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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용 Jun 23. 2021

그래서 나도 총을 가지고 싶어졌다

미국에서 총기를 규제하려면 헌법을 바꿔야 하지만... 넘어야 할 산들

    

▲   TV에선 연일 총기 사건 뉴스가 나왔다 ⓒ elements.envato


나는 사실 기우(杞憂)가 많다. 그러나 미국 생활하면서 '총기 사고'만큼은 쓸데없는 걱정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총에 대한 두려움은 미국 도착 첫날 월마트에서 시작됐다.


그곳엔 총기를 식품, 캠핑용품처럼 한 코너에서 대놓고 팔고 있었다. 총기의 종류는 각양각색이었다. 200달러(약 22만 원)만 내면 권총 하나 살 수 있었다. 미국 땅을 처음 밟은 나에겐 매우 생경한 장면이었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총기 판매대에서 한참을 구경했다. 하지만 당시 내 유학생 비자(F1)로는 총기를 구입할 수 없었다.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건 2018년 8월이었다. TV에선 연일 총기 사건 뉴스가 나왔다. 8월 26일 플로리다 e스포츠 대회에서 프로게이머가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후 피츠버그 총기 난사(18.10.27), 캘리포니아 벤추라 펍(18.11.07), 시카고 머시 병원(18.11.20), 덴버 다운타운(18.11.20) 총기 난사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총기에 대한 경각심이 공포심으로 변했다. 그 공포심은 날로 커졌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애리조나는 총기에 대해 매우 관대한 주(State)였다. 21세 이상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되면 누구나 총을 소지할 수 있었다. 일부 특정 장소를 제외하고 '오픈 캐리'가 가능했다. 오픈 캐리 정책은 총을 타인의 눈에 띄는 상태로 착용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몇몇 미국 친구들은 허리에 총을 차고 있었다. 총을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조언했다. 도시에선 길에서 모르는 사람과 말싸움하지 말며 난폭 운전도 금물이라고 했다. 이유는 총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총이 사람보다 많은 나라


전 세계적으로 대략 175개국에서 시민들이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20년 기준 미국 민간이 소유한 총기는 약 3억9334만정으로 추정된다. 인구 100명당 민간이 120.5정의 총기를 보유해 세계 1위다. 총이 사람보다 많은 나라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의 2020년 10월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절반(44%)이 총이 있는 가정에서 살고 있다. 또한, 3명 중 1명이 총기를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공화당원은 절반이 개인적으로 총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지만, 민주당원은 10명 중 2명이 총을 소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이 총을 소지할 가능성이 여성보다 2배 높았다. 외진 마을이나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의 절반 정도가 총을 소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도시의 경우 4명 중 1명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도 총기 판매 증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020년에 판매된 총기는 2300만정으로 전년보다 66% 증가했다. 2021년 1월과 2월 월간 총기 판매량도 역대 같은 달 판매량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학(UC Davis)에 따르면 2019년 미국 총기 사망자 수는 3만9707명이었다. 하루에 100명 이상이 총 때문에 죽는다. 이 중 절반 이상인 2만3941명(60.2%)이 자살이었다.


총기를 이용한 살인은 1만4861명(37.4%)을 차지했다. 나머지 3%는 의도하지 않은 총기 사고, 법 집행 등이었다. 특이할 점은 2006년 이후 총기 살인은 추세적으로 다소 감소했지만, 총기 자살 건수는 다소 증가했다.


총기를 통제할 수 없는 이유


지구에서 총기 소유권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나라는 세 곳밖에 없다. 멕시코, 과테말라, 그리고 미국이다. 미국 헌법 제1조에는 종교·언론·집회 등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1791년 제정한 수정헌법 제2조에는 매우 간단한 문장으로 총기 소유와 휴대에 대한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미국 헌법 수정조항 제2조: "A well-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잘 통제된 국민군이 자유로운 주(州)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국민의 무기 보유 소지 권리는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인에게 총기 소유권은 언론, 종교 자유와 대등한 '국민의 기본권리'다. 누구도 국민의 기본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미국인들은 영국 식민지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 미국 개척자들은 척박한 땅에서 외국 군대와 야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잡았다. 미국 헌법 수정조항 제2조에는 18세기 독립전쟁 이후 미국인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동안 총기 규제 시도는 매번 실패했다. 대법원은 개인의 총기 소유는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라고 판결해왔다. 총기 규제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전미총기협회(NRA)의 정부 각계각층에 대한 로비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연간 500만달러 이상을 로비자금으로 사용한다고 알려졌다.


총기 규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수정헌법 2조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만만치 않다. 개헌을 위해서는 최소 상·하원의 2/3 동의를 얻어야 한다. 현재 총기 규제에 대한 찬반이 엇비슷하게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설사 개헌에 성공했다고 하자. 또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전체 주(State)의 3/4 이상이 개정된 헌법을 비준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깝지만 여기까지 성공했다고 하자. 시중에 풀려있는 3억정 이상의 총을 어떻게 회수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결국, 총기 규제에 있어 핵심은 미국인들의 '가치관'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정부의 탄압과 빈곤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국가가 자신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독립선언서의 작성자이자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큰 위협은 바로 정부라고 했다. "나는 자유가 부족해서 오는 불편함보다는 자유가 넘쳐서 오는 불편함을 겪겠다"고 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미국인들은 자유가 넘쳐서 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나도 총을 가지고 싶어졌다

             

▲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그런 집에서 총 한 자루만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unsplash


미국 생활을 하면서 총기 소지에 관한 생각이 다소 달라졌다. 총기 하나 정도는 집 또는 차에 가지고 싶어졌다. 대표적으로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타인으로부터의 보호다. 우리 가족은 외곽에 있는 단독주택(하우스)에 살았다. 담장은 낮았고, 나무문은 허술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무단침입이 가능했다. 도시 외곽이라 이웃은 멀리 있고 경찰은 보이지도 않았다. 한밤중 뒷마당에 고양이 울음소리와 바람 소리에도 놀랐다.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기 위해 집 안에 총 한 자루만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자연으로부터의 보호다. 가끔 여행하다 보면 미국은 참 크다고 생각했다. 핸드폰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도 꽤 된다. 허허벌판에 집 한 채 덩그러니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지인 집에서 며칠을 보낸 적이 있다. 눈앞에서 곰과 들소 등 야생동물이 어슬렁거린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그런 곳에서 총 한 자루만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상대방은 총기가 있지만 나는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힘의 불균형'에서 오는 불안감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우리를 공격한다면 나는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었다. 국가뿐 아니라 사람 간의 평화도 '힘의 균형' 속에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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