 보관 문제, 인지도 부족 등 여러 현실적 고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전통주 산업의 품질 수준은 과거와 다르다. 국제 주류 품평회에서 수상하는 사례도 늘었고, 소용량 패키지도 가능하다. 캔 막걸리, 미니어처 증류주 등 기술적 해결책은 충분히 모색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의지와 기획일 것이다. 기내에서 전통주를 ‘서비스’하는 것과 ‘판매’하는 것은 서로 다른 전략이지만, 동시에 추진될 때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된다. 예를 들어 장거리 노선에서 기내식과 어울리는 한 잔의 전통주를 공식적으로 제공한다면, 승객은 자연스럽게 한국 술의 맛과 향을 경험하게 된다. 전통주는 단순한 알코올음료가 아니라, 곡물 발효 기술과 지역 농업, 역사가 축적된 문화 자산이다. 국적기에서 한식과의 페어링을 통해 제공된다면, 우리 식문화 소개의 연장선에 놓인다. 그 경험은 곧 브랜드 인지도로 이어진다. 이후 기내 면세 카탈로그에서 해당 전통주를 구매할 수 있도록 연계한다면, 경험과 소비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국적기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를 오간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한 잔의 술은 곧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지금처럼 외국 고급 주류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국적기’라는 상징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일정 비율 이상을 전통주로 편성하고, 상징적 대표 제품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공항 면세점에서 전통주를 확대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면, 이제 다음 단계는 기내다. 공항에서 보고, 기내에서 맛보고, 면세로 구매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전통주가 여행자의 기억 속에 ‘한국을 상징하는 맛’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하늘 위의 몇 시간은 짧지만, 그 경험은 오래 남는다. 그 시간 속에 한국의 술이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기회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이제 국적기도 전통주를 판매할 때다. 그리고 동시에, 전통주를 서비스할 때다. 하늘 위에서 시작되는 K-술 전략이야말로, 2,000만 관광객 시대에 걸맞은 문화 마케팅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출처 : 소믈리에타임즈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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