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감성 - 조용하지만 무너져 있는 마음들

일본의 감정 표현은 왜 이렇게 조심스러운가

by KOSAKA

브런치스토리의 키워드 4

4. 감성: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
키워드 : 감정 표현, 내면, 공감, 거리
주요내용 :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조용한 사회일수록 감정은 더 섬세하게 흐릅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구조를 들여다봅니다.


오사카에서 지내며 가장 자주 마주치는 감정은 오히려 ‘표현되지 않는 감정’이다. 이 도시는 다정하고 정중하지만,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기는 어렵다. 일본 특유의 정중함은 오사카에서도 여전하다. 웃으며 인사하고,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대화를 할 때에도 말을 고르고 줄이는 습관이 깊다. 하지만 그 조심스러움이 쌓이다 보면, 정서적인 거리감이 점점 더 넓어진다. 관계는 얇지 않지만, 깊지도 않다. 처음엔 무던해 보였던 말투가 나중엔 침묵처럼 느껴지고, 처음엔 친절하게만 여겨졌던 대응이 나중엔 고립감으로 남기도 한다. 감정은 줄이고, 설명은 생략하고, 기분은 정리된 듯 숨긴 채로 일상이 흘러간다. 그러다 문득, 이 조용함 속에 마음을 둘 곳이 없다는 감각이 밀려온다.


일본 사회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정착된 일종의 기술이다.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스스로 다독이고 정리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은 단지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에서도 적용된다. 슬퍼도 조용히, 화가 나도 침묵으로, 기뻐도 너무 티 나지 않게. 이런 정서의 습관은 개인의 성향을 넘어서 공동체가 기대하는 역할이 되었다. 그 결과 일본 사람들은 감정을 감추는 데 능숙해졌다.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참거나 무시하거나 넘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결국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남아 축적되는 결과를 낳는다.


오사카는 일본 도시 중에서도 비교적 ‘정 많은 곳’이라는 평을 듣는다. 간사이 방언은 부드럽고 유머가 섞여 있으며, 상점의 점원들도 거리낌 없이 말을 건넨다. 하지만 이런 외면적 친밀함과 별개로, 이곳 역시 정서적으로는 침묵에 익숙한 도시다. 가까워지는 데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감정을 공유하기보단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는 쪽을 택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정서적 친밀감이 빠르게 형성되지 않아도 사람들은 별로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도시의 감정 감각이 기본적으로 ‘내면에 둔 채로 유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혼네’와 ‘타테마에’라는 유명한 개념이 있다. 속마음과 겉마음을 구분하고, 겉으로는 무난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실제 감정은 말하지 않는 문화다. 이런 이중 구조는 어느새 생활의 기본값이 되어 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고, 갈등은 드러내기보다는 조용히 사라지는 쪽을 택한다. 심지어 그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은 점점 자신의 혼네조차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게 된다.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른다기보다는, 감정을 ‘말하지 않고도 사는 방식’이 너무 오랫동안 정착된 탓이다.


문제는 그 침묵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쌓일 때다. 사회적 갈등이 폭력으로 드러나기보다는, 조용한 퇴장으로 귀결되는 장면들을 우리는 일본의 고독사, 자살률, 과로사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상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고, 겉으로는 정상적인 루틴을 유지하던 사람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끝내 스스로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감정을 숨기고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결과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선택한 길이지만, 결국 자신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사람들이 감정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감정을 세심하게 느끼고, 신중하게 다루는 데 익숙하다. 차라리 말보다는 글이나 예술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능하다. 문학, 영화, 애니메이션 속에서 일본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감정을 묘사해낸다. 애니메이션의 정지된 장면, 시선의 방향, 말끝의 여운까지도 모두 감정의 일부다. 현실에서 직접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대신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상의 언어로 옮겨지는 데는 또 다른 용기와 시간, 무엇보다 문화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오사카에선 감정을 말로 드러내기보다는, 몸짓과 조용한 배려로 전달한다. 그것은 느리고 조심스럽지만, 진심이 담겨 있을 때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다만 외부인인 내가 그것을 처음부터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이해하기까지 더 많은 관찰이 필요했다. 지금은 그 침묵 안에 묻힌 마음들을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는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보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사회는 한편으론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외롭다. 감정을 나누지 않고 유지하는 데 들이는 에너지는 크고, 그 유지가 무너졌을 때 대체할 언어가 없다. 말하지 않는 사회는 듣는 법도 잊는다. 오사카 사람들은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지키기 위해 말을 아낀다. 그 정중한 거리감은 때로는 이해심 깊은 태도처럼 보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아주 조용한 절망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그런 침묵을 오래 배워왔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견디는 법을 익혔다. 그것이 오사카에서 감정을 다룬다는 것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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