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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Mar 24. 2024

한국어 '맛'의 맛

인간의 감각은 다섯 가지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가장 기본이 되는 감각은 시각과 청각이다. 신경과학적으로도 시각과 청각을 처리하는 대뇌 피질 영역 가장 넓다. 다음으로 넓은 대뇌 피질 영역을 차지하는 감각은 촉각인데 중심이랑 뒤쪽 두정엽의 일차 체성 감각 영역(primary somatosensory area)에서 온도, 압력, 통증 등이 처리된다. 마지막은 후각인데 대뇌 피질 영역 중 후각 영역을 특정하지는 못하지만 후각 망울이라는 별도의 신경 조직에서 뇌의 다양한 부분(대뇌, 변연계, 시상하부 등)으로 후각 자극이 전달되어 처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각은 브로드만 43번 피질 영역에서 지각되며 다른 감각 영역의 지각 정보와 연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뇌의 대뇌에서 더 넓은 영역이 관여하는 감각이 더 중요한 감각이라고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연관이 있을 법도 하다.


5가지 감각과 관련된 언어 표현을 보면 재미가 있다. 우선 이들 감각을 대표하는 서술어를 보면,

    시각 - 보다

    청각 - 듣다

    후각 - 맡다

    촉각 - 느끼다

    미각 - 느끼다, 맛보다

정도이다. 시각, 청각은 역시 중요한가 보다. '보다, 듣다'라는 명확한 서술어가 있다. 그 못지 않게 후각도 중요해 보인다. '맡다'라는 명확한 서술어가 있다. 촉각과 미각은 조금 상황이 다르다. 이들 감각에만 국한하는 서술어가 없어 보인다. 논리적으로는 모든 감각에 관련될 수 있는 '느끼다'라는 서술어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시/청/후각이 독자적인 서술어가 있으니만큼 이들 감각과 관련해서는 '느끼다'라는 술어를 잘 사용하지 않으니 촉각(접촉 느낌)이나 미각(맛)을 위한 술어가 '느끼다'인 것처럼 오해하기 십상이다. 한 가지 더 특이한 점은 미각 관련 술어로 떠올릴 수 있는 '맛보다'이다. 시각 술어인 '보다'를 차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시각과의 차이를 보이는 표지로 '맛'이 결합한 형태가 사용되고 있다.


기왕 '맛' 이야기가 나왔으니 5가지 감각의 대상을 통칭하는 개념어가 있는지도 살펴 보면,

    청각 - 소리

    후각 - 냄새

    미각 - 맛

    촉각 - X

    시각 - X

정도이다. 가장 중요한 감각인 시각의 대상을 나타내는 명사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아 보인다. 물질? 우주? (온)누리? 세상? 고유어는 없어 보인다. 촉각도 유사한 것 같다. '감(感)을 느끼다'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으려나? 아무튼 고유어는 없어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점은 '맛'이다. '맛'의 의미는 은유적으로 확장된다. '손맛, 골(goal)맛, 한국맛, 전문적인 맛' 등과 같이 어떤 경험 내지는 본질적인 어떤 속성 등을 표현할 때에도 '맛'이 사용된다. 은유적인 의미 확장을 거친 결과이다.  '소리'는 [요청, 견해] 정도로 확장되고 '냄새'는 [의혹/의심] 정도로 확장되는데 일상에서 사용되는 양상을 보면 빈도나 다양성 면에서 '맛'에 못 미치는 듯하다.


신경과학적으로는 미각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영역이거나 인지 처리에 소요되는 두뇌 자원이 적어 보일지 모르지만, 언어학적으로 보자면 미각은 매우 중요한 감각일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한국어의 경우에는 신경생물학적 실재와 언어 사이에(사이의?) 도상성(iconicity)이 떨어지는 것일까?


'맛' 요게 색다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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