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기억되는 길
2011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말할 수 없는무력감에 빠졌었다. 이름하여 '카미노블루 증후군' 순례길에서 먹고 걷고 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실생활로 돌아오다 보니 적응이 안되어 발생하는 심적 부조화... 게다가 순례길에서 경험했던 여유롭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머리에 머물다보니 다른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었다.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스러웠다. 다행이도 둘레길 답사 프로젝트팀에 합류하게 되어 전국의 둘레길을 마음껏 탐닉할 수 있었다.
서울둘레길과 인연맺기
그 사이 서울시에서는 서울둘레길이라는 서울시와 경기도 경계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순환형 둘레길을 조성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서울시에 문의를 하여 둘레길 정보를 얻어 조금씩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만해도 서울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둘레길이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한 관심뿐이였다. 처음부터 책을내기위한 답사는 아니였다. 둘레길 프로젝트팀에서 둘레길 답사를 하면서 짬짬히 서울둘레길도 답사를 하였다. 처음에 둘레길 코스는 거의 등산코스였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최초의 서울둘레길 1코스 수락-불암산 구간은 수락산 능선을 타고 올라가 삼거리를 거쳐 덕릉터널을 경유하는 코스였다. 둘레길이라기 보다 말그대로 등산로였다. 그리고 일방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방향표시 팻말도 시계방향대로만 표시되어 있었다.
답사를 하면서 팻말이 잘못 표시된 곳이나 코스가 너무 무리가 있어 수정하는것이 어떻겠냐고 자료를 만들어 당시 둘레길업무 담당자에게 보냈었다. 처음부터 어떠한 답변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도 아무런 답변이 없으니 참 무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신기한것은 그렇게 수정 및 보완에 대한 내용을 보낸 후 다음 해에 다시 서울둘레길 답사를 이어갔다. 둘레길 조성이 조금씩 이루어지다보니 수시로 답사를 가야했었다. 놀라운것은 수락산 구간이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에 수락산 구간의 모습을 갖추고 등산로로 가던 길은 없어졌다. 이후 서울시 담당자와 면담할 기회가 있어서 물어본적이 있었다.
"왜 수락산 구간은 등산로로 정했었나요?"
"음, 둘레길을 기획하고 답사할때 전문가가 없어서 산악인중에 소개를 받아 둘레길을 조성했었어요. 그러다보니 이분들이 아는길이 등산로였는지 그렇게 잡게 되었었어요."
당시에는 나와같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니 있었는데도 찾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자료주고 도움줄때라도 도와달라했으면 잘 도와줬을 것인데 아쉽지만 그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서울둘레길이라 나한테는 더욱 애착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5번 이상 전체를 돌며 사진과 관련 자료가 많이 쌓이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에 서울둘레길을 공식개장 한다는 뉴스를 접할때 고민을 했다.
"책을 내볼까?"
그래서 전에 알던 출판사에 문의를 했었다. 그때가 2014년 가을이 들어서던 때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책을 쓰자고, 대신 책판매를 늘리기 위해 아는 여행작가분을 섭외하여 공동집필하는 방식으로 하잔다. 그래서 서울둘레길과 지방의 둘레길은 내가 쓰고, 한양도성 내사산쪽 구간은 나에게 글쓰기의 영감을 주었던 이강작가님에게 요청을 하여 같이 쓰게 되었다. 그렇게 수없이 다녀온 서울둘레길을 하나씩 정리를 하며 원고 작성과 부족한 사진을 촬영하기위해 다시 나서기를 6개월여 진행하여 '사계절 걷기좋은 서울둘레길'이라는 책이 출간되게 되었다. 2015년 3월에 출간되어 서울둘레길이 오픈된 시점과 잘 맞아떨어져 제법 잘 팔리는 책이 되었다. 출간 후 2달 만에 2쇄가 인쇄되었고, 여행부분 책 베스트셀러 8위까지 올라가는 경험을 하였다.
그렇게 기대하지 않고 돌아보며 길을 찾고, 자료를 모으고, 길에 대해 어떻게 글을써야 할지 고민하며 만들어진 나에게 분신과 같은 책이다.
출간 그 이후...
2015년 서울둘레길 책이 출간되고 나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서울시에서 서울둘레길 관련 회의할때 자문위원으로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회의때마다 참석을 했었다. 그 인연으로 서울시 건강증진과에 걷기코스관련 행사에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하여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책소개와 인터뷰가 이어졌다. 잡지사, TBS방송 등, 그리고 라디오방송에서도 둘레길 소개하는 인터뷰를 간간히 진행하곤했다. 나름 이렇게 매스컴을 타다보면 유명해지려나라는 자만심(?)이 가득하던 때였다. 그리고 둘레길여행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예전의 워킹클래스를 이어가기도했다. 그 경험이 쌓여 여행해설가를 양성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2017년 서울시50+서부캠퍼스를 통해 그 꿈이 이루어졌다. 도시여행해설가 양성과정을 맡아서 지끔까지 강의를 하고 여행해설가 양성에 일조하고 있다.
지금도 다른 책을 쓰려고 고민을 한다. 하지만 아이디어와 자료가 있어도 선뜻나서는 출판사가 없다. 그때는 '원샷 웤킬'이였는데 지금은 '멀티샷 노킬' 이다. 진정 운이 좋았던 때였나 보다. 지금도 서울둘레길만 나서면 마음이 편하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고, 어떻게 봐야 할지도 알고 있으니까. 서울둘레길관리를 위탁운영 담당자는 "서울둘레길은 볼것이 없어요. 그냥 걷는거죠."라는 말을했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 풍광으로 따지면 뚜르드몽블랑이나 안나푸르나루트보다는 볼것이 없는것이 맞다. 하지만 아기자기함과 도심속에 위치한 서울둘레길은 접근성 만큼은 외국의 어느 둘레길보다 훨씬 좋다. 거기에 깊은 숲속과 서울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권, 그리고 오래된 도시만큼 다양한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 서울둘레길이다. 내재된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에 나는 단순히 걷는 둘레길이 아닌 이야기를 안고 쉬며 느끼는 둘레길여행을 만들려고 지금도 걷기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