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브런치 작가 EveningDriver님의 <두개의 삶 : 밤을 달린다>에 대한 짧은 서평입니다.
낮엔 회사원, 밤엔 배달라이더로 ‘두 개의 삶’을 오가며 도시의 사람·냄새·길·날씨를 관찰하고, 매회 작은 에피소드에서 보편 감정을 길어 올리는 관찰 에세이 연재입니다. 현대인의 고단한 이중 생활을 기록하고 있지만, 고생담이나 영웅담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단가가 어떻게 바뀌는지, 어떤 동선이 시간을 잡아먹는지, 멀티 주문이 왜 판단을 흐리게 하는지 같은 구체가 앞섭니다. 도시를 규정하는 거대한 말 대신, 손에 잡히는 장면과 수치를 먼저 꺼내는 태도에서 신뢰를 느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주소와 취향이 꼭 맞물리지 않는다’는 관찰입니다. 동네의 이미지와 실제 주문 품목이 어긋나는 순간들—오래된 빌라에서 유기농 과일세트가 나오고, 좋은 동네에서 기름진 분식이 나오는 장면—이 편견을 단숨에 무력화합니다. 글이 특정 계층을 비판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눈앞에서 본 사실을 차분히 전달하는 점이 좋았습니다.
실수의 기록도 인상적입니다. 멀티 배달에서 생긴 오배송, 엇나간 선택으로 시간·기름·수고가 한꺼번에 날아간 날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럴 때 글은 변명으로 흐르지 않고, 어디서 판단이 꼬였는지를 짚어 넘어갑니다. 실패를 개인의 성품으로 환원하지 않고, 작업 과정의 결함으로 분석하려는 작가의 태도는 읽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연재가 쌓일수록 시야가 넓어지는 점도 보였습니다. 초반에는 동선, 시간대, 단가 같은 일의 구조에 집중했다면, 중후반부로 갈수록 ‘역할 전환’과 ‘일상의 스위치’ 같은 자각이 드러납니다. 회사원, 아빠, 라이더, 남편, 글 쓰는 사람이라는 여러 스위치를 오가며 하루를 설계하는 삶. 과장되지 않은 말로 적어도 충분히 전달됩니다. 덕분에 글이 개인의 분투를 넘어, 지금 이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는 중층적 정체성을 비추는 거울처럼 읽힙니다.
마지막으로, 디테일을 고르는 감각이 돋보였습니다. 특정 매장의 주차 동선, 경사로의 진입 각도, 픽업대의 혼잡 시간대처럼 사소해 보이는 요소들이 일의 성패를 갈라놓습니다. 그 디테일을 서사로 엮는 방식이 무겁지 않아 좋았습니다. 매회 분량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말 끝에 감정 과장을 붙이지 않는 것도 장점입니다. 덕분에 독자는 작가의 기분에 휘둘리지 않고, 작업 현장의 사실에 먼저 닿게 됩니다.
연재의 힘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관찰의 정직성입니다. 배달 플랫폼이라는 환경을 감정적 가치판단보다 과정과 결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비가 오면 수요가 늘고 위험도도 함께 오른다는 상반된 효과, 주말 피크에 생기는 선택 과부하, 멀티 주문의 이득과 리스크 같은 지점이 사례와 함께 정리됩니다. 독자는 단지 체험담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상황→판단→결과의 연결을 확인합니다.
둘째, 편견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도시를 계층별로 나누거나 식탁을 취향의 신분증처럼 다루는 틀에 기대지 않습니다. ‘주소와 주문의 비상관성’은 연재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으로 보입니다. 이 선택은 윤리적 호소 없이도 독자의 관점을 흔들고, 도시 생활을 더 평평하게 바라보게 합니다.
셋째, 정체성의 설계입니다. 연재가 진행되면서 역할 전환이 주제의 전면으로 나옵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여러 스위치를 켜고 끄며 산다는 사실을 구체적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글은 ‘배달노동의 일기’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의 노동과 가족, 자기 관리라는 큰 주제로 확장됩니다. 과장된 비유 없이도 확장이 가능한 것은 초기에 쌓아 둔 사실의 축이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문체는 짧은 문장이 이어지며, 불필요한 수식이 적어 읽기 편합니다. 마침표의 박자가 일정하고, 구어체 느낌을 과도하게 밀지 않습니다. 이 방식은 이동·대기·판단이 반복되는 노동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전합니다. 서술의 질감이 지나치게 건조해지는 구간을 줄이기 위해, 때때로 현장 소리(비에 젖은 도로, 픽업대의 호출음)나 물성(장바구니 무게, 박스의 모서리) 묘사가 들어가는데, 이 정도의 감각적 요소는 정보 전달을 방해하지 않고 이해를 돕습니다.
총평하자면, 이 연재는 플랫폼 노동을 둘러싼 흔한 도덕적 논쟁을 피하면서도, 노동의 현실과 의미를 꾸준히 보여주는 드문 기록입니다. 거창한 개념을 나열하지 않고, 눈앞의 일에서 꺼낸 조각들로 삶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 결과 독자는 작가 개인의 하루를 따라가다 어느 순간 도시 전체의 일상을 함께 보게 됩니다. 이 전환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점이 연재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