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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시코기 Apr 04. 2020

인생이란 애당초 예측 불가한 것

<매기스 플랜> 2015, 레베카 밀러 감독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매기'(그레타 거윅)는 아이를 원하지만 결혼은 원치 않는다. 고민을 해결할 계획의 실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그의 앞에 유부남 대학 교수 '존'(에단 호크)이 나타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결혼 3년 후, 상상과는 다른 결혼 생활에 지쳐가던 매기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데...




정원사와 장미

정원사와 장미, 극 중 존(에단 호크)과 조젯(줄리안 무어)의 관계에 대해 묻는 매기(그레타 거윅)에게 존이 제시하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을 비유한 개념이다. 사소한 물건 하나에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존재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도 여겨지는 사랑에 그것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듯 사랑을 받는 사람 또한 있는 것이다. <매기스 플랜>이 이 두 개념을 바라보는 관점은 독특하고도 유쾌하다. 영화는 자칫하면 막장 드라마가 될 수 있을만한 영화의 설정들을 의도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 이면을 파고들어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해낸다. 예상과는 다르게 펼쳐지는 전개에 쿡쿡대며 웃다가도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장면들에서 마음 한 구석에서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만남에서 존은 매기에게 모든 관계엔 정원사와 장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과 조젯의 관계에서는 조젯이 장미라고. 그러자 매기가 묻는다. "교수님이 정원사겠네요?"라고. 그러자 존이 답한다. "근데 원예에는 소질이 없어요." 그러자 매기가 말한다. "교수님이 장미일 지도 모르잖아요." 이 장면에서 매기와 존이 나누는 대화는 결혼 후에 역전될 존의 위치에 대한 일종의 암시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존은 전처 조젯과의 결혼 생활 중에는 조젯을 보살펴주는 위치였다. 그는 직장 업무와 성과를 중시하는 조젯의 곁을 지키는 버팀목이었고, 투닥거리는 날이 훨씬 많을지라도 둘은 서로에게 의지했다. 이랬던 그의 위치는 그가 전처와 이혼 후 매기와 결혼하게 되면서 바뀌게 된다. 이제는 매기는 '정원사'가, 존은 '장미'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알 수 있다. '원예에 소질이 없다'던 그의 말처럼 사실 그는 정원사였을 때도 그다지 실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조젯의 그에 대한 묘사는 그것을 입증한다.

일방향적인 관계에 지친 매기가 참고 참다 자신의 속이야기를 꺼냈을 때, 존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대답한다. 당신은 혼자 잘 이겨내니 괜찮은 거라고. 그러자 매기는 이렇게 말한다. "삐걱대는 바퀴엔 기름칠해주고 선인장엔 물 안 주는 거야?"라고. 관계라는 것이 이렇다. 상대에게로 향하는 소중한 마음은 상대방의 권리가 되어버리고야 만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바퀴엔 눈길이라도 한번 가기 마련이지만, 이따금씩 내리는 물을 머금고 사는 선인장에게는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물을 주는 사람은 이따금씩 들여다보며 잘 살고 있겠지 생각하면 그만이다. 처음의 감정은 점점 잊히기 마련이다.



남편 반품하기

남편의 편의를 봐주며 그를 돌봐주는 것에 여념이 없던 매기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낸다. 바로 남편을 그의 전처에게로 다시 보내는 것이다. 마치 물건을 반품하듯이. 이보다 간단한 방법은 있을 수 없다. 매기의 계획을 들은 조젯은 바로 화를 내지만, 다시 만났을 때는 오히려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어쨌든 존에 대해 미련이 조금은 남아 있던 것이다. 매기의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캐나다 퀘벡에서 진행되는 컨퍼런스에서의 우연을 가장한 만남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계획에 따라 조젯과 다시 사랑에 빠진 존은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매기는 자신의 계획이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자신의 진심을 다시금 털어놓는다. 그러나 혼자 아이를 낳고 살려고 했던 이전 계획이 엎어졌듯, 이번에도 그의 계획에는 차질이 생기고야 만다. 매기의 친구 토니가 술김에 그의 행동의 근원엔 매기의 계획이 존재했음을 언급한 것이다. 배신감을 느낀 존은 짐을 챙겨 집을 나가 버리고, 매기는 복잡한 자신의 심정을 조젯에게 털어놓는다.

매기와 조젯의 관계는 이 영화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이다. 남편의 전처와 고민 상담을 하는 현(現)처라니, 이 점에서부터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세 인물 매기, 존, 조젯은 사실상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든 유형의 사람들이겠지만, 이 영화에서 누군가의 관계를 응원해야 한다고 할 때, 가장 응원하고 싶은 관계는 존과 매기의 관계도, 존과 조젯의 관계도 아닌 매기와 조젯의 관계일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복잡 미묘하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이 영화의 결말은 불 보듯 뻔했을 것이다. 단순히 막장극에 그쳐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다소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특히나 조젯이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에 패닉이 온 매기에게 집착하지 말라 조언하며 '두드리기 요법'을 하도록 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진지하면서도 웃긴 장면이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다 태워버려 재만 남은 존의 원고를 그에게 돌려주며 한 방 먹이는 조젯의 모습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인생도 반품할 수 있을까?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면 영화의 제목이 보다 인상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제목부터 '매기스 플랜(매기의 계획)'인 만큼 이 영화에서 '계획'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매기는 자신의 사랑, 결혼, 출산, 자녀, 이혼에 대한 계획을 계속해서 세웠다. 처음 시작은 결혼을 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하나 갖는 것이었고, 그다음은 사랑하는 남편의 꿈을 돕는 것, 또 그다음은 자신만 생각하는 남편과 헤어지는 것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참 구체적으로도 세워놨던 매기의 계획들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가장 처음 가졌던 '아이를 갖는 계획' 하나만이 원래 계획대로 이뤄졌을 뿐이다. 중간중간 예상과는 다르게 펼쳐지는 전개는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이면서 핵심 주제가 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구체적이면서도 허무맹랑한 매기의 계획들이 실패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말이다.

매기의 계획이 계속해서 엎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지켜볼수록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인생이란 애당초 예측 불가하다는 것. 이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매기스 플랜>은 자신의 계획이 얼마나 덧없던 것인지 깨달은 매기의 성장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후의 매기는 더이상 하나의 계획을 달성하는데 집착하지 않을 것이고, 계획이 실패한다 한들 이전처럼 당황하고 있기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매기의 가장 처음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의 결말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봤다. 모두 계획한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애당초 예측 불가한 우리네들의 인생, 그 변화무쌍함을 즐기면서 살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선택이자 계획이 되지 않을까. 이 영화는 나에게 인생이라는 길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아래 링크의 글과 동일합니다.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7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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