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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파주까지 통일걷기 7일 후

길위에 여행 in DMZ

다시 까미노 블루에 빠지다.    


  통일걷기행사를 마치고 며칠동안 집안에만 있었다. 몸이 피곤해서 휴식이 필요하기도했지만 이보다 계속걷지 못하고 멈춰야 하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과 무기력함이 더 크다.  멍하니 집안에서만 있었다. 피곤하기도하고 너무나 푹신한 이불과 침대가 마냥 좋기만했다. 


  "좁은 텐트도 익숙해지니 좋았었는데. 파쇄석에 베기던 자리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는데...또 어디를 가야할까? 어떻게 걸어야 할까? 며칠을 더 이렇게 멍하니 있어야 할까? "    


  처음으로 겪는 증상이었다면 병원을 찾아 갔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기력하고 아무생각없는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하니까. 하지만 예전에 찐하게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까미노블루'와 비슷한 증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달여 이상의 장시간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증상을 겪는다. 무기력하고 뭘해야할지 모르고 그저 걸어야만할것 같은 마음이 가득하고 순례길을 걸었을때 경험했던 자잘한 경험이 어느 순간순간 마다 떠올라 순례길 어디즈음에 서있는듯한 경험을 한다. 어찌보면 향수병이라 할 수 있는 증상을 통일걷기를 다녀오고 나서도 경험했다. 


   걷는 것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것 같다. 걷기 시작한 첫날부터 발동하여 13일동안 걷다보니 매일 걸어야만 하는 의무감(?)같기도하고 멈추면 불안해질것같은 상념이 가득 머리속에 고여있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멈추려고 하니 급브레이크에 덜컹거리며 앞으로 쏠리는 모습처럼 나도 걸음을 멈추는것에 미묘한 저항이 생겨 몹시 불안함이 생긴것이다. 이것도 까미노블루의 증상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기에 거부감없이 받아들였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진다는것도 알고 있었다. 그만큼 정성을 다해 길을 걸었기에 나오는 현상이다.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가봐야 의마없고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너무 좋아서 또 갈거야. 너도 가봐 이렇게 강력한 추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길을 걸었으나 나오는 반응은 다르다. 이것은 길을 대하는 모습이 달랐기 때문이다. 전자는 길을 운동을 위한 장소이자 목표달성을 위한 코스로 생각하는 트레킹의 관점으로 길을 본 것이다. 후자는 길 자체의 의미에 매몰되어 걷는 사람들이다. 트레킹이 아니라 순례자의 모습으로 음미하듯 길을 보며 걸었기 때문이다. 특히 메세타 평원을 걸을때 두 부류의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일주일 동안 걸어도 평평하고 변화가 없는 길을 걸을때 트레킹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하고 볼품없는 길이지만 순레자로 길을 걸을때는 나만에 세상에 빠져 상념을 날리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에 평온한 명상을 하는 기분을 맛본다.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 여러 상념이 떠오르지만 하나씩 지우고 나면 마음에 평온이 온다. 평이한 길을 걸을때 이와 같은 현상을 경험하게 되며, 작은 경험의 차이가 모이고 모여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성당앞에 도착하면 더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통일 걷기에서도 난 그랬다. 빨리 걷기 보다는 천천히 걸으며 음미하고 느끼길 바랬다. 좀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었기에 속도에 집착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보내온 과정속에 2조의 사람들은 다같이 동화되어 즐기며 대화하고 속마음을 알아가니 어느 누구보다 친해지고 즐거워했다.  길은 어떻게 걷느냐에 따라 사람에게 풍족한 마음의 여유를 줄 수도있고, 그저 땀흘리며 걸어서 달성한 목적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어느게 맞다 틀리다가 아닌 어떻게 걸어야 스스로에게 의미가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걷기명상(Walking Meditation)이라는 걸으면서 마음을 챙기고 마음치유를 하는 방법의 용어가 있는데 평이한 길을 걷고 생각하고 보고 즐기며 웃는 일렬의 과정은 걷기를 통한 명상이자 치유의 과정 이다. 걸으면서 치유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사람들과 만나 걸으면서 치유되는 것도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걷기보다 천천히 걷고, 주변 풍경을 많이 보고 대화하면서 걸으라고 항상 말한다. 땀나지 않으면 의미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한테는 나와 걷는 동안이라도 그렇게 하지말고 내 방식대로 따르라고 한다. 걷는 방식의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난 그저 내가 가본 길의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무력감에서 빠져 나왔다.

 " 더 걸었어야 했는데 어디든 더 걸었어야 했는데...” 라는 마음은 그대로인 체로...     



다시 만나요. 2조


 통일걷기 13일 동안 조원들과 많이 친해졌다. 저녁에 모여서 같이 식사하고 하면서 단골 주제처럼 항상 얘기했던 것이 끝나고 나서 같이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매월도 좋고 하니 자주 가자는 공통된 생각이 시간이 지날 수록 구체적인 날짜를 정하는 단계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우리'의 첫 여행지를 군산으로 정했다. 군산 근처 진안에 조원 한 분이 살고 있기도해서 숙소해결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나또한 군산을 잘 알기에 어디든 모셔가도 문제될것이 없었다. 그렇게 통일걷기가 끝나고 2주일이 지난 7월의 어느날에 1박2일로 군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군산 저수지를 한 바퀴 걸으면서 못다한 얘기를 나누고 맛있는 저녁식사도 같이하며 밤새 대화를 나누었다. 다른 조도 이렇게 만나고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뒤풀이겸해서 만난 조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우리 조가 유일했다.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중요하다고 말하는 또다른 증거인 셈이다. 우리 조는 군산여행 이후에도 계속 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나는 조원 중 한 분과 같이 일하게 되었다.


 여행작가이자 한 단체의 대표였던 내가 좀더 큰 단체의 사무총장으로 이동하며 길위에서 펼칠 다른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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