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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Jan 11. 2024

시골 정원이 말해주는 ‘얀테의 법칙’

“당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겨울 정원은 쓸쓸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피웠던 식물들의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이미 열매 맺고 씨앗을 퍼뜨린 그들은 죽음으로 영원을 꿈꾼다.


이 정원의 주인공은 한때 꽃잔디와 수선화였다가, 작약과 철쭉, 꽃범의 꼬리 등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내 생각이고’, 이름 모를 풀과 꽃이 저마다 자기의 삶을 산다.      


꽃은 주연으로 나설 의도가 없다. 모두 내 시선이고 생각이다. 어떤 꽃은 드물다는 이유로, 어떤 것은 종자가 비싸다는 이유로 귀한 대접을 받지만 모두 사람의 편견이다. 색색의 앙증맞은 꽃이 피는 란타나는 열대지방에선 잡초이고, 연보랏빛 하늘하늘한 부레옥잠은 동남아시아에선 유해식물이다.    

  

정원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다. 생물은 자연에서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서로 복잡하게 얽혀 살아간다. 그런 면에서 정원엔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이 적용된다. ‘보통 사람의 법칙’이다. 내가 남들보다 특별하거나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북유럽에서 전수되어온 덕목이다.    

  

여기에 갑을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직업에 귀천을 따지지 않고, 돈과 스펙으로 다른 사람을 하대하지 않는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뿐, 그저 다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모네의 정원을 본다. 아치형 다리, 아름다운 꽃과 연못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것들은 정원의 장식일 뿐이다. 다리 하나, 꽃 몇 가지 놓여 있다고 모네의 정원이 빛날까? 진정 모네의 정원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수천의 이름 모를 풀들이다. 

 

수련 연못(The Water-Lily Pond) 1899, 88.3x93.1cm, Oil on canvas [The National Gallery, London]

     

모리셔스섬에서 서식하던 날지 못하는 새인 도도새가 멸종되자 신기하게도 섬에서 자라는 ‘칼바리아’라는 나무도 멸종됐다. 칼바리아의 열매는 딱딱해서 도도새만 먹을 수 있었는데, 바로 도도새가 이 나무의 씨앗을 퍼뜨리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무섭지만 재밌어서 밤새 읽는 식물학 이야기, 이나가키 히데히로>   

  

손님이 하나도 없는 병원, 예금 하나 없는 은행, 다툼이 없는 법정, 국민이 없는 국회의원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은연중에 서로 의지하며 남들의 신세를 지며 살고 있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로 얽혀서 살기보다 할퀴며 살기로 맘먹은 듯하다. 도도새가 죽기를 바라는 듯하다.     


이 세상에 파리가 없으면 곳곳에 동물의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모든 존재는 존재의 가치가 있는 법이다.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이를 바탕으로 맺어진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어 내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막에 /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 모래와 모래 사이다. / 사막에는 / 모래보다 /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 모래와 모래 사이에 / 사이가 더 많아서 /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 오래된 일이다. <사막, 이문재>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산다. 사막 같은 세상을 사는 모래 같은 사람에겐 ‘사이’가 필요하다. 사이는 관계의 통로이고 시간적인 여유나 겨를이기도 하다. 그간의 경제발전 속에서 우리가 구하고자 했던 것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었는지, 어두운 길을 밝히는 가로등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얀테는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 이름으로, 이 마을은 ‘잘난 사람’이 대우받지 못하는 곳이다. 여기에는 10개 조의 규칙이 있다. 10개로 구성된 얀테의 법칙 중 여섯 번째는 이렇다. “당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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