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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시코기 Jan 22. 2021

한 기자의 폭로, 저널리즘의 본의(本義)

<미스터 존스> 2019,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


ⓒ 디오시네마




1930년대 초 런던, 히틀러와 인터뷰한 최초의 외신기자로 주목받던 '가레스 존스(제임스 노튼)'는 소련 스탈린 정권의 막대한 자금에 의문을 가지고 스탈린을 인터뷰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한다. 참혹한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그는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디오시네마

가레스 존스(제임스 노튼)는 열정 넘치는 언론인이며 주목받는 신예 기자다. 영국 수상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외교고문이며 히틀러와 괴벨스를 최초로 인터뷰한 외신 기자라는 사실은 그의 자부심의 근원이다. 어느 날 그는 스탈린 정권의 막대한 정치자금 출처에 의문을 갖고  그것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그는 스탈린을 직접 인터뷰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하는데, 그 과정은 역시 험난하다. 일주일로 계획한 일정은 열리지도 않는 호텔 행사 때문에 이틀로 축소되고, 비밀경찰(NKVD)들이 곳곳에서 기자를 포함한 모두를 도청하고 감시한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인 월터 듀란티(피터 사스가드)를 만나 그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스탈린 정부와 가깝게 지내며 현실과 타협한 지 오래인 그는 그의 청을 거절한다. 핵심적인 정보를 알려주려던 동료 기자가 죽고 취재 방향을 잃어가던 존스 자금의 출처를 아는 듯한 듀란티의 부하 기자 에이다 브룩스(바네사 커비)에게 도움을 청한다. 나치의 만행을 피해 베를린에서 모스크바로 온 그는 스탈린 정권의 혁명과 대의를 지지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를 거부하나, 종국에는 그의 진실한 태도에 마음을 열어 '우크라이나'라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그는 지체 없이 우크라이나로 향한다.


폭주하는 기관차와도 같던 빠른 극의 흐름은 이때부터 급격히 느려진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하는 씬은 모두 흑백에 가깝게 묘사된다. 그 참혹함을 단순히 자극적으로만 전시하지 않고자 함이 그 의도다. 흑백의 화면임에도 그곳의 참담한 모습은 스크린을 넘어 생생히 전해진다. 그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해 보는 것은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던 비옥한 곡창지대가 아니다. 소련 정부가 제창하던 '노동자의 낙원'이나 '유토피아'의 흔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연이은 착취와 약탈로 황폐해진 차가운 땅과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이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 길거리에는 시체 더미가 즐비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중 일부는 정부에서 주는 소량의 곡식 보급으로 연명하며, 그것도 여의치 않는 자들은 죽은 자의 인육과 나무껍질을 먹는다. 기차 안의 남자에게 외투를 사기 위해 돈을 주려는 존스에게 돈은 됐고 빵이 있냐고 물어보는 남자와 그의 가방을 훔쳐가 소시지만 가지고 달아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정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 디오시네마
진실은 오직 한 종류뿐이죠.


존스는 그곳에서 그가 보고 겪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곳곳을 취재하다 비밀경찰의 눈에 띄어 체포되고, 모스크바에 투옥된다. 스탈린 정권은 같은 감옥에 갇힌 다른 기자 인질들의 목숨을 담보로 영국으로 돌아가 거짓 기사를 발표하라 그를 협박한다. 자신의 신념과 그들의 목숨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진실을 밝히는 길을 택한다. 그는 영국에 돌아가 스탈린 정권이 그 이면에서 우크라이나인 수백만의 죽음을 방치하고 있다는 폭로기사를 내지만, 듀란티가 곧장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반박기사를 내고, 퓰리처상 수상 기자인 그의 위신은 존스의 기사를 순식간에 거짓으로 만든다. 영국의 정치인들조차 경제 위기로 국가가 파산될 지경인 상황에서 소련에 등을 돌릴 수 없다며 그를 외면한다. 그는 모두에게 조롱받는 미치광이가 되고, 그가 폭로한 진실 또한 세상에서 서서히 잊혀진다.


설 곳을 잃은 그는 결국 그는 자신의 고향 웨일스로 돌아가 그곳의 작은 신문사에서 정치부에 기사를 싣지 않는 조건으로 일하게 된다. 우연히 언론 재벌 윌리엄 허스트가 휴가차 근처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존스는 그를 만나 설득하고 자신의 기사를 뉴욕 아메리칸지에 싣는 데 성공한다. 허스트의 위상에 힘입어 그의 폭로는 다시금 진실성을 얻게 되고, '홀로도모르(Holodomor)' 사건은 그렇게 다시금 세상에 밝혀진다. 비록 그는 말미의 자막 내용과 같이 몇 년 지나지 않아 소련이 배후라는 정황 아래 1935년 내몽골에서 납치되어 살해되지만, 후에 그가 폭로한 진실이 사실임이 명백히 드러나게 되면서 그의 업적은 재평가됐다. 우크라이나가 1991년 소련 정부로부터 독립하고 당시 사건을 전면 재조사 한 뒤의 이야기다.



ⓒ 디오시네마

어쩌면 이 영화를 단순히 뒤늦게 세상에 밝혀진 '진짜' 진실과 그것을 취재한 기자에 대한 이야기라 칭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지향점은 오히려 그것에 대한 재현보다는 다른 지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가레스 존스의 취재 실화를 바탕으로 하나 실제와 일부분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에이다 브룩스라는 인물의 존재다. 에이다는 실제 인물이 아닌 영화를 만들면서 추가된 가상의 인물이다. 존스와 처음 만날 때, 그는 스탈린 정부의 혁명과 그들이 표방하는 대의를 지지하며 듀란티에 의해 검열당한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였다. 존스의 취재를 지켜보면서도 그는 대의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진실을 외면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존스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저널리즘 정신을 깨닫게 된다.


존스로 인해 깨닫게 되는 인물은 에이다뿐만이 아니다. 조지 오웰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가레스 존스의 폭로는 조지 오웰이 『동물 농장』을 집필하는데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듯 그는 사회주의자였고, 에이다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스탈린 정부의 대의가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존스와의 만남을 통해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아닌 진실을 폭로하는 편의 손을 든다. 영화 속 장면과 달리 가레스 존스와 조지 오웰의 만남은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영화는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고, 의 소설 집필과 가레스 존스의 취재 과정을 교차하는 영화의 전개 방식을 통해 둘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연결 지었다.


가레스 존스는 취재와 폭로를 통해 스탈린 정부가 숨긴 진실을 세상에 보였고, 조지 오웰은 자신의 소설 속에서 스탈린 정권의 이면적인 모습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은유하며 다시금 세상에 보였다. 부패한 기득권자와 그 곁에서 회유당하는 자, 추종하는 자, 비겁하게 진실을 회피하는 자들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영화는 관객에게 계속해서 이 질문을 던진다. 오웰의 대사 "말하는 게 당신의 의무이고, 듣는 게 우리의 권리죠."는 결국 두 사람의 행위 의의를 뜻하면서 저널리즘과 대중의 관계를 명료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결국 <미스터 존스>는 현시점에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과거의 실화를 바탕으로 저널리즘의 본의(本義)를 다시금 아로새기며 옳은 방향을 되찾길 바라는 영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저널리즘은 가장 숭고한 직업이에요. 사실을 따라서 어디로든 가야만 하죠. 누구의 편도 아니에요.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중



*이 글은 아래 링크의 글과 동일합니다.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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