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카이의 풍경 하권(空海の風景 下)

by KOSAKA

시바 료타로의 『쿠카이의 풍경』 하권을 덮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책이 단순한 고승 전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건 한 천재가 시대라는 거대한 풍경 속에서 어떻게 배치되고,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설계도에 가깝다.


상권이 쿠카이라는 청년이 당나라라는 압도적인 문명권을 향해 몸을 던지는 이야기였다면, 하권은 그가 일본으로 돌아와 자신의 사상을 현실의 땅 위에 구현해 가는 과정, 그러니까 정치와 사상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현장을 다룬다.


하권의 큰 줄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당나라에서 밀교의 핵심을 전수받고 돌아온 쿠카이가 당시 일본 불교의 중심이던 사이초와 얽히고, 결국 갈라서게 되는 과정, 그리고 헤이안이라는 새 시대의 질서 속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다.


사이초는 이미 천황의 총애를 받는 최고 권위자였지만, 자신에게 없는 밀교의 실체를 갈망하며 연하인 쿠카이에게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두 천재의 만남은 아름다운 협력으로 끝나지 않는다. 경전 대여 문제, 제자 타이엔의 이탈 같은 사건들이 쌓이면서 관계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틀어진다.


이후 쿠카이는 고야산을 개산하고 진언종의 기틀을 닦는 한편, 만노 연못 보수 공사나 서민 교육기관인 수예종지원 설립 같은 현실적인 일들에도 깊이 관여한다. 마지막에는 육신을 벗고 입정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끝나는데, 그 순간 독자는 그가 남기고 간 ‘풍경’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실감하게 된다.


완독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상이나 철학 때문에 벌어지는 대립이라는 게 제삼자의 눈에는 참 답답하다는 것이다. 사이초와 쿠카이, 이 두 사람이 힘을 합쳤다면 얼마나 대단한 무언가가 나왔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사이초는 원칙과 체계를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쿠카이는 파격과 실천에 강한 천재였다.


둘이 손을 잡았다면 이론과 실천이 결합된 거의 완벽한 모델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쿠카이는 문자와 언어로 전해지는 지식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였고, 사이초는 지식의 공유를 믿었다. 결국 진리 자체가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는 ‘방식’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읽고 나면, 인류사에서 놓쳐버린 어떤 가능성에 대해 괜히 마음이 쓰인다.


또 하나 강하게 남는 건, 종교라는 게 결국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바 료타로가 그려내는 쿠카이는 결코 산속에서 수행만 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권력의 구조를 정확히 읽고, 자신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가 천황과의 관계가 특히 그렇다.


쿠카이는 헤이안 조정이 나라 시대의 기존 불교 세력을 견제하고 싶어 한다는 점을 간파했고, 밀교를 ‘국가 수호’라는 논리와 결합시킨다. 이게 종교의 타락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선택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필연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거대한 종교는 언제나 어느 시점에선가 정치와 손을 잡았고, 쿠카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쿠카이라는 인물을 다시 보게 되는 지점은, 그가 일본에서 ‘최초’로 해낸 일들을 하나씩 따라갈 때다. 그는 서민을 위한 교육기관을 만들었고, 만노 연못 공사에서는 당나라에서 배운 최신 토목 기술을 적용했다. 서예, 언어학, 범어 연구까지 포함하면, 종교인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다 담기지 않는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최고 수준의 철학자가 교육 제도와 인프라까지 직접 설계하고 실행한 셈이다.


시바 료타로는 이걸 신비화하지 않는다. 쿠카이가 당나라라는 거대한 문명 시스템을 직접 보고, 그걸 일본이라는 작은 사회에 옮겨 심으려 했다는 ‘의지’로 설명한다. 그래서 쿠카이는 전설 속 인물이 아니라, 시대를 너무 앞서가 외로웠던 지식인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서 역시 가장 인상적인 건 시바 료타로의 인물 묘사다. 그는 쿠카이를 찬양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의 천재성이 가졌을 고독과 냉정함까지 함께 보여준다. 특히 사이초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오간 편지들을 해석하는 대목은 읽는 내내 감탄하게 된다. 사실과 사실 사이의 빈틈을 ‘풍경’이라는 방식으로 채워 넣는 그의 글쓰기 덕분에, 독자는 천 년 전 인물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 된다. 고야산의 숲, 사가 천황과의 시 교환 장면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는다.


이 소설은 결국 쿠카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시대를 읽게 만드는 작품이다. 당대 일본이 아직 형태를 갖추기 전, 외래 사상과 토착 질서가 뒤엉켜 있던 불안정한 시기 속에서 쿠카이는 신앙인이자 사상가로, 동시에 철저히 현실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시바 료타로는 그를 성인으로 신화화하지도, 영웅으로 단순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 개인이 시대의 요청과 자신의 사유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리를 만들어가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쿠카이의 사상 자체보다, 그 사상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조건을 끝까지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승려의 전기가 아니라, 일본 정신사의 한 갈래가 형성되는 과정을 서사로 풀어낸 기록에 가깝다. 상·하권 전체를 통과하고 나면, 쿠카이가 살았던 시대의 공기와, 그 '풍경'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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