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가리길 여행
지금은 백패킹이라는 것이 흔하고 트레킹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연속에서 짐을 내려놓고 쉬면서 하늘을 보며 분위기를 띄워줄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10여 년 전, 아침가리골 계곡이 탐방예약제가 실시되기 전에 이곳을 자주 갔었었다. 어느날 1박으로 가자는 제안에 주저없이 몇 명의 사람들과 길을 나섰다.
최초의 백패킹 - 컴컴함 속에 빛나는 별빛
서울 강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강원도 인제 현리까지 이동하고 거기서 다시 동네 버스를 타고 방태산 방동 약수터앞에 내려 걷기 시작했다. 조경동교를 건너 월둔리까지 방태산 아랫자락 계곡을 걸어가야 20km 가까운 임도길인데 하루보다 숲에서 쉬어가자는 생각에 여유롭게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임도길을 걷다보면 굽이굽이 계곡 사이 물길을 건너야 했는데 그곳에는 어김없이 콘크리트 다리가 있었었다. 하지만 대부분 무너져 내려 방치되어 있었다. 콘크리트 교각의 상판은 숲속에서 안전한 쉼터이자 숙박지로 활용될 수 있었다.
아침가리 계곡길을 3시간여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가만히 쉬면서 앉아 있으니 너무나 고요하고 조용했다. 이당시 숲속을 시끄럽게 하는것은 오프로드 차량 뿐이였다. 백패킹욜 배낭도 없이 보통 둘레길 다닐때 사용하던 32리터 급 배낭에다 급히 산 침낭과 쉘터를 배낭위에 얹듯이 지고와 자리 잡은 곳에서 쉘터를 치고 잠자리를 만들었다. 더운 여름날이라 밤은 시원했고 춥지 않았다. 컴컴한 어둠속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하늘의 별빛과 내 이마위 랜턴의 불빛 뿐이였다. 한가로움이 가득했던 날 이것이 둘레길을 걸으며 처음으로 외박(?)한 날이자, 최초의 백패킹 여행이었다. 10여 년 전만하더라도 캠핑이라는 것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백패킹이라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아웃도어문화였다. 지금은 백패킹이 흔해졌지만...
둘레길을 경험하고 다니면서 새롭게 길에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야외에서 잠을 자려면 깨끗하고 정해진 곳에서 자야한다는 생각이 깨지고 이런 바깥에서 자연과 접하여 노니는 것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이후로 아침가리는 수십번을 더 왔었지만 야영하는 여행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침가리계곡이 탐방예약제로 바뀌면서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레길을 다니다가 백패킹하고 싶은 장소가 나타나면 마음에 두곤 한다. 언젠가는 오고 싶기 때문이다.
백패킹 과 미니멀 캠핑
백패킹 문화는 이제 일반화 되었다. 별도의 장비를 이고지고 가서 하루를 자연속에 보내다 온 여행으로 치부한다. 따지고 보면 백패킹이라기 보다 미니멀 캠핑에 가까운 문화인데 우리는 백패킹이라고 부른다. 백패킹이라는 것은 등짐을 지고 오랫동안 걸으면서 자연을 즐기는 활동이다. 어찌보면 군대에서의 행군과 비슷할까 싶다. 단지 강제적이 아닌 자유로운 선택으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걷기 때문이다. 최근 PCT트레일을 혼자 걸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와일드(Wild)' 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러한 모습이 백패킹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우리의 백패킹은 자연을 즐기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자연을 배경으로 술마시고 노는데 더 집중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노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떻게 놀던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중요한것은 숲에서 보낼때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곳은 나뿐만 아니라 자연 속 주인인 여러 동물들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보호한다는 것은 자주가지 않는 것이다.
아침가리 계곡이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가 오프로드 차량이 험지를 운전하는 장소로 소문난 곳이기 때문이다. 야영할때도 수시로 차량이 이동하는 소음이 들려왔고 계곡위 아무데나 주차하여 풀밭을 망치고 세차하면서 계곡을 오염시키는 모습도 보아왔다. 게다가 오르막길을 억지로 올라가다 보니 길이 파이고 무너진 곳이 곳곳에 보였었다. 더이상 참지 못하고 산림청에 민원을 넣게된 계기는 다른데 있었다. 월둔리로 빠져나오는 계곡 임도길을 걷다가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 차량을 목격했다. 차는 부서져 있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차를 버리고 가버린듯 했다. 숲이 망가지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어 차량이 부서진 흔적을 사진에 담아 산림청에 민원을 넣었다. 민원에 대한 답변은 관리 감독을 더하고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답변이었다. 그냥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몇 년 후 아침가리골 계곡은 탐방예약제로 변경되었고 차량은 진입할 수 없도록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백두대간트레일의 구간이기도 하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은 조경동교 아래 아침가리 계곡뿐이다. 그렇지만 다행스러운것은 자연이 보호되고 보존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 무언가 바꿀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지만 실제로 행동했던 일이 변화를 이끌어 낸다. 만약 내가 민원을 넣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