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요리옥에서는 샴페인과 위스키를 팔았다.

우리술 자료 펼치기(옛 신문을 중심으로..)-18

1909년 주세법이 제정되기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자가 주조가 자유로웠기에 일반 가정에서도 쉽게 술을 빚을 수 있었다. 그러기에 술을 만들고 팔고 하던 것이 일반인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술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공간이 ‘주막’ 일 것이다. 실제 주막은 술과 밥을 팔면서 길손을 재워 주는 곳이다. 큰 도시의 경우는 술과 음식을 파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시골에서는 식당과 숙박업을 겸했다. 대부분의 주막 형태들은 식사와 함께 간단하게 술을 곁들여서 마시는 공간으로 외식산업의 시초라 볼 수도 있다.(1)

noname01.jpg 김홍도 「주막」

반면 조선왕조는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본격적인 근대국가로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근대를 향한 새로운 움직임은 음식과 외식분야에도 나타났으며 외국 음식문화를 빨리 받아들인 것은 궁중이다. 고종은 손탁(1)이 만들어 올리는 프랑스 요리와 커피를 즐겼고 황태자는 아침은 서양요리, 점심은 일본 요리, 저녁은 다시 서양요리를 먹었을 뿐 아니라 궁중을 찾은 대내외 관료들에게도 커피뿐만 아니라 프랑스산 포도주, 샴페인, 영국산 비스킷, 빵 등이 제공될 정도로 음식 문화는 빠르게 변하게 되었다.

2.jpg 대한제국의 황실 연회 음식을 재현한 행사(정통 프랑스식 12코스) / 출처 – 중앙 sunday 2017.10.15

또한 서양 함대 선원, 외교사절단, 여행객, 주재원 등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외식이라는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문화가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돈이 있던 상류층은 수용이 가능하였지만 돈이 없던 서민층에게는 그저 호기심의 대상 정도였다. 개항 후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이 찾아갈만한 깨끗한 음식점이 없다고 불평하던 차에 생겨난 새로운 유흥공간이 일본 요리옥이다. 서울에 등장한 일본요리점은 근대적 외식업소로 각광받았고 금방 번창하였다. 이러한 일본 요리옥을 보고 배워 새롭게 태어난 것이 조선 음식을 판매하는 조선요리옥이다. 조선 요리옥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1898년 광교 남쪽에 수월루가 처음 언급되었고 이후 취향루, 혜천탕, 청향다관 등 많은 요리옥 또는 유사한 형태의 업체들이 만들어졌지만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조선요리옥은 명월관(1903년 오픈, 주인 안순환)의 일 것이다. 명월관은 궁중요리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술은 궁중나인 출신들이 담근 술을 쓰면서 인기를 끌었다.

%EB%AA%85%EC%9B%94%EA%B4%80.jpg 명월관 / 출처 - 문화콘텐츠닷컴

조선요리옥집에서는 다양한 음식을 팔았다. 대표적인 명월관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초기에는 국내외 요리와 술, 과일, 과자, 담배 등이 제공되고 각종 연회식 요리, 진찬합, 마른 찬합 및 교자 음식 등이 제공되었다. 이후에는 개량식 조선요리 교자상, 일반 요리 교자상, 밥과 마른반찬을 한데 섞어서 차린 교자상, 술안주상, 각종 서양요리 등을 팔았다. 이밖에 음식에 어울리는 술도 판매를 했다. 초기에는 약주, 소주 등 조선 전통술에 일본 술 정도를 판매를 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샴페인, 위스키, 브랜드, 포도주 등 서양술 등으로 다양해졌다. 이처럼 대다수 조선요리옥의 메뉴는 국내외 음식과 각종 술을 판매하는 형태였다.(2)


조선요리옥집에 출입하던 사람들은 일반적인 평민은 아니다. 음식 가격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지위와 함께 재력이 없으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고위층들의 사교모임 장소였던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판매하는 주류가 처음에는 약주, 소주 등을 팔았지만 나중에는 백주와 청주 및 서양술까지 판매된 것으로 보아 이 당시 사회 고위층에서 상당히 많은 해외 술들을 마신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술의 수입은 꽤 오래전부터 진행되었었다. 해관세칙(세관 규칙)을 적은 한성순보 1883년 12월 20일 자 기사에 의하면 수입되는 주류에 대한 세금에 대한 내용에 중국·일본의 酒類(주류)·林禽酒(능금주)와 함께 적·백 포도주·맥주에 대한 관세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미 상당수의 외국술들이 수입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에 외국의 술들이 수입되었다.

4.jpg 한성순보 1883년 12월 20일자 / 출처-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화면 캡처

이처럼 수입된 술들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가까이에 있었는지는 신문의 광고를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캡처.JPG ‘황성신문’ 1903년 3월30일 구옥상전의 맥주(일본 에비스) 광고 /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신문 아카이브(3)


6.jpg 대창양행 위스키 광고 (「만세보」, 1906.11.5.)(4)- 위스키를 독점 판매하기로 했으니 필요한 분들은 직접 상점에 와서 구하라는 뜻


7.jpg 1925.5.24. 매일신보사 미쯔와 인삼포도주 /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또한 이러한 서양술의 수입량은 조선주조사를 보면 1916년부터 과실주, 위스키, 브랜디 등의 수입 규모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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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주조사(왼쪽), 주류 수입량(오른쪽) / 출처 - 조선주조사


이처럼 수입 술들은 가격이 높아서 조선요리옥 같은 고급 요리집에서 상당량이 판매가 되었을 것이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중산층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조선요리옥의 고급술 들은 현대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고급술들과 큰 차이가 없다. 맥주 정도가 과거의 고급이라는 이미지가 없어지지 않았을까 한다. 조선요리 옥을 포함한 모든 고급 식당에서는 처음에는 탁주와 약주를 팔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급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위스키와 포도주 등 다양한 수입 술들을 팔았을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수입 주류들의 판매는 증가했을 것이다. 이처럼 이름만 조선요리옥이지 이미 그곳에서 마시는 술들은 조선을 넘어 전 세계의 음식과 술들이 판매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의 술들은 고급 음식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은 맥주와 와인, 샴페인 그리고 위스키를 취급하고 있으며 우리의 술들은 조금은 저렴한 공간에서의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대중적이라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 고급요리집인 조선요리옥의 메뉴와 현재의 고급 식당들의 주류 판매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결과적으로 전통주도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밀려나는 것이 우리 스스로가 전통주의 가치를 과거부터 낮게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 전통주들이 조금더 품질을 향상시키고 고급스러운 모습으로 고급 음식점 또는 다양한 한식당에서 판매가 되는 날들이 왔으면 한다.

msk_59ba26b3adf00-1024x592.jpg 우리에게도 고급스러운 술들이 있다.



(1) 한국의 술 문화 Ⅰ, 이상희, p478 주막 참조

(2) 대한제국기 조선요리옥의 출현, 정형지, 이화사학연구 제45집

(3) “대한제국 궁내부 조달!” 그 시절 맥주 광고, 시사인, 2017.8.25 고영

(3) 서울역사박물관대학 중 ‘광고로 보는 근대문화사’ 김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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