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일본이 자신을 다시 설계한 대지

by KOSAKA

홋카이도는 일본이 스스로의 근대를 실험했던 가장 북쪽의 현장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직후, 일본 정부는 1869년 ‘에조(蝦夷)’라 불리던 지역을 ‘홋카이도(北海道)’로 개명하고 ‘개척사(開拓使)’를 설치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국가 주도의 식민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며 홋카이도를 ‘국방의 전선이자 자원의 보고’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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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삿포로의 도심 구조는 이 초기 설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도쿄에서 파견된 젊은 관리와 기술자, 군인들은 눈과 바람의 땅에 근대적 도시를 설계하였고, 그 결과 삿포로에는 북미식 격자형 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중앙에는 ‘홋카이도청 구 본청사’라 불리는 서양식 벽돌 건물이 세워졌으며, 지금도 삿포로의 도심 구조는 그 당시의 설계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개척의 역사는 진보의 기록이자 동시에 폭력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원주민 아이누는 수백 년 동안 이 대지에서 자급적인 삶을 이어온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메이지 정부는 그들을 ‘토인(土人)’으로 규정하고 농업 정착을 강요했습니다. 언어 사용은 금지되었고, 종교적 의식도 사라졌습니다. 일본의 근대화는 곧 아이누 문화의 해체와 병행된 과정이었습니다.


삿포로의 ‘홋카이도대학 박물관’에는 오랫동안 보관되어 온 아이누 유해가 있었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야 이 유해가 후손들에게 반환되었고, 대학 측은 공개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사건은 홋카이도의 근대화가 단순한 개척이 아니라 내부 식민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일본 사회가 처음으로 직면한 계기였습니다.


최근 홋카이도 곳곳의 공공 표지판에는 일본어와 함께 아이누어가 병기되고 있습니다. ‘삿포로(Sapporo)’라는 지명도 원래 아이누어 ‘삿포로페츠(Sat poro pet,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 강)’에서 유래했습니다. 하코다테(Hakodate)는 ‘하코(상자) 모양의 언덕’을 뜻하는 아이누어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입니다.


이러한 표기 체계의 복원은 단순한 관광용 장식이 아니라, 잃어버린 언어의 기억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아이누 문화를 학교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기 시작했고, 아이누 민족박물관 ‘우포포이(Upopoy)’는 이제 홋카이도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홋카이도는 근대 이후에도 일본의 ‘다음 단계’를 실험하는 땅이었습니다. 20세기 후반, 이곳은 석탄 산업의 중심지로 번성했지만, 에너지 전환의 물결 속에서 대부분의 탄광이 폐쇄되었습니다. 그 이후 남은 것은 버려진 광산과 노후한 인프라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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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리 지역에는 일본 최대 규모의 풍력발전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홋카이도는 다시 ‘전환의 무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삿포로 북쪽의 이시카리(石狩) 지역에는 일본 최대 규모의 풍력발전 단지가 조성되고 있고, 도마코마이(苫小牧)에서는 이산화탄소를 지하에 저장하는 ‘CCS 프로젝트’가 시범적으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또한 오비히로(帯広) 일대에서는 바이오매스와 낙농 부산물을 활용한 지역 순환형 에너지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같은 변화의 바탕에는 사람과 자연이 함게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홋카이도의 지자체들은 효율보다 지속을, 성장보다 회복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폭설과 혹한, 그리고 인구감소라는 조건 속에서 이들은 ‘운영의 철학’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겨울철 제설 인력과 장비를 공동으로 운용하고, 농업의 작황 예측에는 기후 데이터를 접목하며, 노후화된 인프라는 ‘현재의 자산’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홋카이도 전역을 가로지르는 옛 산업 철도 노선은 지금 관광 열차와 지역 물류의 축으로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모두 “필요한 시점에 자원을 모으고, 계절 변수를 사전에 반영한다”는 운영의 원리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홋카이도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토가 좁고 고령화된 일본에서, 인구 밀도가 낮고 광활한 홋카이도는 실험의 여지를 가진 몇 안 되는 지역입니다. 기후 적응형 농업, 분산형 에너지, 지역 중심의 복합 교육 제도는 모두 이곳에서 먼저 시도된 것입니다. 2020년 이후 삿포로시는 ‘제로카본 시티’를 선언하고, 난방 연료의 탈화석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도심 재개발 지역에는 단열 성능을 극대화한 주거 단지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친환경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혹한이라는 자연 조건을 ‘불편이 아닌 설계의 전제’로 받아들이는 발상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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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의 밤바다와 불빛 풍경

저는 하코다테의 언덕 위에서 겨울밤 바다를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저 멀리 혼슈의 불빛이 바다 위로 흔들리며 번져 가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들려오는 항구의 소음과 멀리 떠오르는 배의 불빛, 그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냄새는 묘하게 낯설었습니다. 그 순간, 일본이라는 나라가 왜 이 북쪽의 대지를 통해 스스로를 성찰해 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홋카이도는 단지 일본의 끝이 아니라, 일본이 자신에게 되묻는 출발점이었습니다.


메이지기의 개척과 전후의 산업화, 그리고 21세기의 에너지 전환까지—이 섬은 언제나 일본이 다음 시대를 시험하는 실험장이었습니다. 눈으로 덮인 정적 뒤에 봄이 오는 것처럼, 일본은 언제나 이곳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그 조용한 순환 속에서 우리는 한 사회가 자신을 ‘운영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낭만이 아니라 절차의 문제이며, 이상이 아니라 지속의 기술입니다. 그리고 그 기술의 가장 완전한 형태가, 지금도 홋카이도의 바람과 눈 속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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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과 『댄스 댄스 댄스』는 삿포로와 가공 지명 공간을 오가며 중심(도쿄) 밖에서 단서가 수렴되는 무대로 홋카이도를 배치합니다. 개발과 상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공간에서 인물의 고립감과 추적 구조가 강화되고, 사건의 정리가 북쪽에서 이루어지는 구성이 반복됩니다.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과 『시오카리 고개』는 혹한의 생활 조건 속에서 신앙·양심·책임을 검증하는 서사를 세워, 홋카이도를 도덕적 선택의 장으로 제시합니다.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노다 사토루의 『골든 카무이』가 아이누 문화, 개척·전쟁의 잔여, 국경과 자원의 문제를 역사 어드벤처로 재해석하고, 아라카와 히로무의 『은수저』는 농업고 교육과 지역 경제를 통해 청소년의 직업 현실과 정주 선택을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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