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나드는 중동식 관계의 문법
중동에서 외교관이 경계해야 할 호칭은 왕자님도 공주님도 아니다. 듣는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쫙 흐르는 공포의 한마디는 따로 있다. 바로 한 단어, My brother다.
이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한국에서 “언제 밥 한번 먹자”가 가벼운 안부라면, 중동에서 이 말은 “이제부터 네 시간과 네 신분과 네 양심을 좀 써도 되겠느냐”는 선전포고에 가깝다.
대개 이 호칭은 달콤한 아랍 커피와 함께 배달된다. 상대는 아주 우아하게 한국의 날씨나 드라마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속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치밀한 빌드업이다. 정확히 몇 분 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애절한 표정으로 본론을 던진다.
“오, 마이 브라더.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서남아시아 직원 알지? 그 친구가 나랑 같이 한국에 가야 하는데 아직 비자가 안 나왔어. 지금 바로 발급되게 손 좀 써줄 수 있지? 그 친구 없으면 나 아무것도 못 해.”
중동의 일부 국가 시민들은 무비자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고용한 서남아시아 국적 직원들은 여전히 비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들에게 영사 규정이나 심사 기간이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우리가 브라더냐 아니냐다.
이들에게 법적 절차란 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니라, ‘형제’라는 치트키를 써서 우회해야 할 불편한 장애물일 뿐이다.
안 된다고 하면 그들은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묻는다. “우린 형제 아니었어? 브라더 부탁인데 그것도 안 돼?” 나는 남의 회사 직원 비자를 못 만들어 줬다는 이유로 대대로 이어온 형제애를 배신한 천하의 불효자가 된다.
한 번은 새벽에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My brother”가 들려왔다.
“고위 인사가 지금 제3국에 계신데 곧바로 한국으로 이동해야 해. 그런데 같이 오는 수행 인력 중 한 명이 비자를 받는 걸 깜박했지 뭐야. 그 사람 없으면 일정이 아예 진행이 안 돼. 마이 브라더, 지금 당장 공항에 전화해서 입국하게 손 좀 써줘.”
이미 출발이 임박한 상황에서 비자 없는 수행 인력을 데리고 입국하겠다는 요구였다. 규정상 비자 없이는 비행기 탑승조차 안 된다고 설명해도 소용없다. 그들에게 외교관은 행정관이 아니라,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드는 형제여야 하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형제’라는 호칭은 호의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에게 도덕적 부채를 지워 자신의 요구를 정당화하는 고도의 심리 장치다.
이런 형제 몰이는 중동식 사랑방인 마즐리스(Majlis)에서 절정에 이른다. 바닥에 앉아 대추야자를 씹으며 웃고 떠들다가, 아주 아무렇지 않게 한국 기업과의 대형 프로젝트나 특정 인물의 신원 보증을 꺼낸다.
중동에서 마즐리스는 단순한 사교 공간이 아니라, 공적인 일이 사적인 관계의 언어로 필터링되어 거래되는 거대한 비공식 의사결정 기구다.
특히 고위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시기에는 이 형제들의 화력이 폭발한다. 공식 명단에도 없는 이들까지 연락해 와서 아무렇지 않게 요구한다.
입국 때 불편 없도록 해 달라
공항에서 줄 안 서게 해 달라
며칠 전에 말한 비자는 승인됐느냐
이 형제애의 가장 당혹스러운 점은 철저히 실용적인 유효기간이다. 요청이 해결될 때까지 그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혈육이다.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고, 내 건강을 걱정하며, 이모티콘까지 섞어 가며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나 목적이 달성되거나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연락은 놀라울 만큼 깨끗하게 끊긴다. 사우디식 형제애는 영원한 유대감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향해 달리는 ‘단기 프로젝트형 관계’에 가깝다.
어제까지 간과 쓸개를 다 줄 것처럼 굴던 마이 브라더는 이제 내 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타인이 된다. 직함도 번호도 그대로지만, 형제 서비스는 종료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정작 진짜 실세인 왕자나 장관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진짜 권력자들은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기에 오히려 조용하고 점잖다.
이 표현을 필사적으로 쓰는 이들은 권력의 언저리에서 연결을 팔아먹고 살아가는 중간층 엘리트와 브로커들이다. 그들에게 외교관은 형제가 아니라 자신의 영향력을 증명해 줄 인맥 자판기다.
진짜 권력은 침묵으로도 작동하지만, 결핍된 권력은 ‘마이 브라더’라는 요란한 수식어를 빌려와야 비로소 힘을 얻는다.
그러니 중동에서 누군가가 환한 미소로 “오, 마이 브라더”라고 다가온다면, 감동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달콤한 형제애의 세계에는 공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