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언어, 다른 리듬
한국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아랍은 다 비슷하지 않나요?”
그 질문에는 대개 선의가 담겨 있다. 낯선 세계를 한 번에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의 언어가 주는 단일한 이미지. 하지만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늘 잠시 멈춘다. 맞다고도, 틀렸다고도 쉽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매일을 살아내는 리듬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내가 여러 해 동안 살아보며 느낀 범위에서 보면, 카이로와 리야드는 그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두 도시다.
카이로의 아침은 ‘이미 시작된 하루’ 같다. 전날의 대화가 끝나지 않은 채 오늘로 넘어온 듯하다.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면 소리가 먼저 다가온다. 자동차 경적, 상인의 외침,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사람들은 동시에 웃고, 불평하고, 흥정하고,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다. 카이로에서는 말이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관계의 기술이다.
이 도시에서는 이런 말을 정말 자주 듣는다.
“معلش (마알레시 · 괜찮아)”
버스가 늦어도, 약속이 틀어져도, 계산이 조금 어긋나도 이 한마디가 공기를 누그러뜨린다. 책임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완충 장치다. 카이로의 시간은 이 마알레시 위에서 흐른다. 그래서 시간도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어제의 고민이 오늘의 계획과 겹치고, 내일의 기대가 오늘의 약속과 섞인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카이로에서 시간은 흘러간다기보다 층층이 쌓인다.
카이로에서는 대체로 사람이 먼저 보인다. 관계가 앞서고 규칙은 그 뒤를 따른다. 약속이 조금 늦어져도 이유가 설명되면 이해가 가능하다. 나는 처음 카이로에서 택시를 탔을 때 이 질서를 몸으로 배웠다. 목적지를 말하자마자 기사는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고, 안부를 건넸다. 가격 이야기는 그 다음이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값을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ولا يهمك (왈라 예함막 · 네가 알아서 줘)”
이 애매한 말은 협상의 초대장이었다. 가격은 오르내렸고, 농담이 섞였으며, 결국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돈보다 먼저 오간 것은 관계의 온도였다. 카이로에서 협상은 싸움이 아니라 대화의 일부다.
리야드의 아침은 다르다. 말보다 침묵이 먼저 있고, 움직임은 조심스럽다. 결정은 빠를 수 있지만 그 과정이 항상 말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표정은 쉽게 읽히지 않고 감정은 관리된다. 무언의 질서가 하루를 이끈다. 리야드에서는 일상에서 질서가 먼저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관계는 그 안에서 형성된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책임을 다루는 하나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리야드에서 회의가 끝났는데도 결론이 말로 정리되지 않는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결정이 안 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며칠 뒤, 정확한 형식의 문서가 도착했다. 결정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말은 줄었지만 절차는 단단했다. 리야드의 세계에서 확실함은 말이 아니라 시스템이 준다. 누가 언제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어떤 틀이 작동했는지가 중요했다.
외부에서 보면 카이로는 ‘사람이 많아 복잡한 도시’이고, 리야드는 ‘돈이 많아 깔끔한 도시’로 간단히 정리되기 쉽다. 하지만 그 설명은 얕다. 두 도시의 차이는 경제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의 문제다. 카이로는 오랜 시간 너무 많은 사람을 품어야 했다. 인구의 압력과 역사적 층위 속에서 유연함은 생존의 기술이 되었다. 말이 길어지고 관계가 복잡해진 이유다. 반면 리야드는 광활한 공간을 관리해야 했다. 틀과 질서가 필요했고, 침묵은 힘이 되었으며, 결정은 신중함과 함께 내려졌다. 그래서 카이로의 말은 길어졌고 리야드의 침묵은 깊어졌다. 이것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만든 차이다.
같은 인사도 리듬이 다르다. 카이로의 “아흘란”은 목소리의 높낮이와 손짓까지 포함한 축제 같다. 인사는 대화를 여는 열쇠라서, 인사만으로도 한참을 갈 수 있다. 리야드의 “아흘란”은 짧고 단정하다. 대신 그 다음에 나오는 한두 문장이 관계의 무게를 정한다. 카이로에서는 말이 길어지며 정이 생기고, 리야드에서는 말이 적어도 행동이 쌓이며 신뢰가 생긴다.
공간을 쓰는 방식도 다르다. 카이로에서는 일이 거리에서 시작되곤 한다. 커피 한 잔을 놓고 누가 누구를 아는지, 어떤 집안과 어떤 동네가 연결되는지 이야기하는 동안 이미 절반의 합의가 끝나 있다. 반면 리야드에서는 만남의 순서와 자리 배치가 메시지가 된다. 누가 먼저 들어오고, 누가 옆에 앉고, 누가 마지막에 말하는지. 그 구조를 읽는 순간 말보다 빠르게 전체 그림이 보인다.
기도 시간도 도시의 리듬을 드러낸다. 카이로에서는 아잔이 울리면 누군가는 자리를 뜨고 누군가는 그대로 대화를 이어간다. 기도가 삶을 끊기보다 삶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리야드에서는 기도 시간이 되면 공간 전체의 속도가 바뀐다. 말이 줄고 움직임이 정리되며 모두가 잠시 같은 방향으로 정렬된다. 그 짧은 정렬이 하루의 균형을 만든다. 같은 신앙이지만 도시가 신앙을 품는 방식은 이렇게 다르다.
그럼에도 두 도시를 하나로 묶는 것이 있다. 체면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마음, 손님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려는 습관, 가족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의지. 이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생활의 윤리다. 카이로에서는 말과 표정으로, 리야드에서는 절제와 배려로 드러난다. 나는 이 두 도시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존엄을 보았다. 카이로의 존엄은 끈질긴 연결 속에 있고, 리야드의 존엄은 말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질서 속에 있다.
그래서 아랍을 이해하려면 비교부터 멈춰야 한다. 빠르다, 느리다, 개방적이다, 보수적이다 같은 말은 편리하지만 그만큼 진실을 깎아 먹는다. 내가 본 아랍은 하나의 성격이 아니라 하나의 문명이었다. 문명은 단순하지 않다. 같은 뿌리를 가졌어도 다른 방향으로 자란다. 카이로와 리야드는 같은 언어의 집에 살지만 다른 방에서 다른 규칙으로 살아가는 가족 같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믿는다.
“이곳 사람들은 이곳의 조건 속에서 자기 방식으로 살아왔다.”
아랍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흩어져 있지도 않다. 서로 다른 리듬으로 같은 시간을 건너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리듬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