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외교 현장에서 만난 ‘부크라’

밤의 잔상, 그리고 낮의 배신

by skyagainsky

외교관의 품격은 빳빳하게 풀을 먹인 셔츠 깃에서 시작되지만, 그 품격이 사막의 모래바람보다 가볍게 흩어지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어젯밤의 기억이 아직도 입안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국익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방패 삼아, 차마 눈을 뜨고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든 그 기묘한 식감의 환대를 목구멍 뒤로 넘겼을 때, 나는 이 땅의 ‘내일’이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착각했다. 이런 착각은 중동에서 보통 다음 날 아침 가장 먼저 교정된다.


전날 밤, 그들은 손님의 예우라며 가장 귀한 부위를 내어주었다. 우리는 기름기를 닦아내며 “마이 브라더”를 연발했고, **마즐리스(Majlis, 손님을 맞는 전통 응접 공간)**에는 말만 들으면 이미 계약서에 서명까지 끝난 듯한 분위기가 흘렀다. 밤의 중동은 언제나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문제는 그 확신이 아침 출근 시간까지 살아남은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차가운 에어컨, 뜨거운 조급함

다음 날 아침, 리야드 외교부 청사의 문을 열자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도하게 단련된 에어컨 바람이 수트 안으로 파고들었다. 중동 관공서의 에어컨은 단순히 ‘시원함’을 주는 가전제품이 아니다. 밖은 50도지만 실내는 16도를 유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의 냉방 집착은 실내를 거대한 냉동고로 만들어버린다. 살을 에듯 파고드는 냉기에 코끝이 찡해지며 감기 기운이 엄습했고, 극단적인 온도 차 때문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체온은 즉시 내려갔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달아올랐다. 본부에서 날아온 시급한 현안들은 이미 내 서류가방 속에서 묵직한 무게감을 더하고 있었다. ‘오늘 중’으로 결판을 내야 한다는 한국적 시간관은 이곳에선 늘 시험대에 오른다. 지구 반대편의 시간은 늘 이곳보다 서너 배는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담당 관료인 압둘라는 어젯밤 나를 껴안으며 형제애를 나눴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러나 낮의 그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전날의 편안한 차림 대신, 중요한 공식 자리에서나 갖춰 입는 단정한 토브(Thobe)를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거대한 행정적 장벽처럼 보였다. 여기서 토브는 단순한 전통 의상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친분을 지우고 철저히 공적 자아로 무장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의전적 갑옷’이다. 어젯밤 나랑 어깨동무하던 ‘동네 형’ 압둘라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국가의 명분을 대변하는 무표정한 관료만이 앉아 있었다.


필기구가 없는 회의

자리에 앉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없는 것’이었다. 필기구가 없었다. 펜도, 연필도, 메모지도 보이지 않았다. 기록은 애초에 예정돼 있지 않은 회의였다. 압둘라는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가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보였다. 당장 답을 줄 수 없을 때일수록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이곳의 예의다. 문제는 그의 옆에 앉아 있던 하급 직원이었다.


그는 기록은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성실하게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보통의 행정 문화라면 상사 옆에서 아무것도 적지 않는 부하 직원은 성실성을 의심받겠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미덕이었다. 그는 대화의 내용보다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내가 몇 번 숨을 쉬는지만 세고 있는 듯했다. 무언가를 적는 순간 ‘책임’이 발생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이곳에서, 필기구가 등장하지 않는 회의는 “오늘 나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겠다”는 가장 선명한 행정적 선언이었다.


신의 섭리에 압도당한 외교의 시간

내가 서류의 시급성과 본부의 압박을 피를 토하듯 설명하며 식은땀을 흘릴 때, 마침내 압둘라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마이 브라더, 오늘 안 되면 부크라(내일), 내일 안 되면 신의 뜻에 따라 언젠가 되겠지. 그런데 친구여, 왜 그렇게 서두르나?”

그 평온한 물음은 마치 고요한 연못에 던져진 거대한 바위처럼 내 영혼의 밑바닥까지 흔들어 놓았다. 그의 논리 앞에 5G 속도로 달려온 나는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아주 성급한 불신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의 대답은 고도의 은유였다. “왕실에서 아직 아무런 하명이 없으니, 나는 지금 이 홍차의 당도가 내 인생의 유일한 관심사다”라는 우아한 정중함이었다.


그가 다시 한번 성자 같은 미소를 지을 때, 아랍 문화권의 격언 하나가 비수처럼 꽂혔다. “서두름은 악마로부터 오고, 느긋함은 자비로운 신으로부터 온다.”그 거대한 여유 앞에 나의 논리적인 설득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나는 결국 가장 정중하고도 절박한 태도로 물러남을 택했다. “그렇다면 모레 오전 9시에 다시 와서 신의 뜻을 확인하겠습니다.” 부크라라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 전, 달력에 정확히 찍히는 숫자에 마지막 외교적 배수진을 친 셈이다.


어젯밤의 환대가 보고서로 번역되는 순간

청사를 나서자 사막의 열기가 다시 얼굴을 덮쳤다. 16도의 냉동고에서 50도의 가마솥으로 던져지니 피부가 팽창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차에 올라타 한숨을 몇 번 길게 내쉬고 나서야 숨이 돌아왔다.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나는 한동안 아무 내용도 없는 컴퓨터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어젯밤 삼켰던 그 지독한 환대와, 오늘 오전에 삼켜야 했던 그 평온한 거절 사이에 낀 하루를 어떻게 문장으로 옮길지 고민하면서였다. 현지의 저 느긋한 ‘인샬라’를 본부의 긴박한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늘 고되다. 결국 나는 키보드를 두드려 이렇게 적었다.


[현지 측 의사결정 구조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심층 협의 중].

이 문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를 외교관이 쓸 수 있는 가장 긴 문장으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생수 한 병의 결기

냉장고로 가 생수 한 병을 꺼내 병째 들이켰다. 이건 음료라기보다 생존 장비에 가까웠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조금 전까지 나를 둘러싸고 있던 ‘부크라’의 공기와 냉동고 같던 청사에서 얻은 오한이 천천히 씻겨 내려갔다.


어젯밤 삼킨 환대가 국익을 위한 의식이었다면, 오늘의 이 갈증은 그 의식을 완성하기 위한 통과의례일 것이다. 이곳에서 ‘내일’은 날짜가 아니라 인내의 단위다. 나는 다시 수첩을 펼쳤다. ‘모레 오전 9시, 외교부 재방문.’

그리고 혼잣말처럼 적었다. 보크라든 부크라든, 끝까지 간다. 어젯밤 그것도 삼켰는데, 이까짓 말 한마디 못 삼킬까.


사막의 밤이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내일의 부크라가 정말 오늘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이곳에서는 필기구가 등장하는 순간에만 역사가 기록된다는 사실이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인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