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요리를 시작했다. 다시 살이 피둥피둥 오른다.
2월이 다 지나서야 토론토에 오고 난 후로 밤마다 앓던 우울감을 이겨냈다. 사 먹는 걸 포기하고 요리를 시작하고 나니 살 맛이 난다. LA에서 살 때도 요리를 해 먹긴 했지만, 시간이 많이 들거나 만만치 않아 보이는 메뉴는 그냥 사 먹었다. 사 먹는 게 더 싸고 맛도 있으니깐- 토론토에 오고 나서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LA에선 영영 친구가 없이 외톨이로 지낼까 싶어 겁이 났다면 토론토에서는 음식이 복병이다. 맛집이라고 해서 갔는데 육개장이 꿀꿀이죽 맛이 나서 반도 못 먹고 남겼다. 하루는 짬뽕을 사 먹었는데 해물이 상했는지 주말 내내 식중독으로 고생했다.
남편의 생일날에 맛있는 케이크집을 찾아 헤매는 대신에 직접 당근 케이크를 구웠다. 처음 구운 케이크인데 맛이 제법 괜찮았다. 어설프게나마 요리를 직접 하면서부터 입맛이 돌아왔다. 덕분에 살이 피둥피둥 오르기 시작했지만, 잘 먹고 잘 자는 지금이 행복하다.
이민생활, 친구를 꼭 사귀어야 할까?
LA에선 서울의 친구들이, 토론토에선 LA의 친구들이 자꾸만 생각나서 애를 먹었다. 남편의 커리어 상 과감한 결정을 하긴 했지만, 토론토에 얼마나 살지도 모르는데 굳이 친구를 사귀어야 할까? 급작스레 LA를 떠나면서 겪은 걸 금방 다시 겪고 싶지 않다. 남편의 직장 동료들이 다들 성격이 좋고 외향적이라서 여러 자리에 초대를 받는다. 고마우면서도 주말이면 둘이서 집에서 뒹굴뒹굴거리게 된다. 요즘은 삼시세끼 챙겨 먹는 것만으로 하루가 금방 간다. 밥 해먹고 장 보고 낮잠을 잠깐 자고 나면 끝나있다.
밖에 나가서 누구랑 어울리지는 않지만, 집에 놀러 온 손님들에겐 마음을 다 한다. 지난주에는 Gabe네 Mocha가, 이번 주말엔 Charles네 Finn이랑 Ollie가 놀러 왔다. 둘이서만 지내던 조용한 집에 강아지들이 촐랑거리면서 다니는데 침대에 실례를 해도 귀여웠다. 먹이고 씻기고, 이불 빨래를 여러 번 하느라 부산스러웠지만 즐거웠다. 잘 때도 바로 옆에 끼고선 배를 긁어주면서 잤다.
친구를 사귀는 건 머뭇거리게 되면서도 꼬리를 살랑살랑 치면서 놀아달라는 강아지들에게는 마음이 활짝 열린다. 남편이 워낙에 강아지를 좋아해서 당장 데려오고 싶지만, 아기를 기다리고 있고 토론토에서 계속 살게 될지도 몰라서 일단은 참기로 했다. 언젠가 태어날 아기에게도, 그 아이에게 가려져서 상처받을 강아지에게도 미안한 일이니깐-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강아지 입양은 미뤘다.
나이, 잘 먹고 있다. 귀여운 할머니가 될 거다.
이민생활, 외로워서 매일 울었던 적도 있는데 하루하루 살다 보니 외로움도 극복이 된다. 티격대면서도 서로 얼굴을 비비고 품어주던 라바 두들 형제 Finn과 Ollie처럼 남편과 둘이서 아껴주며 산다. 내 감정보다 옆 사람 힘든 게 더 안쓰러운 걸 보니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나이 먹는 게 이런 거라면 좋다. 나이, 잘 먹고 싶다.
고독감은 수시로 불쑥 찾아오겠지만, 지금은 내가 남편을 밀어주고 뒷받침해줘야 할 시기다. 외로움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도 사치다. 얼굴살이 쪽쪽 빠져가며 일하는 남편을 볼 때면 돈도 더 아끼게 되고 여하튼 정신이 번쩍 든다.
뭔가 해볼 도리가 있는 매일이어서 다행이다. 오늘을 알차게 살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하면서 살 내일도 오겠지! 그때까진 내가 발 딛고 사는 '지금, 여기'에서 내 옆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충실하고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늙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에도 후회 없이 미소 지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이십 대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 한 꿈이 생겼다.
'귀여운 할머니'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