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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시코기 Mar 15. 2020

별거 아니면서도 제일 소중한 것들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김초희 감독



청춘을 다 바쳐 영화 일에 매진했는데, 그래도 영화는 계속 찍고 살 줄 알았는데. 영화 프로듀서 일을 하며 살아오던 ‘찬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꾸준히 해오던 업을 잃는다. 집도, 연인도, 돈도 없어 앞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그는 친한 배우 동생 ‘소피’의 가사도우미로 취직해 나름의 살길을 모색하려 한다. 그곳에서 알게 된 소피의 프랑스어 선생 ‘영’에게 마음이 가던 와중, 찬실의 앞에 자신이 장국영이라 말하는 귀신이 등장한다.



단순히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만 같던 영화는 어느 순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진솔한 농담과 위로를 가득 담은 손을 슬며시 건넨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마음처럼 되지 않죠?’ 하며.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김초희 감독이 오랫동안 프로듀서로 일해오다 예기치 않은 슬럼프를 겪는 상황에서 마음속에 꺼져가는 영화의 불씨를 지피려고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감독의 특수한 자전적 이야기에서 시작한 영화는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 성공했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부터 부산국제영화제까지 꾸준히 이어진 입소문은 이것을 충분히 입증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관객들이 찬실이를 위로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자신을,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 또 다른 찬실이들을 위로하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으리라. 우리가 믿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러기란 쉽지 않다는 것에 공감하고,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에 다시금 공감하며.

영화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심심하다는 영의 말에 찬실은 이렇게 답한다. “심심한 게 뭐 어때서요? 본래 별게 아인 게(아닌 게) 제일 소중한 거예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이 대사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보다 보면 지지리 복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찬실이 실은 복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는 이전보다도 '일복', ‘식(食)복’, ‘남자복’, 무엇보다도 ‘인복’이 차고 넘친다. 아마도 그런 그를 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이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별거 아니면서도 제일 소중한 것들에 대해 말하는 이 사랑스러운 영화를 보며 많은 관객들이 웃고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봄, 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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