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밤] 환대는 왜 마음까지 배부르게 할까?

양 눈알과 김치 사이의 사투

by skyagainsky

사우디에서 양의 눈알이 내 접시에 올라왔다.

거절하면 무례가 아니라 관계 단절이다.

옆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안 먹으면, 이대로 우리 인연 끝낼래?”

나는 눈알을 들었다.


사우디의 라마단 밤은 환대만큼이나 그 시간도 깊고, 내 위장의 비명은 그보다 훨씬 더 길다.


분명 웃으며 대문을 들어섰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사우디 브라더들의 정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포옹 속에 갇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귀한 포로가 되어 있었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끝내 탈출에 실패하고, 위장 파열의 공포와 싸워야 했던 어느 처절한 사우디 미식 고문의 경험을 남겨본다.


� [환영한다! 브라더! 마즐리스의 습격]


이미 해진 뒤 식사만 세 번을 해치우고 온 상태였다. 원래 라마단 달에는 식사 초대가 특별히 많다. 중동에서 초대를 거절하는 건 주인 가문의 성의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결례로 비치기 때문에, 위장 파열이 일어날지언정 최대한 응하는 게 도리다.


문제는 해가 진 직후 먹는 첫 식사(이프타르)부터 새벽 전 식사(수흐르)까지 초대장이 폭탄처럼 날아온다는 거다. 어떤 날은 하룻밤에 식사 자리만 서너 번을 소화해야 하는데, 이건 환대를 넘어 거의 음식 투어형 무한 루프 챌린지에 가깝다.


가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도 같이 가도 되냐고 전화로 물었다. 주인장은 잠시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한참 뒤에야 답을 줬다.


"미안해 브라더, 오늘은 남자들만의 모임이라서 안 되겠어."


그렇다. 이곳은 대부분 남녀가 분리되어 식사하는 문화다. 결국 아내라는 외교적 방패도 없이 홀몸으로 그 거대한 환대의 파도를 정면으로 맞으러 가야 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양탄자가 깔린 마즐리스(손님방)로 안내되었다. 중동에서는 인사를 길게 하는 것이 미덕이다. 주인장은 내 어깨를 부서져라 껴안으며 "당신은 우리의 가족"이라며 환대했고, 벽면을 따라 늘어선 사우디 형님들과 일일이 뺨을 맞대고 악수를 나누는 뺨 인사 릴레이를 견디다 보니 어느덧 30분이 순식간에 실종됐다.


인사를 끝냈을 뿐인데 이미 기가 다 빨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숨을 고르기도 전 본격적인 위장 테러의 서막이 올랐다.


� [노란색 아랍 커피, 내 속을 인간 카레로 믹싱하다]


내 배는 이미 잠그기 직전 지퍼가 터져버린 여행 가방 같은 상태를 넘어, 한 방울만 더하면 그대로 넘쳐흐를 것 같은 아슬아슬한 와인 잔 같은 상태였다.


비주얼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노란색 아랍 커피(달지 않고 향신료 향이 강한 것이 특징)가 등장했다. 커피라기보다는 노란 카레 물에 생강과 카다멈(알싸한 향의 향신료)을 쏟아부은 듯한 이 액체는, 이미 가득 찬 내 위장 속 음식들과 결합하는 순간 속 안에서 실시간 인간 카레를 자동 조리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앞선 식사에서 이미 내 위장을 점령한 캅사(사우디식 고기 덮밥) 일당들이었다. 끈적한 기름기를 머금은 밥알들이 노란 커피 물을 만나자마자


“야, 우리 지금 카레 물이랑 섞여서 단체로 나간다? 진짜 1초 뒤에 나간다?”


라며 역류의 노크를 해대는데, 이건 메슥거림을 넘어선 위장 테러 수준이었다.


게다가 에티켓은 잔인하다. 잔을 흔들며 칼라스(Khalas, 다 먹었다)라고 우아하게 사인하지 않는 한, 사우디 형님은 내 반응을 보며 내 위장을 무한궤도로 리필해 준다. 나는 외교적 미소 뒤에 숨어 제발 여기서 분수쇼만은 하지 않게 해달라고 신께 빌어야만 했다.


� [눈꺼풀은 닫힌 철제 셔터, 영혼은 이미 인천공항]


밤 11시 반이 넘어서야 드디어 메인 요리인 캅사와 만디(전통 화덕에서 구운 양고기 요리)가 거대한 쟁반에 담겨 등장했다. 이미 정신은 혼미했다.


눈꺼풀은 전원이 꺼진 노트북 모니터처럼 무겁게 내려앉고, 눈을 뜨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시야가 반쯤 로그아웃되어 간신히 빛만 감지하는 상태였다. 이때부터는 미각이 마비되어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영혼은 이미 사우디 공항을 떠나 인천공항 입국장에 도착해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마즐리스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 [손이 가장 깨끗한 도구입니다]


본능적으로 숟가락을 찾았지만, 사우디 친구는 환하게 웃으며 제지했다.


“브라더, 손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도구야!”


하더니,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고깃덩어리와 밥알을 자기 손으로 직접 주물럭거려 뭉치더니 내 입으로 직행시킨다. 이건 식사가 아니라 거의 고난도의 찰흙 테라피 수준이었다. 특히 밥알을 손끝으로 튕기듯 밀어 넣어 입안으로 골인시키는 그들의 현란한 손놀림을 보며, 낯선 문화의 한복판에 있음을 절감했다.


� [가문의 명예가 담긴 양 눈알]


식사의 피크 타임, 가문의 최고 어르신이 갑자기 경건한 손길로 양 머리의 안와(눈 주변 부위)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어르신의 손가락 끝에 들려 내 접시에 놓아주셨다. 귀한 손님에게만 주는 최고의 성의이자 한 마리에 딱 두 알 뿐인 사우디판 한정판이자 환대의 결정체다.


0.1초 정도 동공지진이 일어난 걸 눈치챘는지, 옆에 앉은 친구가 갑자기 웃음기를 싹 빼고 속삭였다.


“브라더, 왜 안 먹어? 혹시 우리 가문이 너한테 실수했어? 이대로 우리 인연 끝낼래?”


이건 단순히 먹어보라는 권유가 아니라, 잘못 거절했다간 이 가문과 나와의 외교 전쟁이 터질 것 같은 명예의 갈림길이었다. 결국 나는 나를 진지하게 응시하는 그 눈알과 애틋한 마지막 눈인사를 나눈 뒤, 눈을 질끈 감고 입안으로 골인시켰다.


녹진하고 생경한 지방의 풍미가 혀를 타고 미끄러질 때, 나를 바라보던 사우디 형님들의 눈빛은 마치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처럼 뜨거웠다.


� [나를 천국으로 보내려는 무자비한 환대]


너무 배가 불러 잠시 혼미한 상태로 있으면 주인장이 다시 눈을 가늘게 뜨며 다가온다.


“브라더, 왜 이렇게 조금 먹어? 여긴 네 집이고, 음식도 네 거야.”


(알바이트 바이트욱, 왈아클 아클룩 — 현지에서 흔히 말하는 표현이다)


중동의 환대 문화인 카람(Karam)은 손님이 배부르다고 사양해도 겸손으로 치부하고 계속 대접하는 미덕이 있다. 아주 나를 천국으로 보내려고 작정했구나 싶었다. 이건 환대가 아니라 명백한 위장 테러이자 신종 고문이었다.


� [먹는 순간 설탕 왕자 확정, 공포의 달콤한 빌런 루까이맛]


마지막으로 루까이맛(대추야자 시럽을 듬뿍 뿌린 튀김 경단)이 등장했다. 튀김 공을 시럽에 아예 담가버린 이 물건은 극도로 달아서 먹는 순간 당 수치가 걱정될 정도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내 눈에 이 동글동글한 루까이맛은 디저트가 아니라 내 위장에 박힐 마지막 달콤한 빌런처럼 보였다. 중동에서 단맛은 곧 신의 축복. 적당히 달면 예의가 아니기에, 입에 넣는 순간 온몸의 혈관이 설탕물로 바뀌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루까이맛을 남기는 건 환대를 온전히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다. 나는 환대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그 끈적한 당분 폭탄을 꾸역꾸역 삼켜냈다.


� [새벽 2시, 김치 한 조각과 행복한 마무리]


새벽 2시가 넘어 귀가하자마자 옷이고 뭐고 냉장고부터 열었다. 아랍 커피와 양고기 기름으로 코팅된 식도를 빨간 김치로 씻어내야만 했다.


김치 한 줄기를 입에 넣는 순간, 비로소 사우디의 무자비한 애정 공세로부터 해방되어 성공적으로 민간 외교 업무를 완수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중동 #라마단 #비즈니스문화 #문화인류학 #환대 #이문화이해 #사우디밤문화 #에세이 #기록 #경험담 #글쓰기 #글로벌에티켓 #생활방식 #낯선곳에서의삶


작가의 이전글나 한국 남자랑 결혼하는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