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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갈 수 없는 길, DMZ 해파랑길 50코스



 해파랑길은 그닥 나와 맞지 않는, 내 취향이 아닌 길로 치부해 왔다. 그렇다고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내 취향이 맞는 숲이 우거진, 바다 보이는 비포장길이라면 찾아가곤 했다. 그렇게 찾아간 해파랑길의 끝이 통일전망대를 가기위해 거쳐야 하는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 곳까지 였다. 더이상은 인적확인을 해야하기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찾아갈 수 있겠지하고 남겨 두었던 코스이기도 했다.


 가을 걷기축제 기간 마지막에 선택한 길은 해파랑길 고성구간이였다. 전체 50개 코스 중 마지막 코스이자 더이상 동해안을 따라 올라 갈 수 없는 가장 끝까지 가는 길이 50번째 코스이다. 원래는 재진안내소부터는 차량을 타고 통일전망대까지 가야하는 구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걸어서 재진안내소를 지나 민통선 안쪽으로 걸어 갈 수 있다고 한다. 왠지 기대가 되는 구간이다. DMZ존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없겠지만 말이 주는 어감때문인지 신비에 쌓인 길로 접어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거란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사당역에서 행사주최측에서 제공해준 버스를 타고 4시간을 소비하여 고성 출입국사무소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터 50번째 코스가 시작이 된다.


 버스 주차장 한 켠에서 행사를 시작한다. 짧고 간결하게 주최자측에서 안내 인사를 건네고 오늘 걸어갈 코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주변에는 야광빛 조끼를 입은 안내요원들이 늘어서 있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걷기동호회에서 모집하여 참석한 인원처럼 보였다. 익숙한 동호회 패찰도 보였다. 모두가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니 오늘같은 행사에는 적합한 참여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지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모두가 기대감과 즐거움을 담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기위해 미리 엔진을 가열하고 엑셀레이터를 밟으며 준비하는 자동차처럼 여기에 모인 사람들도 살짝살짝 움직이며 빨리 걷기위해 다리를 예열하는 모습이 군데군데 보였다. 안내가 끝나자 서서히 많은 인원이 움직이며 해파랑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또한 뒤에서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따라나섰다. 왠지 오늘은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날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틀린적이 없지만...



 주최측에서 제공한 파란색 모자를 쓴 무리가 뭉쳐있으니 또다른 풍경을 만들어 낸다. 검은 도로위에 푸른바다가 덮쳐 쓸고지나가는 모습이다. 하나 두개 였다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겠지만 많은 점이 모여 무늬를 만들어 독특함을 만들어 냈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기념품을 주지 않는데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도로를 따라 1km 정도 걸으니 낮은 산으로 접어 든다. 도로 옆은 동해의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지만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은 철책선이였다. 북한과 오가며 평화를 바라며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도 북한이 가까운 이곳은 평화가 보이지 않은 얼어붙은 이국의 장소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녹슨 철책선이 사라질까?


 철책선을 뒤로하고 우리는 명파해변으로 가는 산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둘레길이라고는 하지만 도로보다는 낮은 산으로 접어들어 가는게 안전하고 걷기에 편하다. 하지만 여기 낮은 산은 둘레길이라기 보다 등산로처럼 꽤 많은 계단을 밟고 올라서야 했다. 좁은 오솔길에 파란색 점이 줄지어 올라서고 있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도 들렸고 친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소리도 들여왔다. 여기서는 철책선도 바다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녹음 가득한 소나무숲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1열로 늘어선 줄은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기 사람들이 걸으면서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 보니 예전 걷기여행 카페에서 알고지내던 회원을 만났다. 역시나...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그분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숲길은 계속 조금씩 올라가기만 했다. 제법 길 숲길이다. 그런게 마냥 걷기만 하는게 나한테는 아쉬웠다. 이렇게 좋은 숲에서 쉬지도 않고 가야 하니 말이다. 어느새 길 위에서 또다른 지인을 만났다. 홀로 여기에 왔지만 어느새 혼자가 아닌 어느 동호회에서 온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동안 나와 인연을 가지고 만나왔던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음을 느끼고 있다.



  해파랑길은 기본적으로 새롭게 조성한 길은 아니다. 기존에 동해안에 인접한 지자체에서 만들거나 조성한 둘레길의 일부를 차용하고 이어서 만든 길이 해파랑길이다. 그래서 조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부족한 상황에서 급히 개통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이정표가 부실하거나 코스안내가 부족하여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기존 둘레길 이정표위에 해파랑길 표시를 부착하다보니 이해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또다른 오해를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었다. 전혀 다른 길처럼 보였을테니 말이다. 이곳 고성구간도 관동팔경을 주제로한 둘레길이 있었는데 이를 이용하여 길을 내었다. 그래서 관동팔경 안내표시판위에 해파랑길 표식이 붙어 있다. 이렇게 만들었다면 길명칭을 통합하는 것도 중요할텐데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걸 보면 걷는 사람이 중요한게 아니라 길을 조성하고 만든 단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듯 싶다.


 어느새 숲길이 끝나고 넓은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계단앞에 다다랐다. 여기가 명파해변이 있는 곳이고 점심식사를 하는 장소로 가는 초입이다. 넓은 국도는 북쪽으로 향하는 7번 국도이다. 어디까지 이어지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금강산까지 금방 갈 수 있을것같은 기분이 든다. 명파해변에 다다르니 마을 부녀회에서 준비했다는 점심식사가 부페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보다 한참 앞서 갔던 사람들은 줄을 서거나 아니면 벌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구수한 국냄새와 제육볶음 냄새가 나를 유혹하였다. 길게 늘어선 줄이 줄어들지 않는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새치기하거나 큰소리 내지 않고 한줄로 서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배식을 하였다. 욕심껏 퍼가는 사람들도 없다. 그저 기다리며 조용하게 담소만 나눌 뿐이다. 큰소리 들리는 곳에 고개를 돌리면 마을에서 준비한듯한 지역농산물 부스에서 가격 흥정을 하고 있는 참가자와 판매자의 소리였다.


  일찌감치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길에서 벗어나 명파해변으로 가 바닷바람쐬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좀더 가볍게 움직이기 위해 배낭을 차위에 내려놓고 카메라만 들고 해변으로 나섰다. 역시나 철조망이 가려져 있으나 해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별도로 문을 만들어 놓았다. 철책선에 갖힌 바다를 언제쯤 되어야 편하게 만날 수 있을까?


 식사도 하고 휴식을 취하고 나니 후반전 걷기가 남아 있다. 이제부터는 민통선 안쪽으로 걸어야 한다고 한다. 그곳은 사진촬영도 할 수 없고, 원래는 차를 이용하여 통일전망대까지 가야하는 구간인데 이번 행사를 위해 걸어서 갈 수 있도록 군부대에서 배려를 해주었다고 한다.


" 걸어서 민통선 안으로 간다 !!!"


 똑같은 장소이고, 똑같은 풍경이지만 민통선이라는 현실과 맞물려 있으니 달리 보였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제한된 지역이 오히려 신비함과 나만 가봤다는 특별함을 더해줬다. 민통선 입구에서 군인 장교의 안내가 끝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철책문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다. 나또한 셀카사진 하나 남기고 들어섰다. 별다른것 없는 여기가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그저 주어진 코스와 시간에 맞춰 걸어야만 하는 곳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하얗게 보이는 바위섬이 보인다. 북녘에 있는 해금강쪽 이란다. 저렇게 가까이 보이는데 가려면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민통선안을 걷는다는 특별함도 잠시 뿐, 딱딱한 시멘트 길은 다리를 쉽게 피곤하게 만든다. 그나마 명파해변에서 똑같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여행기자와 동행이 되어 대화하며 걸어가니 그나마 피곤함을 덜 수 있었다.



 명파해변부터 걸을때는 주최측에서 제공한 배번을 부착하고 걸어야 했다. 또다른 걷기행사가 고성에서 벌어진듯 하다.


 통일전망대에 다다라서야 다시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역시나 좁은 길로 파란색 점이 줄지어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단순한 기념품인 모자 하나가 만들어 놓은 풍경이다. 그리고 질서있게 움직이는 참석자의 모습이 더해져 이러한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조용게 자기 순서를 지키며 대기하는 축제가 몇 개나 있을까 싶다. 그동안 다녀왔던 걷기축제는 다양한 모습은 존재하지만 질서정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성에서 만난 걷기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걷는것이 즐겁고, 해파랑길을 걷고 싶어하고, 조금만 늦어도 여유라고 생각하는 배려를 모두가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축제의 모습이 다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걷기여행축제라면 이렇게해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축제중에 몇 개 뿐이니까... 좀더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고성 걷기여행축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코스의 선택, 민통선을 통과한다는 특별함, 모자 하나가 만든 독특한 풍경, 그리고 여기에 즐기는 마음을 가진 참가자들...이러한 생각이 모여 여유로운 걷기여행 축제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저멀리 보이는 새로 만든 통일전망대는 올 12월이 되어야 정식으로 문을 연다고 한다. 가볼까 하였으나 남겨놓기로 했다. 그래야 다음에 다시 올테니까. 그때를 위해 오늘의 고성 걷기여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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