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삶의 자유를 위한 성찰

by 콜랑

성찰적 삶을 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찌보면 주어진 하루를 버텨내기도 벅찰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인생을 성찰하여 '지학,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의 6과정을 정리한 바 있는데 '지학'부터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인간은 5감 중에 시각에 가장 의존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살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하여 온갖 욕망이 생긴다. 눈은 밖으로만 향하기 때문에 나보다는 남을 보게 되고 그래서 늘 비교하게 된다. 눈의 욕망인지 마음의 욕망인지, 이 욕망 때문에 삶은 점정 더 성찰하기 어려워진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나를 성찰하도록 눈을 뒤집어 뜰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눈을 뒤집어 뜰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눈을 뒤집어 뜨면 세상도 뒤집어져 보이지 않을까? 나이가 들면서 세상이 조금씩 뒤집어져 보이기 시작한다. 비교하고 평가해서 남보다 나를 높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내가 함께 하는 그 자체가 좋은 일임을 조금씩 깨닫게 되면서 세상이 조금씩 뒤집어지려고 한다. 내가 남보다 안락하고 좋은 처지에 있어서도 아니고 내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불만이 없는 상태로 살고 있어서도 아니다. 불만이 없는 상태로 살아 있음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세상이 조금씩 뒤집어져 보이는 듯하다.


젊어서는 힘이나 학벌을 쫓고, 후에는 부와 권력을 쫓고, 노년에는 명예를 쫓는다. 결국 죽을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게 되면 비로소 이름 석자 후세에 남기는 게 고작임에 순응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서 여기 저기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 조만간 나 역시 그리 될 것임을 직감한다. 지식, 재산, 권력 이 모든 것들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한계를 인식하게 될 즈음이 되서야 그나마 좋은 이름이나 남기기를 바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것을 쫓는 삶이 밖으로만 향하는 내 눈 때문은 아닐까? 눈을 뒤집어 뜨고 나를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어렴풋이 보이는 게 하나 있다. 내가 살아 있는 이 순간 나와 내 주변이 평안함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평안함에 감사하면서 소박하게 그 삶을 즐기는 삶의 태도야말로 불필요한 눈의 욕망이 내 속에 자라지 않게 해 준다는 사실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그런 느낌이 들 때면 여태 추구하던 것들이 사실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실은 스스로를 옥죄는 욕망이 낳은 집착이었음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다. 소박한 내 삶으로 인해 내가 평안함에 감사하게 되면서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다. 기본적인 의식주에 만족할 줄 알고,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주변과 함께 평안할 수 있음에 만족감이 더해감을 깨달으면 더 무리할 일도 없고 주변에 강요할 것도 없지 않을까?


아직은 소박한 삶의 만족감보다 눈의 욕망이 훨씬 강하다. 자평하건대, 스스로가 온전히 자유로움을 느끼는 경지는 아니다. 삶의 평안이 있음을 알겠으되 그런 삶이 지속될 수 있을지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서 그럴까? 그런 걱정이 드는만큼 내 눈이 욕망이 더 강하다는 뜻이겠지... 조금 더 성찰하고 조금 자유로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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