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유일한 정답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당신은 어느 단계에 놓일까?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2004)는 임종 연구분야의 개척자로 <죽음과 임종에 관하여>( On Death and Dying, 1969)라는 저술에서 슬픔의 5 단계( five stages of grief) 이론을 발표했다. 죽어가는 수백 명의 말기 환자들에 대한 임상연구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심리적 과정이 5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첫째, 충격과 부정(Shock and Denial)이다.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고 믿지 않으려 한다. 또 진단이 잘못되었거나 그 밖에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분노(Anger)의 단계다. 죽음을 확인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단계로 ‘왜 내가 죽어야 하는가?’라는 반응을 보인다. 신을 원망하고 운명을 저주하고 가족, 친구, 의사, 병원 등 주위 상황에 대해서 화를 낸다.
셋째, 타협(Bargaining)의 단계다. 신, 의사, 가족 등과 타협하려고 한다. ‘내가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종교 단체 등에 헌금을 하거나 마음속으로 다짐과 약속을 한다.
넷째, 우울(Depression)의 단계다.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에 우울해하고 위축되며 자살도 고려한다.
다섯째, 수용(Acceptance)의 단계다. 죽음을 받아들인다.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단계다. 극도로 지치고 쇠약해진 상태이다.
뇌졸중으로 투병 중이던 72세에 한 인터뷰에서 '퀴블러-로스'는 의외의 답변을 한다.
“병들어 휠체어에 의지하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지금, 당신의 연구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나요?”
“그것은 시간과 돈 낭비였습니다. 도움이 된 것이 있다면 심한 겁쟁이가 되지 않게 된 정도입니다.”
그녀는 죽음의 과정을 연구한 사람답지 않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병든 육체를 주체하지 못했다. 인내하기보다는 자신의 비참함을 드러내고 독설로 신을 비판하면서 힘겨운 9년의 투병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5단계 이론이 말기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좋은 모델인 것은 맞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마다 태도나 상황이 다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퀴블러-로스'에 비하면 내 어머니는 무척 담담했다.
죽음을 지켜보다
“흉수가 차오르니 물 마시는 것도 힘들다. 목 넘김이 힘드니 ‘물만 벌컥벌컥 마셔도 좋겠다’고 한다. 알약을 가루약으로 바꾸어준 것에 고맙다는 말이 바로 나올 정도다. 복수가 찼을 때도 숨 쉬기 힘들었다. ‘숨 막히는 고통’을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다. 의사에게 살려달라는 말도 몇 번 했다. 먹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크다. 입맛이 없을뿐더러 먹으면 속이 거북하고 안 먹으면 속이 쓰리다.
처음 며칠은 침대옆 변기를 썼지만 이젠 그냥 기저귀에 배설한다. 몸에서 냄새가 나지만 씻는 것도 귀찮다. 비록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 젖은 수건으로 이따금 등을 닦아줄 때는 미안하지만 개운하고 고맙다.
잠을 자는 듯 보이지만 눈만 감고 있을 뿐이다. 가끔 입 벌리고 소리 내어 잘 때도 있지만 드물다. 밤엔 수면제를 쓰지만 푹 잘 잔 것 같지 않다. 외려 종일 누워있다 보니 허리가 배긴다. 하지만 십 분만 앉아있어도 힘들기에 또다시 눕게 된다. 가끔 모로 눕기도 하는데 혼자서 할 수 없다. 갈증과 두통도 심하다.”
돌아가시기 이십여 일 전 어머니의 상태를 기록한 글이다. 먹고 마시지 못하는 괴로움, 숨 못 쉬고 잠 못 자는 고통과 배설을 통제 못하는 비참함을, 겪어보지 않은 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 몸을 닦도록 해야 하는 상황에서 느낄 심경은 짐작하기 어렵다. 섬망의 순간마다 머릿속 기억과 현실의 자각은 잠깐씩 날아가고 눈빛은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깝다.
말기암 진단 후 복수가 차올라 천자(穿刺)하고 빼내느라 응급실을 드나들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장례절차와 봉안당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고맙다”라고 얘기하실 때는 덤덤히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집 안 화장실에서 쓰러지셨다. 다친 머리를 꿰매느라 응급실에 가면서부터 호스피스 병원에 모셨다. 응급상황에 대처할 방법이 없어 두려움이 앞섰기에 입원을 서둘렀다. 그리고 한 달가량 호스피스 병동에서 어머니를 간병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회진하던 의사를 붙잡았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그때 눈물 나도록 절절히 깨달았다. 산 사람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정을 절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그 마음 아는 사람은 모두 죽었고 그러니 어차피 아무도 모를 수밖에.
그렇게 일흔일곱 번째의 여름을 다 보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산 자의 마음
호스피스 병원은 개원한 지 5년 된 신설 대학병원이어서 모든 시설이 쾌적했다. 무엇보다 직장에서 가까워 출퇴근 전후로 간병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간호사와 간병인이 24시간 상주했지만 늘 불안했고,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아야 마음이 편했다. 지켜드리지 못한 죄책감,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이것만 남았으니까. 그리고 임종의 순간이 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담당 주치의가 와서 기도를 해주었다. 그때는 잘 몰랐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운이 따른 “좋은 죽음”인지를.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마음껏 울며 애도하는 것은 어려웠다. 한편 장례식은 바쁘게 치러졌다. 이른바 절차라는 것이 슬픔에 앞서있었다. 장남인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병원, 장례식장, 화장터의 직원들과 마주하고 차분하게 직장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상주로서 조문을 받고 응대하느라 술이 많이 들어갔다.
가끔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내 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러면 마음 놓고 크게 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늘 곁에 사람들이 있었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 구겨진 내 모습이 신경 쓰인 때문이다.
산 자에게나 죽은 자에게나 죽음은 체험되지 않고 말하여지지 않는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죽음은 전수되지 않고, 모든 보편적 죽음은 개별적이다. 산 자들은 남의 집에 온 손님처럼 죽은 자를 문상했고, 장례식장마다 너나없이 죽어야 하는 운명 앞에서 죽음은 타자화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삶은 가볍지 않다 - 김훈>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난 뒤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혼자가 되었지만 가족과 직장 속에선 혼자가 아니었고, 혼자 있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만 마땅한 곳도 없었다. 내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른 채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감정을 묻으려 애썼던 것 같다.
이제 3년도 훌쩍 넘었다. 가끔씩 뒤늦게 도착한 마음이 벌컥 문을 열 때가 있다. 오랜 기억과 맞물린 아쉬움과 뒤늦은 이해, 되새겨보는 그날의 표정, 아직도 꺼낼 수 없는 그런 마음들이 방심한 순간 느닷없이 목구멍에 걸린다. 차라리 그때 시원하게 울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뒤늦게 차곡차곡 오는 슬픈 감정은 그때 쏟아내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2019년의 좋은 죽음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호스피스 병원을 이용할 수는 없다.
의사들조차 호스피스 시설을 가장 선호하는 임종 장소로 꼽지만, 법이 정하는 말기 환자 요건에 해당되어야만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AIDS,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COPD, 만성 간경화 이렇게 4개 질병군뿐이다. 그 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질환으로 만성호흡부전도 경우에 따라 가능하다. 건강보험 재정과 허가된 의료 전문기관 수의 한계로 다른 말기 질환이나 고령의 환자들은 공식적인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호스피스 시설은 주로 대학병원, 국공립병원과 가톨릭병원 그밖에 소수 사립병원에 설치되어 있다. 지역별로 서울 21, 경기 24, 인천 5로 수도권에 50개소(46.7%), 부산 8, 대구 9, 울산 3, 경북 5, 경남 6으로 영남지역에 31개소(29%), 광주 3, 전북 6, 전남 4로 호남권에 13개소(12.1%), 그밖에 대전 3, 충북 3, 충남 3으로 충청권 9개소 , 강원 3개소, 제주 1개소, 총 107개소이며, 병상수는 약 1,570여 개(병원당 평균 약 15개)이다. 65세 이상 노령인구(900만 명) 기준, 병상수는 5,700명당 1개다.
요건에 맞는 사람일지라도 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곳에 문의를 하여 대기를 해놓고 자리가 날 경우 입원을 하게 된다. 기존 환자의 임종 후에 자리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기본적으로 병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기한으로 입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보통 1달, 길게는 2달 정도만 입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간이 경과하면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한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어떤 죽음을 원하는가?' 설문조사를 해보니 고통 없는 죽음을 1순위로 꼽았다. 그리고 가족들이 죽음의 순간에 함께하기를 원했고,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가급적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호스피스 진료는 목숨의 연명보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질을 먼저 생각한다. 통증완화 치료를 통해 환자와 보호자 모두 충격과 회한을 조금씩 덜어내 가며 마지막 길을 지킬 수 있게 해 준다. 호스피스 의료진은 죽기 전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는 것을 저주받은 삶, 삶의 의미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끔찍함으로 표현한다.
보호자로서 병원 입원을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통증, 호흡 곤란 등 응급상황에 놓였을 때 집에서는 손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방문 호스피스가 있지만 응급처치가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후일의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병원에서의 임종을 더욱 선호한다. 장례를 위해 의사의 사망진단과 사망진단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좋은 죽음'을 위해선 운과 노력,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가족의 배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환자의 입장을 경청하고 배려해 줄 좋은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도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집, 요양기관, 병원을 오가며 오랜 기간 고통 속에 '죽지 못해 살아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혹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작성하지 못한 경우엔 중환자실에서 기계호흡장치를 달고 누워 있을 수도 있다.
죽음에 대한 인식
죽음은 거의 모든 비극의 결말이다. 인생의 슬픔과 비참함을 제재로 하고 주인공의 파멸, 패배, 죽음 따위의 불행한 결말을 갖는 극형식. 비극의 사전적 정의로 보아도 주인공이 죽는 결말을 가진 희곡을 비극이라고 한다. 우리는 죽음을 불행한 결말로 인식해 왔다. 그러면 모든 인생은 비극인가?
현대인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죽음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으로 이해된다. 준비하고 맞이하는 주체적 사건이 아닌, 강도처럼 갑자기 엄습하는 재난과 같은 사태로 체험되고 있다. 미디어는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거의 매일 보여준다. 뉴스만 보더라도 비명횡사(非命橫死)가 다반사다.
사람들은 패배와 재난을 회피하지만, 죽음은 일상의 삶에서 항상 어떤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흔히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이야기한다.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잊지 마라' 등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문구이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 때 삶이 더 가치가 있어진다는 말이 SNS에 회자되는 것을 보면 그래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항상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에선 ‘100세 시대’를 얘기한다. 자주 듣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도 오래 살 수 있다고 믿게 된 듯하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은 알지만 아직 임박한 문제가 아니기에 위협적이지 않다. 죽음의 확실성은 알지만 ‘당장은 아니’라고 믿으면서 당면한 일상에 몰두한다. 언제 삶을 내려놓고 죽음을 수긍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계선은 구시대의 이야기다.
과연 오래 사는 것이 다행이고 살아있는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기대수명이 80을 넘어섰지만 건강 수명이 65세 전후인 것을 감안하면 15년 이상 병원을 들락거리거나 병마와 싸우느라 삶의 질이 떨어진 노후를 보내게 된다. 또 비혼과 1인가구의 증가,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 등으로 인해 혼자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아마도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싶다).
가볍고 경쾌한 죽음
아쉬움 없이 잘 살다가 고통과 두려움 없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 우린 어떤 결말을 기대하고 있을까? 또 그런 바람대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맞이하고 있을까?
핵가족화 이후 가족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 졌다. 더구나 1980년대 들어 건강보험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면서 병원 문턱이 낮아지고 환자의 치료와 임종은 가정을 떠나게 됐다. 평범한 죽음에서 중요한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까지의 과정이다. 죽음은 체험되지 않으나 죽기 전까지의 과정은 간접 체험과 전수가 가능하다. 하지만 병원은 커져가는데 죽음의 문턱에서 어떤 고통과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배울 기회는 사라지고 있다.
우연히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노트>를 보았다.
40여 년 동안 샐러리맨으로서 일에 충실했던 스나다 도모아키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위암 5기 판정을 받는다. 그는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서 좌절하고 한없이 슬퍼하기보다는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꼼꼼한 그의 성격대로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장례 절차, 장례식에 초청할 사람들 명단, 가족들에게 남기는 유언 등을 기입한 ‘엔딩 노트’를 작성하며 죽음까지의 남은 시간을 보낸다.
《엔딩 노트》(Ending Note)는 2011년에 개봉한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제작을 맡아, 이와이 슌지 조감독 출신인 스나다 마미가 자신의 아버지이자 주인공인 스나다 도모아키를 직접 촬영하여 기록한 작품이다. 국내에는 2012년 11월 29일 개봉하였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나'라고 할 만큼 유머러스한 데다 경이로운 활력과 죽기 전까지 잃지 않는 웃음이 꽤나 인상 깊었다. 편집과 통증완화 치료를 감안하더라도 부정과 분노, 우울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내내 발견할 수 없었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주도적으로 정리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죽음을 무겁게 느끼지 않도록 해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겨울에 아버지의 부음을 받았다.
아버지와 별거한 지는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니까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요양원 지인의 연락을 받아 멀리 떨어진 경남 산청까지 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충격보다 당황의 감정이 앞섰다. 오랜 기간 얼굴을 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긴 시간 어머니의 원망이 투영되어 애도의 마음도 그리 크지 않았다. "남은 가족이 없다면 마치 유실물센터의 물건처럼 치워지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몇 달 전 이미 치러 본 장례였기에 절차적인 부분에 충실했다. 장례라 해봐야 생활 근거지와 멀다는 핑계로 조문객을 맞은 것도 아니어서 시신을 염하고, 화장장을 알아본 후 납골당에 안치한 것이 전부였다. 기거하던 집에는 정리할 유품도 많지 않았다. 의식주를 위한 기본 물품 외엔 휴대폰과 오래된 자동차가 전부였다. 그것이 남은 자식들을 위한 아버지의 배려였을까? 생전에 없던 친절로 오해하는 것이 편하다.
돌아오는 길에 내 장례도 이렇게 간단히 하면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조문객들이 시신을 마주하지 않는 우리의 장례문화가 맘에 들지 않았었다. 사진에 절하고 상주들을 만나 부조금을 전하는 것이 무슨 조문인가 싶었다. 산 자에 대한 예의일 뿐. 잠든 얼굴 보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장례에 초대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면 족하지 싶었다. 어차피 잊히는 사람인 마당에 납골당보다는 나무나 호수에 화장한 재를 뿌리는 정도면 좋겠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앞선 사람들은 고통 없이, 가족들과 함께 하며,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고, 최대한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나는 가급적 스스로 죽기를 바라지만 여의치 않다면 병들어 죽는 것을 원한다. 고통스러운 최후는 사양하며 가족들의 배웅 속에 간소한 마무리를 당부하고 싶다. 또한 모두에게 잊히기 쉽도록 남기는 것 없이 가고 싶다.
고령의 노인이 고통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축복이다.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안락한 죽음은 기력이 다했을 때 스스로 곡기를 끊는 것이다. 스캇니어링 등 많은 이들이 이 방법을 택한 것은 고통 없이 맑은 정신으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고된 죽음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큰 폐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 편안한 마무리를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일반적인 죽음과 격을 달리 한다.
하지만 그런 죽음은 일반적이지 않다. 외적요인이 아니라 고령과 병으로 죽는 것은 삶의 종착점에 안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차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삶을 마무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선택받은 자에게만 그 시간이 허락된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하게 몸관리를 잘 한 사람이라도 죽음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인생의 막바지에 고통스러운 며칠간의 삶의 연장보다 고통 없는 마무리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죽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호스피스 병원의 확충과 완화의료 대상의 확대, 보다 유연하고 환자 지향적인 통증완화 치료가 시급하다. 호스피스 시설에 들어갈 조건이 된다면 별도의 연명의료의향서는 필요치 않도록 해야 한다. 그밖에 다른 말기 질환이나 고령의 의사소통 불능환자들도 마찬가지다.
고통스럽게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남은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다. 이것이 때로는 고인을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폐를 끼치지 않고 가족의 배웅을 받기 위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절대 거부한다. 장례 또한 번거로운 일이다. 고통 없이 가족이 보는 가운데 생을 마쳤다면 장례는 나에게 있어 아무 의미 없는 것일 뿐이다. (내가 정해준 대로) 가급적 빨리 저렴한 비용으로 장례 후 화장하여 한 줌의 재만 호수에 뿌려주면 좋겠다.
병에 걸리면 집보다는 병원에 입원하여 마지막까지 치료를 받고 사망 후엔 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한 후 화장하는 것이 도시의 죽음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판에 박힌 장례문화에도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 다양한 선택지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1인 가구, 비혼, 무자녀 가구, 독거노인 등이 증가함에 따라 장례 방식도 보다 간소화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 4~10인 규모의 장례식장, 꽃제단을 없애고, 식사 대신 차와 다과, 고인 생전의 추모영상과 음악을 준비하고, 혼자 들어가 울고 얘기할 수 있는 방이 있는 장례식장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