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도 순위를 정한다면 난 고창 질마재길을 선택한다.
당신이 가본 길중에 최고는 어디인가요?
길여행을 오래하다보니 알아보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러다보니 처음에 대뜸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 작가님이 가본곳 중에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인가요?"
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았을때 처음에는 제주의 사려니숲길을 꼽았었다. 평화롭고 숲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너른 길이기 때문이다. 숲길은 무조건 흙길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오솔길이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취향차이 일수도 있고 감성을 고려하여 사진찍으며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전국의 둘레길을 다니면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주저없이 꼽는 곳은 고창 질마재길이다. 여러 개의 구간 중에 특히 선운산과 천마봉을 끼고 도는 코스를 꼽는다. 도솔천을 따라 선운사를 거쳐 도솔암에서 쉬고, 철제 계단을 올라 천마봉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삽시간에 순위를 바꾸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껏 이 순위를 바뀌지 않고 있다.
특히 가을에 찾아간 선운산길을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았다.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에 비할수 없는 곳이 여기다. 붉은 빛깔을 내뿜는 단풍나무와 도토리의 기운을 머금어 검게 보이는 도솔천과 그위에 붉은 그림자가 드리우면 환상의 숲길이 따로 없다. 그저 여기를 지나가는 것만으로 현재의 세상을 벗어나 피안의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을 맛본다. 게다가 선운사를 감싸앉은 산은 높지도 않은 해발 300여 미터의 산이 겹겹히 둘러싸고 있다. 그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청송 주왕산처럼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내어 높은 산위에 올라와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멋진 풍경과 찾아가기 어렵지도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품으며 감동을 줄 수 있는 곳이기에 내생에 1등의 둘레길코스로 보고 있다.
이 길을 선택한것에는 특별함이 있다.
항상 때가되면 사람들과 어느 길여행을 갈지 고민한다. 계절마다 필수적으로 가야할 곳이 있는 반면에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곳이 선운산질마재길과 북악산하늘길, 오대산 선재길 등이다. 결국 선운산길은 거의 매년 찾아왔던 곳이며 다른 곳에 비해 많이 왔던 곳이다. 그만큼 나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필자는 여기에 오면 편안함을 느낀다. 선운사에서는 너른 대청마루에 앉아 차 한잔 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천천히 숲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도솔암에 다다른다. 깊은 숲속에 위치한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높지 않은 곳이다. 단풍이 멋진 곳은 여기아니어도 많다. 그러나 사람에 치이지 않고 깊은 숲에 들어와있는 기분을 느끼고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멋진 풍경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드물다.
그전에는 사려니 숲길을 최고라고 말했던 이유는 편한 숲길과 다양한 오름, 깊은 숲속의 느낌을 모두 경험할 수 있으나 색감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에 비하면 질마재길은 다양한 색감이 존재한다. 단조로운 사려니에 비하면 여긴 변화가 있는 길이다. 더하여 산능선을 따라 개이빨산까지 가는 길도 좋다. 화려한 하늘과 맞닿은 산 능선이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둘레길도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은연중에 사람들은 모든것에 순위를 메긴다. 뭐가 제일좋고 뭐가 제일 나쁘다는 식으로..그러나 개인의 성향이 다양하기 때문에 순위라는 것도 절대적이 될 수 없다. 그저 호감도 내지 취향에 따른 순위가 될 뿐이며 개량이 가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순위를 메기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둘레길에도 순위를 메기고 이 계절에는 여기를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없이 그곳을 찾아간다. 아마도 많은 정보가 없다보니 사람들이 찾은 곳을 또 찾는 방식이 위험성이 덜하기 때문일것이다. 보편적인 장점으로 포장된 곳은 어느누구에게나 기본적인 만족을 줄 수 있으나 거기 뿐이다. 보다 특별함을 가지려면 매력포인트가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것을 얘기해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신경쓰지 않는다.
결국 둘레길도 이러한 보편성향에 따라 순위가 메겨지다보니 별로인 곳이 좋은 곳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보다 정확한 둘레길의 가치나 아름다움을 경험하려면 여러 곳을 다녀야 하고 계절에 따라서도 다녀봐야 한다. 그래야만 정확한 가치와 시기를 말해줄 수 있다.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이냐에 따라 둘레길의 순위도 바뀌어야 한다. 나의 시선을 고정시키기보다 항상 변화하고 업그레이드를 해야만 그 가치를 이해시킬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시선도 가지고 있어야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사람들은 항상 한정된 시선으로 선입견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는 순간에 우린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남들이 정한 순위에 따라 보게 되는 것이다. 내장산 단풍이 아무리 이뻐도 그건 그사람들이 보는 시선이고 나의 최고의 단풍구경지는 선운산 질마재길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