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에서 느낀 시간의 무게

바그다드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대신, 쌓인다.

by skyagainsky

2003년, 내가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바그다드는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극도로 무질서한 상태였다. 가장 먼저 익숙해져야 했던 것은 이동 경로나 경계 절차가 아니었다. 하루가 계획대로 끝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감각이었다. 외부 활동도 쉽지 않았지만, 아침에 확인했던 일정이 점심 무렵 아무 설명 없이 취소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그 취소는 늘 비슷한 말로 정리되었다.
“상황이 조금 위험합니다.”


그 말 속에는 정치와 안전,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은 기억이 겹겹이 섞여 있었다. 그때 나는 이 도시에서 시간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무게라는 것을 알았다. 바그다드에서의 하루는 속도로 측정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건드리지 않았는지가 하루의 밀도를 결정했다. 움직이지 않는 선택, 말하지 않는 판단, 기다리는 태도가 오히려 더 많은 책임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2003년부터 2년 동안 바그다드에서 근무했다. 그 시기의 정세는 늘 불안정했다. ‘안정’이라는 말은 문서 속에서만 존재했고, 현실에서는 언제나 가정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도시는 멈추지 않았다. 시장은 열렸고, 사람들은 약속을 만들었으며, 저녁이 되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불안정은 일상의 배경이었지만, 그렇다고 삶이 정지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불안정 속에서 사람들은 시간을 더 신중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외부 일정이 있는 날이면 우리는 언제나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움직였다. 그 긴장은 드러내지 않는 규칙이었고, 말보다 먼저 공유되는 전제였다. 바그다드의 하루는 현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말 속에는 늘 과거가 함께 들어 있다.
“예전에는”, “그때는”, “우리가 알던 바그다드는.”


이 말들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기준에 가깝다.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를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판단하기 위해 과거에 기대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는 새로운 계획을 말할 때도, 반드시 이미 지나온 시간에 대한 언급이 함께 따라온다.


이곳에서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층위로 인식된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은 분리되지 않는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작동하는, 현존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바그다드에서는 무엇을 새로 시작할 지보다, 이미 존재해 온 것 위에 무엇을 얹을지를 먼저 고민한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누적된 조정이 선호되고, 단절보다는 연속이 선택된다.


정세가 불안정할수록 결정은 더디게 내려졌다. 외부의 기준으로 보면 망설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정지는 우유부단함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의 주저에 가까웠다. 어떤 결정은 지금 당장은 옳아 보일 수 있지만, 이 도시에서는 그 결정이 과거의 어떤 약속을 흔들고, 누구의 기억을 다시 자극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더 무겁게 만들지는 않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했다.


회의실에서 침묵이 길어질 때마다 나는 그 침묵의 성격을 새로 배워야 했다. 그것은 무능이나 회피가 아니었다. 이미 너무 많은 결과를 겪어본 사람들의 자기 통제였다. 이 도시에서 말은 순간의 반응이 아니라, 시간을 동반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바그다드에서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중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도시의 공간 역시 이런 시간 감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 옆에 복원되지 않은 구조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은 굳이 가려지지 않은 채 일상 속에 놓여 있었다. 불안정한 시기일수록 모든 것을 덮어 새로 짓는 방식은 선택되지 않았다. 바그다드는 지워진 자리보다 남겨진 자리가 더 많은 도시였다. 그 남겨진 자리들은 과거를 기념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과거를 함부로 정리할 수 없다는 인식의 결과처럼 보였다.


외부에서는 종종 이 도시를 ‘멈춘 곳’이라고 말한다. 변화가 느리고, 미래가 불확실하며, 과거에 붙잡혀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그다드의 시간은 멈춰 있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 많은 시간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가까웠다. 이 도시는 미래를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미래를 선택할 때 과거를 함께 데려갈 뿐이다. 그래서 변화는 급격하지 않고, 혁명적이지도 않다. 대신 한 번 움직이면 쉽게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그 시기에 나는 ‘앞으로 간다’는 말이 항상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어떤 사회에서는 속도가 희망이 되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는 능력이 존엄이 된다. 바그다드에서는 바로 그 조절 능력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뒤, 나는 어느 대표단의 일원으로 다시 바그다드를 찾았다. 짧은 방문이었고 일정은 촘촘했다. 외교부를 방문했을 때,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이름을 불렀다. 10년 전, 이 도시에서 같은 방에 앉아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말을 아끼며 대화를 나누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우리는 악수를 나눴고, 마치 시간이 중간을 비켜 간 것처럼 대화는 그 지점에서 다시 이어졌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바그다드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단지 움직이지 않은 채, 제자리에 남아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바그다드의 시간은 상처 위에 덧씌운 시간이 아니다. 상처를 포함한 채 이어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 도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설명되지 않음 속에서 이 도시만의 단단함이 만들어진다. 바그다드를 떠나며 나는 이곳이 왜 늘 ‘어렵다’는 말로 불리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가볍게 다룰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도시의 시간은 빠르게 소비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그다드는 자신의 시간을 함부로 내어주지 않는다. 이 도시는 시간을 잃은 것이 아니라, 시간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바그다드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도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견디는 법을 배우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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