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을 말하다.
언제부터인가 길을 대하는 나의 방식이 바뀌었다. 그저 걷기만 하던 길이였는데, 숲이 있고 비포장으로된 오솔길이면 더 좋았을 그런 길만 찾아 다니던것이 길을 접한 초창기때 였다. 그저 걷는 것이 좋아서 숲으로 둘러쌓인 상쾌함과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그러한 길을 찾았고 이게 맞는 제대로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길을 접하고 길에서 이야기가 늘어나면서 길을 대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어느 순간부터 뉴스와 글에서 둘레길 인문학, 역사문화트레킹 등의 이름으로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분야가 만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나또한 길에서 인문학적인 것을 어떻게 설명해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과 출신인 나아게 인문학적 소양을 뽑아내는 건 쭈욱 짜낸 들깨 찌꺼기에서 다시 기름을 짜내는것처럼 어려운 것이였다.
그런데도 길위에 역사의 지식이 쌓이고, 자연을대하는 방식을 알고, 길을 알고나니 뭔가 융합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하여 풍수와 역학을 더하게되니 보여지는 길은 너무나 이야기가 넘쳐나는 멀티 콘텐츠로 보였다.
길위에 인문학
길을 걷다보면 처음에는 빡시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가 끝날때 즈음에는 평안해지는 길이 있고 반대로 흘러가는 길도 있다. 그리고 갈림길이 많은 길도 있고 어느 길은 오로지 한 길로만 이어져 평이하고 하늘만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길도 있다. 숲이 울창한 길도 있지만 도심 속 빌딩만 보이는 길, 아니면 기왓지붕이 맞대고 있는 좁은 골목길을 미로 찾듯이 헤쳐가며 걸어보는 길도 있다. 어떠한 길을 가더라도 좋다고 하는 사람과 별로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100%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을 만족 시킬 수 있는 길은 있다. 결국 사람들의 선호도는 자신의 인생과 같을 수도 있고 밋밋하기에 변화무쌍한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길이 사람의 인생과 닮아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빗대어 얘기하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 올라서 풍경을 내려다 볼때와 낮은 능선에서 풍경을 내려다 볼때 보여지는 부분이 다르고 앞에 높은 건물이 있으면 고층건물 뒤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식을 높이고 시야를 높이기위해 공부하고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얘기도 한다. 자연스레 길위에 인문학이 연결되어 흘러나오는 멘트가 되었다. 그리고 찾아온 사람에 따라 해줘야할 메시지도 달리하기 시작했다. 양천구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걷기여행을 할때면 양천구라는 곳이 얼마나 넓었고 멋드러진 마을이었는지를 얘기해주며 양천구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단순히 길을 걷고 운동하자는 컨셉이였다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다.
길위에 자연과 역사의 해설
도시여행가 양성과정 강의를 진행할때 항상 하던 말이 있다. 해설의 내용에 역사와 관련된 내용에만 매몰되지 말고 다양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라고... 그런데 대부분은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더우기 조선 왕조의 역사에 집중하다보니 이와 연결되지 않은 동네가 나오면 이야기거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길위에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조선왕은 없더라도 조선의 백성이 살았고 마을에 특색이 더해져 지명이 생겼고 지금에 동네이름으로 정착이 되었다. 이것도 이야기 거리가 된다. 근대역사를 알게되면 다른 영역의 이야기거리가 생긴다. 최근 애니메이션 영화중에 '태일이'라는 장편애니메이션이 개봉한다고 한다. 이분과 관련된 동네가 청계천 근처에 있어 이를 찾아서 이야기를 해주면 근대문화역사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또한 같은 길이어도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최근 인왕산자락길에 "인왕상초소책방" 이라는 카페겸 작은 서점이 생겼다. 불과 몇 년전에는 공사중 푯말이 붙었었고, 그 이전에는 청와대를 지키는 부대가 상주하며 초소의 역할을 하던 곳이였다. 지금은 지나가던 사람들로 붐비는 인왕산아래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도 이야기 거리이다. 인왕산자락의 변모하는 모습을 이야기 해줄 수 있는 소제이다. 백악산 자락에 탐방로가 추가로 개방되면서 백악산을 돌아 곡장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이 길을 걸으면서도 이야기 해줄것이 조선의 역사도 있지만 근대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다 백악산과 인왕산은 붉은 단풍이 아름다운 길이다. 단풍의 풍경을 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가 될 것같은 미소가 잔잔히 드리워지는 길이다.
길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다르고 내포한 이야기가 많다. 길의 높낮이와 난이도, 나무의 종류를 알면 숲에서 치유하거나 숲길 트레킹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강연해줄 수 있는 장소이자 무대가 된다. 단순히 산을 등산만을 위해 이용하기보다 다용도로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둘레길, 숲치유, 숲명상, 숲해설 등 방식으로 진화하고 행하고 있다. 자연의 꽃과 나무와 시가 어우러지는 인문학 콘텐츠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길은 누군가에겐 그저 걷는 통로를 위한 도구이지만 누구에게는 이야기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콘텐츠이다.
나에게 길은 소통의 방식으로 시작했으나 즐기고 채우고 느끼며 나를 알아가는 방법의 길이다. 난 오늘도 길에 대한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해줄까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자연이 들려주는 풍수와 역학을 엮어 또다른 이야기를 해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