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관 해외안전팀 사건수첩
필리핀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직접 경험한 사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단연코 지익주 씨 납치살해 사건이다.
현직 경찰관들이 돈을 노리고 조직적으로 납치, 살인을 저지른 사건인데 아무리 경찰들이 부패했다지만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건지라 한국과 필리핀 양국 모두 끔찍한 전대미문의 범죄에 경악했고
당시 대통령 두테르테마저도 이례적으로 대통령궁으로 유족을 불러 직접 사과하였다.
2016년 10월,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한국인 사업가 지익주가 백주 대낮에 납치당했다.
납치범들이 몸값을 요구하여 피해자의 가족이 500만 페소를 줬으나 피해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이미 납치당한 당일 필리핀 경찰청 본청 주차장의 차 안에서 목이 졸려서 살해당했다.
일당은 그 후에 사망서류를 조작하여 필리핀인으로 위장한 후 전직경찰이 운영하는 화장장에서
시신을 소각하고 유골가루를 화장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가해자들이 체포되어 재판이 시작되었지만 각종 이유로 재판은 연일 지연되었으며,
핵심 용의자가 보석으로 풀려나고 1심에서 무죄가 나기도 했지만 2심에서 다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주범 라파엘 둠라오는 현재도 미체포 상태로 도주 중이다.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다.
대사관의 사건사고 담당 직원으로 수많은 관련기록을 보았고 때로는 재판에도 직접 참석했었지만
아직도 이 사건 관련하여 드는 의문점이 있다.
경찰이 납치를 했을 때 체포영장에 기재된 중국인 마약상의 이름을 댔는데 그것이 실수가 맞는지
그리고 왜 당일에 지 씨를 다급하게 살해하였는지가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
몸값이 목적이었다면 그를 바로 살해한 게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건 필리핀 스타일이 아니다. 목적이 돈이지 살인이 아니다.
엄한 사람을 끌고 온 걸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위에서 문책을 할까 봐 다급하게 사건을 덮으려다가
그랬던 것이며 그 와중에도 돈 욕심에 몸값은 뜯으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사건이 벌어진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대사관 직원이라서 이 사건으로 욕도 많이 먹었고 잘못 보도된 부분이나 억울한 부분도 있었고
심지어 내부에서도 의견충돌도 있었지만 굳이 첨언이나 변명하진 않는다.
고인이나 유가족만큼 억울하겠는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부디 계신 곳에서는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