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주(酒)저리 주(酒)저리-238
우리나라 증류주의 기원은 대체로 고려 후기, 몽골의 고려 침략 과정에서 증류 기술이 유입되었다는 설명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해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의 ‘원대 이전 기원설’이나 최남선의 ‘이슬람 상인을 통한 직접 전파설’ 등 다양한 전파 가설도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문헌과 고고학적 정황을 종합하면, 증류 기술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확산된 시기는 원 간섭기 이후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일부 전통주 업체의 홍보 자료에서는 증류주가 이미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이는 역사적 근거가 빈약한 해석으로, 사실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증류주의 초기 성격은 오늘날의 ‘술’이라기보다 ‘약’에 가까웠다.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은 “우리나라 소주의 제조는 원나라에서 비롯되었으며, 당시에는 오직 약으로만 사용되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증류주가 기호 음료로 정착되기 이전, 약용 물질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려의 소주 전파는 원나라의 군사, 행정적 개입과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다. 몽골은 삼별초를 제압한 이후 고려를 통치하기 위해 동녕부(서경), 쌍성총관부(화주), 탐라총관부(제주) 등을 설치하였고, 이들 지역에는 상당수의 원나라 관리와 군인이 주둔하였다. 자연스럽게 몽골의 생활 문화, 그중에서도 증류주 문화가 이들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현재 ‘소주가 발달한 지역’으로 평양, 안동, 제주가 이야기되며, 그 이유로 일본 원정을 위한 원나라의 병참기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덧붙는다. 그러나 실제 사료를 살펴보면, 일본 원정을 위한 주요 병참 거점은 개성, 제주, 합포(마산)였으며, 안동에 원나라의 공식적인 병참기지가 설치되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몽골의 일본 원정 과정 전반이 안동 또는 우리나라 전역의 증류주 확산에 또 다른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안동이 소주 문화의 핵심 지역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여러 역사적 계기가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첫째, 1281년 일본 원정 당시 충렬왕이 안동을 임시수도 형태로 행궁을 설치하고 체류한 사실이다. 이 시기 고려–몽골 연합군과 수행 인원이 안동 일대에 머물렀고, 자연스럽게 소주가 전파되고 확대되었을 것이다. 원정 실패 후 퇴각 과정에서도 안동을 경유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이러한 이동과 체류 과정은 증류 문화의 지역 확산과 무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1361년 12월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약 70일간 안동에 피난한 사건이다. 당시 추운 겨울을 나며 많은 음식과 소주를 소비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미 이 시기는 소주가 상당히 확산하여 있었으며, 1375년에는 그 폐해를 이유로 금지 조치가 논의될 정도였다. 두 차례에 걸쳐 임시 수도의 기능을 수행한 안동은 중앙의 인적·물적 자원이 집중되는 공간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소주 문화 역시 지역 사회에 더욱 깊이 자리 잡았을 것으로 보인다(1).
따라서 안동소주는 ‘원나라 병참기지의 직접적 산물’이라기보다, 고려 후기의 정치적 격변과 인적 이동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축적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몽골의 군사 주둔이 강했던 합포(마산)나 나주 일대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소주 전통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보탠다. 이러한 관점은 소주의 기원을 특정 장소에 고정하기보다, 몽골 지배가 한반도 전역에 미친 구조적 영향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시사한다.
여기에 더해 ‘안동’이라는 지명의 역사적 범위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안동은 조선 후기 이후 형성된 행정, 문화 중심지를 가리킨다. 고려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안동은 더욱 광범위한 행정 개념이었다. 다만 고려시대 안동부가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중심 지역을 포괄하는 행정 단위였다는 점, 그리고 조선시대 읍치(행정 중심)가 현재의 도심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려시대 안동 역시 현 안동 도심과 일정 부분 공간적으로 중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2).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안동소주’는 역사적 사실과 지역 정체성이 교차하며 형성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안동소주라는 명칭이 오늘날처럼 정착되기까지에는 전통적인 가양주 전승과 지역적인 명칭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안동소주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시점은 1915년 전후 주세 제도 개편 이후이다. 면허제 시행으로 가양주가 위축되고 주조회사 중심 생산 체계가 형성되면서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동주조(1923년 설립)의 안동소주였다. 안동주조의 안동소주는 ‘안동’이라는 지명을 전면에 내세워 지역성과 상품성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안동소주는 두 가지로 구분되어 판매되었는데, 하나는 송학이 그려진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비원(안동시 남문동에 보물 115호인 이천동 제비원 석불상)의 불상이 그려진 것이다. 제비원이 그려진 안동소주를 ‘연미원’이라 이름 붙였고 안동 사람들은 이를 ‘제비원’ 안동소주라 불렀다. 이로써 안동소주는 오랜 증류 전통 위에 근대적 주류 산업과 브랜드화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명확한 지역 명칭을 얻게 되었다.
제비원 안동소주는 경북도내는 물론, 1929년 전조선 주류 품평회에서 동상, 1930년 전국의 소주 품평회에서 1등을 하는 등 지역을 넘어 전국에서 인지도를 넓혔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른 지역의 소주가 대규모 생산 체계를 갖추거나 희석식 소주 생산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안동소주는 설립할 당시의 규모와 제조 방식을 고수하면서 더 크게 성장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안동을 아는 사람이면 제일 먼저 떠올릴 지역의 대표적인 명승지인 제비원을 상표로 내세우며 제비원=안동소주란 공식을 만드는 데는 성공을 했다. 제비원 소주는 상업적 브랜드로서 유통되었고, 이를 통해 ‘안동에서 나는 소주’는 점차 ‘안동소주’라는 고유명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강화된 주세 정책과 해방 이후의 산업 구조 변화는 제비원 소주 쇠퇴의 배경이 되었다. 1945년 해방 전에는 전쟁으로 인해 불황이 장기화하였고, 일본의 곡물 수탈은 심했으며, 저가 원료로 만드는 희석식 소주가 주류를 이루었다. 해방 후에도 식량난과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주류업계의 불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해방 후 희석식 소주의 제조가 월등하게 많았음에도 증류식 소주에 대한 선호도도 상당했다. 하지만 1964년 식량 부족 해소를 위해 시행된 양곡관리법은 쌀을 원료로 한 증류식 소주의 제조를 전면 금지하면서, 곡물 증류를 기반으로 하던 안동소주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1964년 안동주조도 희석식 소주만 만들기 시작하면서 순곡물로 만드는 안동소주는 역사의 막을 내렸다가 볼 수 있다. 이후 값싼 수입 주정을 희석해 만드는 희석식 소주가 급속히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전통적인 증류 소주 업체들은 점차 경쟁력을 상실해 갔다.
1971년 안동소주를 포함하는 경북도 내의 23개 소규모 소주 제조업체들이 모여서 ‘경북소주공업(주)’로 통합했고 그 중의 가장 유명한 상표였던 제비원 소주 이름으로 술을 시판했다. 하지만 1970년대 정부가 추진 한 이른바 ‘1도 1사 원칙’에 따른 주류업체 통폐합 과정에서 위의 회사는 대구, 경북권의 주류 기업인 금복주에 흡수, 합병(1975년)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비원’이라는 상표권과 주요 생산 설비는 대구로 이전되었고, 안동 지역에서 이루어지던 대량 생산 체계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 금복주가 ‘제비원 소주’를 다시 출시하지만, 그 명성은 과거와 같지 않았다. 이로써 제비원 소주는 상품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고, 역사적 기억 속으로 남게 되었다.
해방 이후 전통주 복원 담론 속에서 안동이 소주의 대표 지역으로 이야기되는 배경에도 이러한 근대적 경험도 함께하고 있다. 결국 오늘날의 안동소주는 고려 후기의 기술 전래, 조선시대의 지역적 전승, 근대 산업화와 브랜드화라는 세 층위가 축적된 결과이다. 이 가운데 ‘안동소주’라는 이름을 사회적 인식 속에 고정한 결정적 계기는 제비원 소주의 등장과 확산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제비원 소주는 안동소주를 하나의 지역 술이자 사회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이름으로 ‘보이게 만든 술’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제비원 소주의 소멸은 한 지역 브랜드의 퇴장이 아니라, 곡물을 증류해 빚던 한국 증류식 소주가 산업 구조와 정책 변화 속에서 소외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소주는 여전히 가장 대중적인 술이지만, 그 대부분은 희석식 소주이며 증류식 소주는 소비 구조 속에서 극히 제한된 위치에 머물러 있다. 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제도와 유통 구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값싸고 균질적인 희석식 소주가 시장을 장악하는 동안, 지역의 곡물과 서사를 담은 증류식 소주는 설 자리를 잃었다. 그 결과 우리는 소주를 마시면서도, 소주의 역사와 제조 방식의 차이를 체감할 기회를 점점 잃어왔다.
이제 증류식 소주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은 단순한 전통 보존을 넘어, 한국 술 문화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시장에서 소주라는 이름은 대부분 희석식 소주를 가리키지만, 곡물을 발효하고 증류해 만드는 증류식 소주는 원료와 제조 방식, 그리고 지역성을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다. 따라서 전통주 정책과 시장 논의 속에서도 제조 방식에 따른 구분과 지역 증류주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해석, 그리고 증류식 소주의 산업적 기반을 지원하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한때 제비원 소주가 안동소주를 사회적으로 ‘보이게 만든 술’이었다면, 오늘날의 과제는 증류식 소주가 다시 우리 사회 속에서 보이고, 마셔지고, 이야기되는 술로 자리 잡도록 만드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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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동은 어떻게 소주가 발달한 지역 중 한 곳이 되었나! https://brunch.co.kr/@koreasool/256
(2) 지리2(地理 二) 경상도 안동부 https://db.history.go.kr/id/kr_057r_0010_0010_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