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엘리베이터에서 사회적으로 사망한 썰

중동 사회의 보이지 않는 규칙을 한 장면으로 읽다

by skyagainsky

사우디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사막을 달릴 때도, 정부 청사를 들어갈 때도 아니다. 모르는 현지 여성과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타는 바로 그 순간이다.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탔다. 검은 아바야를 입은 여성이 먼저 타 있었고, 습관처럼 뒤따라 발을 들였다. 문이 닫히는 0.5초 동안 직감했다.


'헉! 잘못 탔네.'


1평 남짓한 금속 상자가 순식간에 산소 없는 '사회적 실험실'이 됐다. 그녀는 눈만 보이는 니캅 차림. 문이 닫히자마자 시선을 바닥에 꽂고 몸을 버튼 쪽으로 틀어버린다. 좁은 공간에 외국인 남성과 단둘이 있는 상황이 얼마나 불편한지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당황해서 층수 버튼도 못 눌렀다. 그녀가 버튼 앞을 철통 보안 중이었으니까. 몇 초간 망설이다 세상에서 가장 조심스럽고 침착한 아랍어를 뱉었다.


“라우 싸마하티… 캄싸따 아샤라(실례지만… 15층입니다).”


그녀는 내 쪽은 보지도 않고 15를 눌렀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렸고, 나는 균형을 잃으며 그녀의 소매 끝을 아주 살짝 스쳤다.

0.1초.

체감상 번개 한 번 맞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불에 데기라도 한 듯 소매를 확 끌어당겼다.


사과조차 무례가 될까 봐 입을 닫고 벽면의 ‘MAX LOAD 800KG’ 문구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이 숫자가 왜 800인지, 폰트가 굴림체인지 명조체인지 분석하며 인생의 진리라도 찾는 듯 눈으로 금속을 파고들었다.


5층에서 또 다른 아바야 여성이 탔다. 두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속사포 랩 같은 아랍어를 나누는데, 이건 뭐 내 재판 절차처럼 느껴졌다.


숨을 0.1단위로 쪼개 쉬고 있을 때, 하필 재채기 신호가 왔다.

이슬람에서 재채기를 크게 하는 건 결례다. 입을 꾹 닫고 코 근육을 경련하듯 움직이며 버텼지만, 결국 대포 소리가 터졌다.


“에취!!!”


당황해서 무례를 만회하고자 반사적으로 현지 습관을 뱉었다.


“알함둘릴라(하나님께 찬미를)!”


본래대로라면 그녀들도 “야르함무칼라(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기를)”라고 화답해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상황. 그녀들은 종교적 예법과 사회적 금기 사이에서 격렬하게 내적 갈등을 겪는 듯했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보니 자비를 베풀어주기엔 이미 웃음보가 터지기 직전인 것 같았다. 결국 아무도 내게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았다.


그 짓눌린 정적을 가장 잔인하게 찢는 소리가 울린 건 바로 그때였다.


“카톡왔쑝!”


내 주머니였다. 명랑함이 죄가 되는 바로 그 음성. 당황해서 휴대폰을 꺼내려다 바닥에 처박았고, 그 소리는 한 번 더 울려 퍼졌다.


“카톡왔쑝!!!”


알림이 아니라 사회적 확인사살이었다. 그녀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웃지 않았지만, 엘리베이터 안은 이미 웃음을 참느라 일어난 미세한 진동으로 가득 찼다. 공기 자체가 나를 비웃으며 낄낄거리는 기분이었다.


겨우 휴대폰 전원을 껐을 땐, 내 자존심은 이미 심폐소생술로도 안 살아날 상태였다. 10층에서 문이 열리자 두 여성은 도망치듯 내렸다. 그중 한 명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 검은 아바야 사이로 손가락 다섯 개를 세 번 펴 보였다.

‘5+5+5=15층 눌러놨으니, 부디 무사히 가시라는 뜻이었을까.’

문이 닫히자 나는 텅 빈 공간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요즘 사우디에서는 이런 장면이 항상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규범이 강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작은 공간이 순식간에 사회적 긴장지대로 변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는 그걸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