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한 마리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묘연(猫緣). 우리의 인연은 2015년 6월에 시작됐습니다. 낳은 지 보름 된 새끼를 동생 소개로 데려왔으니 이제 여덟 살이 다 되어갑니다. 평균 수명이 12년이라 하니 이제 중년의 나이죠. 이 수컷 샴고양이의 이름은 "홍이"입니다.
다리를 쭉 뻗어 기재개를 켜고 머리를 한쪽으로 살짝 돌리며 곁눈으로 나를 쳐다봅니다.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여 녀석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두드려줍니다. 나른하게 머리를 누이다가 갑자기 내 손을 발로 차면서 긁어대더니 이내 이빨로 자근자근 물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날카로운 이빨로 아프지 않게 강약 조절을 잘하는지. "아야, 아야~"하면서도 내 입가엔 환한 웃음이 번집니다.
웅크리고 옆에 앉은 녀석을 보면 가만 놔두기 어렵습니다. 등이든 꼬리든 만지작거리고 싶고 쓰다듬고 싶어 집니다. 결국 턱을 간질이기도 하고 양볼을 지그시 잡아당겨보기도 합니다. 달려와 안기는 것도 아니고 반갑게 짖어대지도 않는,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는 녀석에게 나는 왜 이토록 끌리는 걸까요? 도대체 이 녀석의 매력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사실 제가 홍이를 모시고 산다고 했는데 그 정도는 엄살에 불과합니다. 약 5천 년 전 고대 이집트에선 고양이 모습을 띤 신이 있었고 기르던 고양이가 죽으면 기르던 사람은 눈썹을 밀어 애도하고 미라로 만들어 장례를 치러주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를 죽이거나 괴롭히면 최고 사형에 처했기 때문에 애지중지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쥐뿐만 아니라 뱀과 전갈 등을 물리쳐 사람을 보호하는 유익한 짐승이기 때문에 끔찍이 보호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중세 15세기 이후 고양이는 개체수가 늘어나며 인간으로부터 홀대를 받기 시작합니다. 길고양이가 넘쳐난 데다가 유럽 전역에 번진 마녀사냥 바람에 '검은 고양이는 마녀의 하수인'이라는 미신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생사에 인간의 영향을 받은 동물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다행히도 고양이는 숱한 역경을 딛고 반려동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애묘 인구가 많은 서양에선 서너 집에 한 집 꼴로 고양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농경사회로 넘어오면서 곡물을 저장하던 시기에 고양이가 사람들의 거주지로 접근해 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9천5백 년 된 사람의 무덤에서 고양이의 유골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그즈음을 반려묘의 시초로 보고 있습니다. 동양권에서 고양이는 장수의 상징이죠. 한자로 고양이 묘(猫) 자가 칠십 노인을 뜻하는 중국어의 모(耄, 마오)와 발음이 같아서 그렇다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불교 전래와 함께 불경을 쥐로부터 보호하고자 고양이를 들여온 것이 시초라고 전해집니다. 가야 토기를 비롯해 민화에도 등장하며 조선 숙종 때는 왕실에서도 길렀다고 합니다.
《 "홍이"는 샴 고양이 》
'홍이'는 샴 고양이입니다. 날씬한 몸매에, 머리는 삼각형,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좀 더 길고, 꼬리는 긴 편입니다. 몸 빛깔은 옅은 황갈색이며 귀·꼬리·주둥이·앞뒷다리 등의 말단부는 짙은 갈색을 띱니다. 새끼 때는 몸 전체가 흰색에 가까운 옅은 베이지색이었는데 한 살이 지나면서 변했습니다. 귀는 위를 향해 쫑긋 세워져 있는데 앞 뒤로 접힐 정도로 유연합니다. 고양이는 초음파까지 들을 수 있을 만큼 가청범위가 넓으며 소리의 발생원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데 있어서 털 관리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샴 고양이는 단모종 중에서도 털이 짧고 많이 빠지지 않는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실 아주 미세해서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사람의 몸에도 침팬지만큼 많은 털이 자라고 있다고 하니 우리는 영원히 털에서 해방되기 어렵습니다.
고양이털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한다는 분들이 많은데, 그 원인은 주로 고양이 피부의 피지선에서 주로 생성되는 Feld 1 당단백질과 침샘에서 주로 생성되는 Feld 4 단백질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양이가 털을 그루밍하면서 핥을 때, 침과 피부의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털에 많이 묻기 때문에 털이 알레르기의 원인인 것처럼 알려져 있는 것이죠. 다행히 샴은 피부에서 분비하는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아주 적은 편이라서 민감한 사람이 키우기에 좋습니다. 물론 이 또한 상대적입니다.
《 먹는 것 》
식사는 자유배식을 합니다. 고형사료 몇 가지를 섞어서 주는데 알아서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먹습니다. 밥이나 물을 먹을 때는 옆에 누가 있어주는 것을 기대합니다. 특히 새벽에 울어서 깨면 밥그릇이 있는 곳으로 누구든 데려가 먹는 것을 지켜보게 합니다. 졸린 눈으로 철퍼덕 옆에 주저앉아 녀석이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소리를 들으면 갓난아이 돌보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난 것은 우리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주로 저녁에)하면 녀석도 같이 밥을 먹습니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리하는 건지, 분위기에 따른 조건반사인지 알 수가 없네요. 물도 자주 먹는 편인데 건강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길다란 혓바닥을 조금 내밀어 할짝할짝 핥는 모습은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못견딜 정도 입니다.
신부전증을 앓은 이후 의사 권유로 닭가슴살을 끊었는데 덕분에 늘씬한 체형관리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참고 있을 뿐 어쩌다가 한번 줄라치면 집사의 다리에 이리저리 꼬리를 걸쳐대며 빨리 달라고 집요하게 울며 재촉합니다. 혹시라도 다시 아플까봐 자주 주지 못하는(저런 행동을 자주 보지 못하는) 마음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풀을 뜯기도 해서 화분에 있는 트리안, 개운죽(開運竹, lucky bamboo)을 처참하게 갉아놓습니다. 이런 것이 소화에 도움을 주고 변비를 예방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하고, 또 속이 불편한 고양이는 섬유질을 섭취해 위 속의 상한 음식물이나 뭉친 헤어볼을 토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성이 있는 풀은 먹지 못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겠죠.
《 싸는 것 》
아마도 고양이를 키우는 데 있어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은 배변관리가 아닐까 싶은데요. '홍이'는 놀랍게도 사람이 쓰는 화장실을 이용합니다. 그러니까 대변은 화장실 바닥에, 소변은 변기에 설치한 좁은 플라스틱판에 올라가 해결합니다. 배변 후엔 모래가 아닌 욕실 타일바닥과 플라스틱판을 연신 긁어 덮는 시늉을 합니다. 휴지로 주워버리고 변기 물을 내린 후 샤워기로 욕실바닥을 닦으면 뒤처리가 끝납니다.
배변훈련을 시킨 결과 홍이는 지난 6년간 모래를 전혀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먼지가 생기지 않아 여러모로 쾌적하고, 모래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홍이가 너무 고맙고 대견할 따름입니다. 물론 배변활동과 결과물에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좀 특별한 케이스라서 고양이연구소 등에 문의해 보기도 했습니다. 모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없지만 모래 사용을 추천한다로 끝맺는 추측성 답변뿐이었습니다.
《 자는 것 》
밤낮으로 잠을 많이 자는데 장소는 침대, 옷장, 바구니, 창가 등 주로 따뜻하고 푹신한 곳을 찾아서 주기적으로 옮겨 다니며 잡니다. 밤시간에 나와 같이 잘 때는 언제나 다리 쪽 가랑이 사이에 자리 잡습니다. 애들과 잘 때는 어깨, 허리춤으로도 가는데 나한테는 약간 거리를 둡니다. 털썩 주저앉아 기대어 자리를 잡은 후 몸을 살짝 틀어 옆으로 누워 자리를 잡습니다. 이따금 이불속으로 들어오기도 하는데 꽤 무게감이 느껴져 자다가 다리가 저려 깨기도 합니다.
자는 모습도 참 다양합니다. 아예 무방비상태로 배를 드러낸 채 둥글게 말고 자기도 하고, 옆으로 누워 눈을 가리고 잘 때도 있고, 앞발을 쭉 뻗어 스핑크스 자세로 잘 때도 있습니다. 식빵 자세로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사지를 벌리고 누워 잘 때도 있고요. 턱을 괴는 것을 좋아해서 손을 턱밑으로 넣어주면 슬그머니 기대어옵니다. 자고 일어나면 꼬리를 세우고 등을 구부려 부르르 떨거나 바닥에 옆으로 누워 길게 기지개를 켭니다. 세상 편안한 자세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 누구처럼 처음이라서...라고 변명하진 않겠습니다. 》
책으로 키우다 보니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니 지금도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면 쏜살같이 튀어나와 밖으로 나가려 하기에 가끔씩 바깥으로 데려나가 산책시키곤 했습니다. 예전에 아이들이 군복무 할 땐 차에 태워 같이 면회도 몇 번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바깥 산책이나 장거리 이동할 때 낯선 환경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게 된 지금 선뜻 시골집으로 데려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샴 고양이는 우울증이나 분리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홍이가 세 살 때쯤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내부 인테리어 때문에 일주일간 입주를 못했더랬습니다. 고양이 호텔에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닷새 후에 다시 만난 홍이는 너무나 힘없고 우울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버려진 것이라 느꼈던 것인지 그때 홍이의 힘없는 눈동자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이 아이에게 우리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존재인지를.
고양이는 선천적으로 신장이 약하다는데 홍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2021년 초에 한동안 밥을 잘 먹지 못해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급성신부전증으로 진단받았습니다. 오래 못 산다 했는데 입원해서 링거를 맞고 장기간 통원치료와 약물투여를 해서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사실 그때 당시에 나는 포기했지만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고 회복에 대한 의심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홍이와 놀 때 가끔씩 내 판단을 후회하고 그때 일로 죄책감을 느끼곤 합니다.
《 태도와 습성 》
이 녀석 나름 맹수의 외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본능적인 카리스마도 보통이 아니구요. 벌레나 장난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 날래기도 하고 확연한 긴장감이 주변에 맴돕니다. 유리창을 통과한 햇빛이 천정에 어른거리면 그릉거리며 공격본능을 드러내기도 하고, 참을성도 대단해서 날파리가 있으면 오랫동안 시선을 떼지 않고 공격 기회를 엿보곤 합니다. 장난감도 드러나 있는 것보다 살짝 숨겨져 있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높은 곳에서 흔들림 없이 바닥에 착지할 수 있는 정교한 균형 감각은 물론 뺨과 팔꿈치에 난 감각모를 사용해 조용하고 은밀하게 접근하는 능력도 갖고 있지요.
어미 고양이가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뒤 흉내 내는 방식으로 새끼 고양이가 사냥기술을 터득한다고 들었습니다. 16세기에 이런 고양이의 습성을 보고 ‘복사(Copy)’와 ‘고양이(Cat)’이라는 단어를 더해 '카피캣(Copycat)'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인데요. 내가 겪은 바로는 고양이의 이러한 사냥기술은 본능이고,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DNA 속에 내재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미와 바로 떨어져 인간과 살아온 ‘홍이’의 사냥동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미한테 배운 것이라곤 핥는 것 밖에 없었을 텐데 저 본능적인 하악질, 고공 거취 본능, 사냥 기술 등은 어떻게 갖춘 것일까요?
샴은 독립심이 강한 고양이라기엔 무척 친화력이 강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경계심이 적고, 대체적으로 온순하고 영리하며 느긋한 성격입니다. 천성적으로 사람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우리 식구 중에 작은아이를 가장 좋아해서 현관키 누르는 소리에 총알같이 마중을 나갑니다. 다른 식구들이 질투하게 만드는 장면이지요. 졸졸 따라다니거나 따라오길 원하며 얼굴을 사람의 몸 특히 발이나 손에 비비는 등 애정표현도 적극적입니다. 무릎 위에 올라오거나 침대 위에 올라와서 집사 옆에서 자려하고, 호기심이 무척 강해서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샴 고양이의 가장 큰 특성은 특유의 울음소리라고 합니다. 우리 홍이의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내서 보호자의 관심을 끌거나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배변 전후, 새벽에 배고플 때, 심심할 때,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 약 올리면 그것이 싫어서, 저 혼자 시끄럽게... 의성어로 흉내낼 수 없는 소리들. 어느날엔가는 가족간에 언성이 높아지자 마치 중간에서 말리는 것처럼 어디선가 나와 냥냥거리며 가로서더군요. 큰 목소리가 지속되자 숨어버렸지만... 아, 얘 때문에 싸움도 못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꼬리를 만지면 힘차게 털어대는데 이것이 딱히 싫어서라기보다 장난하는 느낌이 듭니다. 꼬리로 표현하는 것이 많은데 밥 먹을 때나 먹을 것을 요구할 때 곧추세우고 먹거나 걷습니다. 집안 곳곳에 볼을 비비고 꼬리를 세워 감아가며 확인 작업을 합니다. 가끔 깜짝 놀라거나 하면 꼬리털이 곤두서서 방망이처럼 커지고 몸을 낮추어 도사리기도 합니다.
자주 엉덩이를 토닥여주는데 한동안 두드리면 좋아라 격렬한 발길질을 하고 아프지 않을 만큼 손을 깨뭅니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 볼장 다 봤다는 듯 뒤도 안 보고 돌아서 가버립니다. 등과 이마, 턱 등을 가볍게 쓸어주면 그릉그릉 진동소리를 냅니다. 까칠한 혓바닥으로 손을 핥기도 하고, 아주 편안할 때는 긴장을 풀고 아예 눈을 감고 머리를 바닥에 기댑니다. 어느 때는 슬그머니 제가 먼저 다가와 코나 볼을 내 얼굴에 갖다 대기도 합니다. 배를 쓰다듬는 것을 싫어한다는데 거부반응이 없습니다. 발을 만지면 일단 빼지만 재차 시도하면 허용하곤 합니다. 코를 만지는 것은 괜찮지만 입을 만지는 것은 확실하게 얼굴을 돌려 피합니다.
눈을 맞추는 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여 피한다지만 가끔씩 똑바로 마주 보기도 합니다. 때로는 두 발을 모으고 엎드린 채 식빵이 되어 사람을 바라보며 관찰합니다. TV를 보다가 슬쩍 바라보면 나와 눈이 마주칠 때가 가끔 있어요. 고양이에게 표정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눈동자의 크기가 빛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데다가 흰자위가 넓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뭔가 공격해야 할 물건을 앞두고는 눈동자가 흰자위를 덮을 만큼 크고 동그래집니다. 자못 심각하지만 너무나 귀여운 순간입니다. 옆에서 보면 말갛고 투명한 망막이 튀어나와 있는데 고양이의 시각은 아주 작은 움직임도 포착할 만큼 뛰어나다고 합니다. 특히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에도 사물을 볼 수 있는 야간시력이 발달해 있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 마주하는 고양이의 반짝이는 눈빛은 신비롭습니다.
물이 흥건한 곳이라도 발을 털어가면서 호기심에 찾아들어가지만 목욕은 싫어해서 도망 다닙니다. 따뜻한 물로 푹 적셔주면 좀 적응하는 것 같아서 처음 몇 년간은 두세 달에 한 번꼴로 목욕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사실 추위에 약해서 신속하게 털을 말리는 것이 씻기는 것보다 큰 일이긴 합니다. 어느 방송에서 집안에서 기르는 고양이는 자주 씻길 필요가 없다고 해서 그 후론 털이 푸석해지지 않으면 목욕을 미루고 있습니다. 대신 빗질이나 테이프클리너로 털 고르기를 하는데, 꼼짝 않고 누워 그릉거리는 걸 보면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가려운 등을 비벼대는 것인지 가끔 베란다 바닥에 뒹굴어 대기도 하고, 아크로바틱 한 자세로 온몸을 혀로 정성스럽게 핥기도 합니다. 고양이는 그루밍을 통해 제 몸을 깨끗하게 관리한다고 하지만 저 정도로 해서 깨끗해질까 괜히 노파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고양이의 후각은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까지 감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열흘에서 보름씩 떨어져 지내다가 만나도 낯설어하지 않고 발밑에 와서 잠드는 것은 그런 능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나를 제 편으로 기억해 주는 동물이(인간을 포함해서)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생각해 봅니다.
묘연(猫緣)
'홍이'에게 우리는 어떤 가족일까, 또 우리에게 '홍이'는 어떤 존재일까요? 어쩌면 나보다 다른 식구들의 애정이 더 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겐 동생이고 아기 같은 동물이어서 보호해 주고 사랑해주어야 할 존재인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선 눈치 볼 필요 없는 홍이가 부모보다 더 깊이 연결된 교감 대상일지도 모릅니다.
고양이의 매력은 이런 것 아닌가 싶어요. 적당히 떨어져 타인에 무관심하지만 외로워 보이지 않는 시크함. 너무 가깝게 있는 것은 싫어하지만 좋으면 스스로 다가가는 주관적인 태도. 다분히 자기중심적이지만 어쨌든 사람에게 위협적이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평화주의. 게다가 하루종일 자느라 사람을 성가시게 하지않는 배려심까지. 뭐, 우리가 고양이를 부러워하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도시에 있을 때는 아파트를 배회하는 초췌한 길냥이를 보며 '홍이'가 주인을 잘 만나 호강하는 거라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이곳 시골에 와서 곰곰히 떠올려보니 오히려 우리가 '홍이'를 만난 덕분에 웃음도 대화도 안정감도 더 많아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니 "얼마나 주고 받았가"를 따지는 내가 한 생명을 거둘 자격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시골 마당을 거니는 고양이들을 볼 때는 녀석의 야성을 가로막고 집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사실 어느 쪽이든 그 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저 울음과 꼬리짓 같은 몸짓에 의존해서 유추할 뿐이죠. 고양이로 살아보지 않았는데 그 유추는 또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요? 어느 전문가의 얘기가 자주 떠오릅니다. "애정을 담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라"고. "반려묘는 그 감정을 그대로 느낀다"고. 그런데 사실 녀석의 사진만 보아도 미소가 번집니다. 진심을 담아 전합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어만 주길 바란다고.
《 봄은 고양이로다 》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香氣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生氣 [생기]가 뛰놀아라.
〈金星 [금성] 1924. 5 이장희〉
[참고] 고양이 역사가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기사
[참고] 고양이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는 훌륭한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