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타, 눈·쌀·쇠의 고장

by KOSAKA

도쿄에서 북쪽으로 약 80분. 신칸센이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풍경이 달라집니다. 도쿄의 매끈한 회색빛 대신, 눈이 쌓인 논밭과 눈발 속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니가타는 일본인들에게 ‘설국(雪国)’이라는 단어로 기억되는 지역입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 등장하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라는 문장은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니가타의 겨울은 혹독하지만, 그 혹한이 오히려 이 지역의 맛과 공예를 만들어냈습니다. 두껍게 쌓인 눈은 천천히 녹으며 맑은 지하수를 만들고, 그 물은 쌀을 기르고, 쌀은 사케를 낳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쌀 품종인 ‘코시히카리(越光)’의 원산지가 바로 니가타입니다. 이 쌀로 빚은 사케는 ‘탄레이 가라쿠치(淡麗辛口)’, 즉 맑고 드라이한 맛으로 유명합니다.


핫카이산, 쿠보타, 코시노칸바이 등 니가타의 대표 양조장들은 기계보다 손의 감각을 믿는 장인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회나 구이, 간장 양념 요리와도 잘 어울리며, 눈 내리는 밤에 마시는 한 잔의 사케는 니가타의 정수를 가장 단정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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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니가타현 쌀 브랜드 코시히카리(좌측). 니가타현을 원산지로 하는 유명 사케 브랜드들(우측).

겨울의 니가타는 또 하나의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신칸센으로 가는 스키장’입니다. 조에쓰 신칸센의 종착역인 GALA 유자와 역은 역과 슬로프가 바로 연결되어 있어, 여행객이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스키를 탈 수 있습니다. 폭설 지역답게 제설 장비와 융설관, 눈의 무게를 고려한 지붕 설계까지 생활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눈은 불편한 장애물이 아니라, 니가타 사람들이 가장 잘 다루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봄이 오면 눈 녹은 물이 시나노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고, 그 하구에는 사도섬이 자리합니다. 에도 시대, 일본 재정을 지탱했던 금광의 섬으로 유명한 사도섬은 오늘날 ‘학(トキ, 따오기)’의 고향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멸종 위기에 놓였던 따오기를 인공 번식으로 복원한 사도시는 한국과 중국의 복원 프로그램과도 협력 관계를 이어가며 동아시아 생태 보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관광객들은 바구니 모양의 전통 배인 ‘타라이부네(たらい舟)’를 타고 해안의 바위를 돌며, 섬의 고요한 바다와 사람들의 시간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니가타는 자연뿐 아니라 현대 문화에서도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여름이면 나에바 스키장에서 열리는 후지 록 페스티벌(Fuji Rock Festival)이 일본 전역의 음악 팬을 불러 모으며, 한국에서도 매년 원정 관람객이 꾸준히 찾습니다. 또한 『이누야샤』와 『란마½』로 잘 알려진 만화가 다카하시 루미코(高橋留美子)가 바로 니가타 출신으로, 세대를 초월한 캐릭터와 유머 감각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눈과 쌀의 고장이 음악과 만화의 고향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니가타가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창조의 토양을 지닌 문화 현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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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루미코 작가와 유명작품들(좌측). 후지 록 페스티벌 전경(우측).

내륙의 쓰바메–산조 지역은 이 현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눈과 쌀의 고장이 동시에 ‘쇠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은 일본 최고 수준의 금속 공업 클러스터로, 세계적인 품질의 식도와 프라이팬, 구리컵 등이 생산됩니다. 공장은 대부분 공방(工房)에 가까우며, 숙련된 장인들이 도제 시스템 속에서 기술을 전승합니다. 최근에는 ‘팩토리 투어’를 통해 칼날 연마와 금속 가공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산업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편집숍이나 백화점에서도 흔히 만나는 고급 주방 도구들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이곳 제품입니다. 니가타의 장인정신은 “만드는 일 자체가 삶”이라는 철학 위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니가타는 또한 재난을 극복하며 성장한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64년 발생한 니가타 지진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액상화 현상’이 관찰된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아파트가 기울어지고 땅이 진흙처럼 흔들리던 장면은 지금도 재난학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도시공학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후 니가타는 방재와 복구의 모델 도시로 거듭났고, ‘위험을 잊지 않는 도시’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강과 바다, 눈과 지진이라는 자연 조건 속에서 인간의 기술로 삶을 이어가는 도시, 바로 그것이 니가타의 본모습입니다.


여름이 되면 시나노강 하구의 항구는 활기를 되찾습니다. 붉은눈볼대(노도구로), 홍게(베니즈와이게), 겨울 방어(부리) 같은 동해의 해산물이 시장을 가득 채웁니다. 향토 음식으로는 ‘놋페(煮っぺ)’라 불리는 겨울 채소탕, 다시마로 엮은 메밀면 ‘헤기소바’, 대나무잎에 싸서 찐 ‘사사당고’ 등이 있습니다. 이 음식들은 소박하지만 깊은 맛을 남기며, 한국인의 입맛에도 익숙한 감칠맛을 전합니다. 눈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식탁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바로 니가타의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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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오카 불꽃대회(좌측). 테라도마리 어시장(우측).

밤이 되면 시나노강 위로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나가오카 불꽃대회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전쟁과 재난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의식입니다. 1945년 공습으로 도시가 불탄 다음 해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매년 8월이면 하늘을 밝히는 거대한 불꽃으로 이어집니다. 관광객에게는 아름다운 축제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슬픔과 회복을 함께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니가타를 대표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눈(雪)·쌀(米)·쇠(鉄) 세 가지일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 전통과 현대, 재난과 재생이 이 세 단어 안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도쿄와 멀지 않지만, 일본 안에서도 독립적인 리듬으로 살아가는 곳. 니가타는 여전히 ‘설국’의 이미지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설계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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