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한류는 인천공항의 떡볶이였다

근데 약간의 양자역학을 곁들인

by KOSAKA

길었던 타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던 날, 인천공항의 공기는 묘하게 들떠 있었다. 익숙함과 낯설음이 교차하는 입국장을 빠져나와 무빙워크에 올랐을 때, 피로한 나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한 떡볶이 사진이었다.


고화질로 선명하게 프린트된 그 붉고 강렬한 이미지는 단순한 식음료 광고나 환영 인사가 아니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이나 고단한 하루를 마친 서민들이 길거리 포장마차에 서서 허기를 달래던, 지극히 소박하고 투박한 일상적인 음식. 그것을 이토록 압도적인 크기로 확대하여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이방인들에게 가장 먼저 내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충격이자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사진의 물리적 크기만큼이나 거대하고 당당한 우리 내면의 폭발적인 '자기긍정'의 선언이었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우리는 세계의 무대 위에서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헤맸다. 서구의 세련된 문화를 어설프게 흉내 내거나, 혹은 서양인들의 시각에 맞추어 지나치게 이국적으로 포장된 박제화된 전통만을 조심스레 꺼내놓으며 스스로의 진짜 모습을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우리의 일상은 너무 촌스럽고, 우리의 대중문화는 변방의 마이너리그에 불과하다는 콤플렉스가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무빙워크 옆의 저 거대한 떡볶이는 달랐다. 맵고 자극적이며 세련되지 않은 우리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긍정하고, "이것이 진짜 우리의 삶이다. 이 매력적인 맛을 한번 경험해 보지 않겠는가?"라고 권하는 여유와 자신감. 이 강렬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자기긍정이야말로 오늘날 전 세계를 거침없이 휩쓸고 있는 한류라는 거대한 물결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핵심 동력임을 그 순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러한 자기긍정의 찬란한 발현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한류의 최전선에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방탄소년단(BTS)이 전 세계의 청춘들을 향해 집요하게 던진 핵심 메시지가 바로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인 것은 그래서 더욱 필연적이고 상징적이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그들의 외침은 단순한 위로나 기성세대의 얄팍한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흔한 경구가 아니다. 그것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출발해 세계 문화의 중심축을 뒤흔들기까지, 우리 민족이 무수한 역사적 시련과 지정학적 질곡 속에서도 결코 잃지 않았던 끈질긴 생명력과 자존감의 가장 세련된 번역본이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나를 재단하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의 결핍과 상처, 평범하고 때로는 촌스러웠던 과거의 서사까지도 모두 온전히 끌어안고 긍정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언어와 인종의 장벽을 넘어 세계를 감동시킬 수 있는 묵직한 진정성을 획득했다. 우리 민족 특유의 이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자기긍정이 대중문화라는 현대적인 그릇에 담겨 전 지구적인 공명을 일으킨 것이다.


이 기묘하고도 폭발적인 문화적 확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류는 단순한 대중문화의 유행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양자역학적 현상이라는 철학적 사유에 이르게 된다. 양자역학에서 미시 세계의 입자들은 관측되기 전까지는 특정한 위치나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겹쳐 있는 파동(wave)의 형태로 우주 공간에 중첩되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한류가 세계적인 현상으로 폭발하기 이전, 우리의 고유한 문화 역시 이와 같았다. 한반도라는 제한된 물리적 공간 안에서 우리의 짙은 슬픔(한)과 폭발적인 기쁨(흥), 그리고 뜨거운 역동적인 에너지는 막연하고도 다채로운 파동으로 그저 출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내부에서는 분명 숨 쉬고 고동치며 존재했지만, 외부 세계의 무대 위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질량이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확률적으로만 맴도는 거대한 잠재력의 바다에 불과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외부의 시선, 즉 관측(observation)이 개입하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중첩되어 있던 모호한 파동의 상태가 붕괴하며 비로소 하나의 뚜렷한 실체(particle)로 입자화되어 확정된다. 막연한 에너지 상태였던 우리의 문화라는 파동에 아름답고 견고한 형태를 부여한 것도 바로 이 '세계의 관측'이라는 행위였다.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 글로벌 OTT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창문이 열리고, 전 세계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한반도를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계가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물리적 법칙이 하나 있다. 아무리 관측 장비가 뛰어나도 관측의 대상이 되는 물질 자체가 고유의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지 않는다면 그 실체는 흐릿할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스스로의 문화를 열등하게 여기며 부끄러워하거나,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강박에 갇혀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억지로 가공되고 탈색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면, 세계의 관측이 빚어낸 결과물은 금세 흩어져 버리는 가벼운 신기루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우리는 인천공항의 거대한 떡볶이 사진처럼, 혹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자아의 긍정을 외치는 아이돌의 군무처럼,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지독하게 솔직한 우리만의 에너지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우주로 발산했다. 우리의 강력한 자기긍정이 뿜어내는 고유한 진동수의 에너지와, 새로운 것에 굶주려 있던 세계의 날카로운 관측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맞닿는 바로 그 임계점의 순간. 막연하고 몽롱하게 한반도를 맴돌던 문화적 파동은 눈부신 섬광을 일으키며 K-팝, K-드라마, K-영화, 그리고 K-푸드라는 너무나도 명징하고 찬란한 문화적 실체로 단숨에 붕괴했다. 보이지 않던 에너지가 관측과 자기긍정의 결합을 통해 강력한 물질의 형태를 입고 전 세계인의 일상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더 나아가 한류라는 현상은 양자역학의 또 다른 신비인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의 경이로움을 우리 눈앞에 실시간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남미의 십 대 소년이 서울의 좁은 작업실에서 만들어진 비트를 들으며 나와 똑같은 리듬으로 심장을 펄떡이고, 파리의 직장인이 한국의 퇴근길 소주 한잔이 담긴 드라마를 보며 우리의 정서로 슬픔을 달래고 위로를 나눈다.


물리적인 공간의 단절이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의 아득한 차이는 이 강력한 문화적 양자 얽힘 앞에서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긍정하는 태도, 즉 우리의 철저한 자기긍정에서 출발한 극단적인 '특수성'이, 역설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류 내면의 짙은 '보편성'과 맞닿아 순식간에 동기화되는 마법 같은 현상이 매일같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천공항의 무빙워크는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고, 세계를 향해 붉은빛을 뿜어내던 거대한 떡볶이 사진은 이내 내 등 뒤로 서서히 멀어져 갔다. 하지만 그 날 것 그대로의 당당한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남긴 강렬한 잔상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한류는 막대한 자본의 투입이나 치밀하고 기계적인 마케팅 공식만으로 빚어낼 수 있는 인공적인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우리의 삶 속에 켜켜이 쌓이고 압축되어 온 한과 흥의 에너지가 '자기긍정'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찬란한 문화적 파동이다. 그리고 그 파동이 세계라는 거대한 눈동자의 따뜻한 관측과 만나 빚어낸, 인류 문화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이로운 양자역학적 기적이다.


스스로를 긍정하는 자만이 타인의 메마른 마음을 진동시킬 수 있고, 자신의 촌스럽고 투박한 모습마저도 있는 그대로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민족만이 세계를 완벽하게 매혹시킬 수 있다. 길거리 포장마차의 맵고 붉은 떡볶이를 자랑스럽게 전 세계의 식탁 위에 내어놓는 이 당돌하고도 거침없는 에너지. 세상의 중심에 서서 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당당히 노래하는 이 매력적인 파동. 이것이 바로 막연했던 가능성의 안개를 걷어내고 뚜렷한 문화적 실체를 창조해 낸 근원적인 힘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도도하고 장엄하게 흘러가는 한류의 진정한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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