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향기를 복원해 하루의 공기를 바꾸는 브런치북
이 글은 브런치 작가 이숲오 eSOOPo님의 브런치북 <언어의 냄새>에 대한 저의 짧은 서평입니다.
이 브런치북 <언어의 냄새>는 언어를 설명의 도구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말이 건네지는 순간의 공기, 화자와 청자의 거리, 배려와 힘의 미세한 선을 더듬어, 언어를 하나의 감각으로 되돌려 보여줍니다. 덕분에 독자들은 문장을 읽는 동시에 “말의 분위기”를 맡게 되고, 그 향이 관계의 온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됩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문장의 태도입니다. 결론을 서둘러 단정하지 않고, 판단의 여지를 독자들에게 남겨둡니다. 그래서 이 글들을 읽고 나면 마음이 먼저 잔잔해지고, 그 다음에 생각이 또렷해집니다. 친절을 빙자한 권위, 익숙함에 숨어 있는 무심함 같은 것들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우리는 같은 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건네는 연습을 해보고 싶어집니다.
스무 편에 이르는 글들은 크고 거창한 이론보다 일상의 장면에서 출발합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괜찮아요”처럼 너무 익숙해져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던 표현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이 많습니다.
낡은 습관처럼 흘러나오던 말들이 사실은 상대의 자율성을 조금씩 좁혀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반대로 서툴더라도 선택을 남겨두는 말투가 얼마나 큰 여지를 열어주는지에 대한 감각이 또렷해집니다.
작가는 말의 내용보다 “건네는 방식”이 관계를 살린다는 믿음을 일관되게 보여주십니다. 목소리의 두께, 멈춤의 길이, 시선의 높낮이 같은 비언어적 요소까지 시야에 들어오면, 우리는 같은 문장을 더 다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 다정함은 훈계가 아니라 “함께 연습하자”는 제안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책은 기술서가 아니라 태도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읽다 보면 회의에서, 카톡 대화창에서, 가족과의 저녁 식탁에서 내가 자주 쓰는 단어와 말투를 떠올리게 됩니다. “괜찮아요”라는 말이 정말로 괜찮음을 전했는지, 아니면 빨리 대화를 끝내고 싶은 마음을 둘러싼 포장에 그치지 않았는지 되묻게 됩니다. 작가의 문장은 과장된 수사 없이도 말의 물성을 정확히 짚어 주시고, 독자에게 방어심 대신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연재의 또 다른 미덕은 ‘여백’입니다. 설명으로 빽빽하게 채우지 않고,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끼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넉넉히 남겨둡니다. 그 여백 덕분에 각 글은 한 편의 강의가 아니라 함께 걷는 산책처럼 느껴집니다. 독자는 작가의 뒤를 따라가다가도 어느 순간 자기만의 길로 새어 나가게 됩니다. 그 길 위에서 각자의 관계와 말버릇이 차분히 점검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실천 몇 가지를 마음에 적었습니다. 오늘 단 한 번이라도 질문형 친절을 제안형 친절로 바꿔 보기. “괜찮으시다면 이렇게 해보실래요?” 하고, 상대의 자리를 반 발만 넓혀 보기. 회의에서 한 번은 의도적으로 침묵의 길이를 늘려 보기. 채팅창에서 느낌표 하나를 줄이고 쉼표 하나를 늘려 보기. 이 소소한 변화가 얼마나 큰 온도차를 만드는지, 〈언어의 냄새〉가 은은하게 증명합니다.
스무 편을 모두 읽고 나면, 언어는 더 이상 정보의 운반 수단이 아닙니다. 말은 서로의 하루를 지지하는 바람이고, 관계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공기입니다. 작가가 보여준 신뢰의 문장들은 ‘이기는 대화’의 기술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말’의 태도입니다. 말의 향기가 바뀌면 하루의 공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설득이 아니라 체험으로 남습니다.
이 브런치북은 상대의 틈을 겨냥하는 요령 대신, 서로의 자리를 지켜 주는 문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어의 냄새를 되찾는 일은 곧 사람의 자리를 지켜 주는 일임을, 이 책은 나긋하지만 단단하게 일러줍니다. 다음 대화에서 우리가 고를 단어가 한 글자쯤 달라질 수 있다면, 그 변화의 출발점에 〈언어의 냄새〉가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