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라린 추억만 남긴 채
'은퇴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는 사랑 노래처럼 감미로웠다. “구애 없이 살 수 있어”, “다른 의미의 일을 하며 살겠어”라고 마음먹게 했다. “도시를 벗어나면, 돈 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라며 나를 어린아이 대하듯 했던 사회에 "안녕”을 던질 용기가 솟았다. 오래전에 사놓은 경기도 여주의 시골집이 막연한 자신감의 배경이었다. 하지만 다소 헐거워진 책임의 굴레를 늦잠으로 만끽하느라 결별은 쉽지 않았다. 은퇴 후에도 몇 달을 차일피일하다가 산지 8년이 된 그 집을 찾았다.
정말로 한참을 찾았다.
쑥이 사람 키만큼 자라 집을 에워싸고 있었다. 쑥대밭이란 말이 완벽히 이해됐다. 마구 뻗은 나뭇가지와 앙칼진 가시덤불, 말라붙은 생활쓰레기가 뒤엉킨 마당은 주인에게 내쳐진 한을 토하듯 진입을 거부했다. 집을 고쳐 주말을 보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천정엔 비가 새고, 담장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며, 집 안은 곰팡이 천지였다. 연탄보일러는 녹슬어 망가졌으며, 뒤뜰 덧댄 지붕은 곧 무너져도 이상 할 것 없었고, 게다가 몸에 해롭다는 슬레이트였다. 동네 이웃분이 오셔서 “겨울에 마당의 수도가 얼어 터져서 내가 계량기를 잠갔어”. 웃으며 얘기했지만 어디 좋아서였겠는가. 마을 입구에 귀곡산장을 만들어 놓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으니 '바로 네 놈이구만' 했을 것이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도 잠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심란함에 얼이 빠졌다.
물론 살 때부터 엉망인 집은 아니었다.
아담한 돌담장을 따라 단풍나무 몇 그루가 예쁘게 자라고, 녹색 지붕과 조약돌로 치장한 외벽이 눈에 띄는 매력적인 집이었다. 처음엔 한 달에 한두 번 가다가 점점 횟수가 줄었다. 마당에 뭔가를 심기도 한 것 같다. 포도였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차로 한 시간 거리임에도 다른 일을 핑계로 다음을 기약하기 일쑤. 청소도, 수리도 해야 하고 동네 사람들과 인사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미루다 보니 차츰 가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내가 그러하니 가족들도 관심 밖이었다. 역시 주말엔 소파가 최적의 휴식처. 게으름은 귀찮음을 낳고, 그것은 외면을 낳고... 차일피일을 찾다가 잊고 살기로 귀착되었다. 그러는 사이 집과 마당은 버림받은 앙갚음을 하고 있었다.
8년간의 무관심과 방치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후에 주말마다 고군분투했지만 상처는 곪을 대로 곪아 큰 차도가 없었다. 시들고 새로 나길 반복했을 마당의 풀과 뒤엉킨 나뭇가지, 쓰레기가 되어버린 낙엽을 치우는데만 한 달 넘게 걸렸다. 지붕을 새로 씌우고 담장을 걷어낸 후 울타리 나무를 심고 주민센터에 의뢰해 창고와 뒷마당의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전주인이 두고 간 세간살이를 전부 폐기하고... 일은 끝이 없었다.
청소는 몸이 힘들면 됐지만 전기공사가 문제였다.
단전된 전기계량기를 새로 개통하려면 전문사업자를 통해야 한전에서 허가를 내준다 했다. 몇 군데 견적을 의뢰했더니 같은 공사인데도 가격이 천차만별 부르는 게 값이었다. 시골이라 업체도 많지 않은 데다 외지인이고 한눈에 봐도 이쪽으로는 무지렁이로 보였을 것이다. 동향의 집이라 오후에는 내부가 어둡고 커피라도 한 잔 끓여 먹으려면 전기가 긴요한 상황. 속이 타들어 갈 즈음 어찌어찌 인근 양평에서 업자를 구해 나름 합리적인 가격으로 시공을 했다. 싸르르 자신감이 살짝 꺾였다.
그래도 빼든 칼.
곰팡이 투성이의 벽지를 뜯어내고 시멘트벽은 페인트를 칠했다. 하지만 패널 벽은 오랜 누수로 곰팡이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있어서 천장과 벽체 일부를 철거했다. 다시 설치하기 위해 석고보드와 목재, 우레탄 폼, 실리콘 등 자재를 사다 놓았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일에 진척은 더뎠다. 샌드위치 패널의 외벽 하단은 녹슬고 삭아서 구멍이 나있고 연탄보일러가 망가져 난방도 어려웠다. 하룻밤이라도 머물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안되었다. 가을이 오고 지지부진한 집수리 작업을 뒤로한 채 오래전부터 계획한 올레길 완주를 위해 한 달간 제주도로 떠났다. 그러다가 겨울로 접어들기 전에 재취업을 하게 되었고, 줄어든 시간만큼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도 점점 식어갔다.
다시 봄이 왔지만 망설임의 시간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 와 멈출 수 없다는 강경파와 혼자 힘으로 벅차다는 타협파의 싸움은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서 치고박았다. 결국 리모델링 업체에 시공을 의뢰했지만 차라리 새로 짓는 게 낫겠다는 위로의 견적을 받았다. 건축사무소를 찾아가 설계를 의뢰하기도 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망치를 들었을 즈음 불쑥 집을 사겠다는 예비전원생활자가 나타났고, 나는 지친 마음을 감춰가며 싼 가격의 매매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패배 선언 없이 비굴하지 않은 포기를 할 수 있게 해 준 매수자에게 감사하며.
최근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가끔씩 본다.
출연자들은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끝까지 해내는 힘을 가진 분들이다. 허술해 보이는 농막일지라도 화면에서 보여주지 못한 과정에 내 개인적 체험이 오버랩되어 박수를 보낸다. 한편 개인적 취향이든 경제적인 이유든 폐가를 리모델링해서 멋진 집으로 만든 사례도 많이 소개된다.
그런데 실패사례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보다 턱없이 많은 돈이 들어가 포기한 사람들, 긴 시간 힘든 노동에 지쳐 때려치운 사람들, 주변의 만류와 핀잔에 힘을 잃고 쓰디쓴 고배를 마신 사람들 말이다. TV나 유튜브에서 소재로 삼지 않아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 푸념인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일 년간의 전원생활 시도는 내게 값진 경험과 많은 교훈을 남겨 주었다.
내 한계와 허상을 명확히 짚어주었다. 마음에 준비도 없이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놓고 보자는 생각은 치기였다. 긍정적인 것은 집을 선택하는 안목이 넓어졌고 아직 미흡하지만 집수리 능력도 조금 늘었다. 겪어 본 사람의 입장에서 5도 2촌 희망자, 특히 나이 든 은퇴자에게 폐가 리모델링이나 자연인의 방식을 권하지 못하겠다.
모든 게 마음먹기 달린 일들은 대개 돈에 얽매이지 않는 경우다. 은퇴 전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금을 좀 더 마련하든가, 열심히 발품을 팔아서 손이 덜 가는 집을 찾는 것이 현명하지 싶다. 집을 구하는 시기도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모른다. 어느 날 나처럼 뽀얗게 콩깍지가 씌어 시골집을 사놓게 되면 빨리 세놓을 곳을 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