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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10

내 삶에 기억되는 길

까미노의 추억, 그리고 새로운 문화의 유입



내가 나름 많이 걸었다고는 하지만, 유독 제주올레길하고는 인연이 안되는지 많이 다닌 둘레길 중에 가장 늦게 발 디딘곳이 올레길이다. 2012년 어느 여름 날, 프로젝트 팀에서 뜨거운 여름동안에 휴식을 취하기로 하여 서슴없이 항공권을 예약하고 제주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보름 동안 제주올레길을 순차적으로 걸어보려고 하였는데 주변에서는 여름에 제주에 가는것은 미친짓이다라고 까지 말했지만 듣지않았다. 오로지 제주 올레길을 걷고싶은 가득한 마음속에 다른 의견은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너무나 더웠던 여름날 이른 아침에 올레길 1코스의 시작점인 시흥초등학교 앞에 섰다. 그리고 오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길, 곳곳에 펼쳐진 목장과 삼나무 숲, 목장을 가로질러 갈때 'ㄹ'자 모양의 울타리를 건널때는 순간 산티아고순례길 북쪽길 구간을 걷고 있는 착각을 하기도했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과 비슷한 모양새, 목장의 'ㄷ'형태의 문이라던가, 알베르게 대신 게스트하우스가 곳곳에 있고, 점심은 슈퍼마켓이나 주변 식당에서 해결하는 행동까지 비슷했다. 그리고 올레길에도 있는 스탬프북(패스포트)과 완주시 주어지는 인증서까지 순례길의 문화가 여기에도 고스란히 베어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네 둘레길에는 길표시를 위해 리본이 달려있고, 어여쁘게 디자인된 나무 표시판이 세워지고 완주자에게는 인증서를 주는 문화가 생겼다. 완주 인증을 위해 둘레길 곳곳에 비치된 스탬프 도장을 찍어와야 했다. 그렇게해서 나름 모아놓은 스탬프북이 꽤 많았다. 왠만한 둘레길마다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로 호환되거나 통합된 것은 없다.



길문화의 유입, 그리고 한국의 모습으로 자리하다.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 있다. 다양한 모양의 도장을 받은 순레자여권과 산티아고 성당에서 발급받은 인증서는 거금을 준다고해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재산으로 여길 것이다. 그만큼 고생하고 노력하며 얻어낸 의미있는 순례길의 증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는 한국에 둘레길이 생기면서 이곳저곳에 차용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모든 둘레길에는 스탬프북, 여권 등의 이름으로 운영하였으나 제대로된 의미를 생각하지 않은 그저 따라하기에만 급급하였다. 하지만 제주 올레의 패스포트는 달랐다. 디자인도 이쁘고 스탬프마다 모양이 달라 찍어서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은 서울둘레길이 구간별 특징을 살린 스탬프도장을 만들어 비치하고 있어 찍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스탬프북과 둘레길여권이 있어도 잘 알지못하거나 관심이 없는데는 이유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길(way)이다. 이를 거쳐온 사람들은 800km라는 긴 거리를 걸어서 산티아고 성당에 당도했다. 그렇게 도착한 사람들에게 '당신은 여기를 왔습니다.'라고 문서로 표현해준 것이 순례길 인증서이다. 그리고 최근에 생긴것은 실제로 걸었던 구간을 인증해주는 '거리인증서'가 추가 되었다. 목적이 있고 의미가 있는 곳을 다녀왔기에 인증해주는 것이니 그 가치가 있다. 게다가 순례길을 다녀오면 유럽의 대학의 경우, 학점을 인정해주는 곳도 있다. 그러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둘레길은 의미가 약하다. 해파랑길이나 서울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은 완주했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부족하다. 게다가 인증서를 제공하는 곳은 지자체 또는 정부부처이자 각 부처의 장관이름이 떠억 올라와 있다. 순례길의 인증은 산티아고성당에서 해준다. 이또한 보여주는 가치가 다르다. 관광서의 보여주기식 행정처럼 보이기도 하니 인증서의 가치가 크지 않다. 이를 통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렇게 된것은 인증서라는 눈에 보이는 문화가 들여와서 운영하기 때문이다. 순례길은 그저 걷는 길로써만 의미있는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걷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만남, 이별, 고행, 명상, 식사와 파티 등 다양한 경험을 같이 할 수 있는데 무형적인 문화와 매너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말로만 스토리텔링이 가득한 길이라고 관공서에서 선전하고 실제 걸어보면 아무것도 없거나 억지성이 보여지니 길에대한 값어치도 떨어지고 금새 싫증을 느끼게 된다. 그나마 제주올레길은 그렇지 않다.


제주 올레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배낭하나 메고 와도 걱정없이 걸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곳곳에 숙소인 게스트하우스가 있고, 식당도 많다. 제주올레에서 운영하는 숙소와 안내소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제주의 시내버스를 타면 올레길 구간을 소개하는 멘트가 나온다. 바다풍경과 내륙의 오름 풍경이 어우러진 길, 사람들끼리 걷다가 만나고 헤어지고 하면서 자잘하게 길 위에 추억과 문화를 입히고 있다. 게다가 순례길의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소재도 곳곳에 있다. 힘들지도 않고 차분히 걸으면서 명상할 수 있는 곳이 여기이다. 이런 곳에 제주의 풍경을 충분히보고 느끼고, 스탬프를 모아서 인증서를 발급받는 의미가 있다. 그 차이는 문화이다. 길여행의 문화가 이러한 차이를 만들었다.


외국의 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인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은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제주올레는 문화이자 축제의 기회로도 만들어 활용한다. 다른 곳에도 걷기행사를 하지만 참여자가 주인이 아닌 관이 주도하는 쇼일 뿐이다. 그곳에 길여행자는 가지 않는다. 길에서의 문화는 전해지고 발전하고 때로는 쇠퇴한다. 한국의 둘레길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만든 길이 한국 둘레길의 시작이다. 이렇게 길 문화는 살아서 움직이고 변하고 숙성되고 있다. 많이 발전했으나 아직은 멀었다. 전국을 걸어서 다닐 수 없기때문이다. 둘레길과 숲길만을 따라 전국을 다닐 수 있을때가 진정한 한국의 둘레길이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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