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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Nov 17. 2023

문법적 직관의 붕괴(?)

- 문법의 틈새(or 빈틈?)

      (1) 언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음파로 존재하기도 하고 기억의 일부로 존재하기도
          하고. 그런데 기억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에 관한 철학적 논쟁을 차치하고라도 여전히 찝찝한 기운
          이 가시지는 않는 것 같다. 또 다른 존재의 방식이 있을 것만 같다.


      (2) 언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음파로 존재하기도 하고 기억의 일부로 존재하기도
          하고. 그런데 기억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에 관한 철학적 논쟁을 차치하더라도 여전히 찝찝한 기운
          이 가시지는 않는 것 같다. 또 다른 존재의 방식이 있을 것만 같다.



위 (1)과 (2) 중 어느 것이 문법적으로 정확한지 판단할 수 있을까?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화자들이라도 대부분은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다. 둘 다 괜찮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라도'를 뺀 '차치하고'나 '차치하더'는 어색하다. 양보의 기능만 살리자면 '차치해도'로 바꿀 수는 있다. 나의 언어적 습관은 (2)와 같은 '차치하더라도'인데 글을 고치면서 쓰다보니 (1)의 '차치하고라도'가 더 정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맥락이 과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1)이 논리적으로 더 정확한 듯이 보였다. 순간 의심했다.


        '(2)의 '차치하고라도'라는 활용형이 쓰이기는 하는 건가?'

         '뭔가 어색한데...'


이런 경우, '차치하다'에 어떤 어미를 써야하는 지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1)이든 (2)든 의미를 전달하는 데 아무 문제도 없다. 내 직관에 보다 익숙한 표현은 (2)이지만 다시 읽어 보니 (1)이 더 정확할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문제는 (1)의 '차치하고라도'는 평소에 내가 거의 쓰지 않는 활용혐이라는 것. 문장 없이 '차치하고라도'만 들으면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든다. 내 직관은 그렇다. 그런데 위 예를 따져보면 (2)가 먼저 떠오르지만 (1)이 더 적합한 것 같다.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 속에서 처음 나온 표현은 (2)인데 (1)이 더 정확할 것 같은 이유는 뭘까?'

        '대체 가능한 자연스러운 다른 표현을 생각해 보면 '차치하고서'는 괜찮아도 '차치하더서'는 이상하다.'

        '그러면 '차치하고라도'가 더 정확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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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어 화자는 모국어에 대한 직관을 가지고 있다. 문법 연구자는 그런 직관들 중에서 해당 언어권에서 공유되는 직관을 문법으로 기술한다. 만약 모어 화자들이 공유하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현상이 존재한다면 문법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차치하다'와 관련된 나의 직관에 대한 오늘의 경험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어 모어 화자들 중에 (1)과 (2)의 차이를 정확하게 따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게다!!


직관이 붕괴된 것인지 애매해진 것인지 모르지만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서의 언어 능력에는 문법성 판단이 불분명한 직관도 포함되어 있다. 문법성 판단에는 정도성이 관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대체로 문법성은 빈도와 관련이 된다. 그래서 정도성은 스케일적(서열적) 스펙트럼의 양상을 띤다. 그런데 (비록 직관에 의한 것이지만) 정확한 빈도를 알 수 없는 경우, 즉 정도성의 스케일이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언어학적으로 혹은 언어 처리 모델과 관련하여 무엇을 시사할까? 문법 기술에서는 어느 정도까지를 문법의 범주로 볼 것인지가 불분명할 것이고, 인지 능력으로서의 언어 처리에서는 가소성(plasticity)과 발견법(heuristics)을 내포하는 처리 모델을 구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통계 기반의 기존 신경망 모델들은 가소성에는 적합하지만 발견법에는 부적합한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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